왜 개혁교회는 신앙고백서를 철저히 지지하는가?_이차식 목사

0
47

왜 개혁교회는 신앙고백서를 철저히 지지하는가?

이차식 목사/ 덕일교회

성도라면 누구나 다음과 같은 문제로 고민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나의 모든 죄가 정말로 깨끗이 용서되었는가? ?지극히 높으시고 거룩하신 하
나님께서 참으로 나를 용납하시고 사랑하시는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리스
도의 사역이 실제적으로 내게 어떻게 적용되는가? ?혹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
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여 노하심으
로 죄악을 갚지 않으실까?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자기 자신의 노력과 행동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고 생
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보게된다. 이에 대한 답은 앞서 동일한 문제로 고
민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답변을 찾기 위해서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성경을 
열심히 살펴서 그것을 토론하고 정리해서 마무리 한 것들을 신앙고백으로 이
루어 교회의 공적 규범으로 삼았다.

그것들이 수세기가 지나는 동안 교회의 투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나
라의 교회
가 공적으로 채택을 하고 또 그것을 배우고 적용해서 건강한 교회로 검증을 
받았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사도와 선지자를 통해서 약
속하신 바를 이 신앙고백에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음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개
혁교회는 이러한 중요한 영적 유산들을 귀중하게 여기고 계승한다.

1. 영적 지도자의 기능으로서 신앙고백
칼빈주의 개혁교회는 사도신경, 니케아신조(325), 벨직신앙고백서(1561), 하
이델베르그요리문답(156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 돌트신
조 등 대개 이런 신앙고백을 교회의 중요한 유산으로 받고 그 후손들에게 가
르치고 계승한다. 이와 같은 신앙고백은 칼빈에 앞서 초대 교회 때부터 신앙
과 생활의 순결을 지켜나가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영적 지도자의 기능
을 해왔다. 

그들은 그 교회의 신앙고백들이 한낱 말뿐인 신조로 기능하지 않도록 엄한 훈
련 속에서 교회의 나아갈 방향과 성격을 검토하고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루터가 했던 것처럼 카톨릭의 여러 가지를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한 것이 아니
라 모든 것을 오직 성경과 개혁주의 신앙고백들을 근
거해서 교회정치의 상세
한 부분들까지도 전반적으로 고쳐나가는 것이다.

2. 교회의 통과를 거친 것으로서 신앙고백
왜 개혁주의 교회의 신앙고백들을 항상 표준으로 삼는 것인가. 이는 그 내용
들이 사도들과 선지자들로부터 나온 것으로 수세기 동안 역사적으로 객관적으
로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과 같은 권위가 있다던가 무오하다는 의미
가 아니다. 그러한 고백서들은 모든 것을 성경에서 근원을 찾는 칼빈의 사상
과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러한 고백서들이 각 나라와 각처에서 주
의 깊게 살피고 연구되어진 후에 교회의 공식적인 규범으로 통과를 거친 것들
이라는 것이다. 이는 성경에서 가르친 계시의 정신이 놀라우리만큼 그대로 깃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수용하고 나아간 교회들은 그렇지 못한 
교회들에 비해서 훨씬 건강하다는 것이 입증이 되었다.

3. 비 개혁자들이 배격하는 신앙고백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과 삶을 추구하는 교회는 아르미니우스 주의자들이 내
건 슬로건처럼 오직 성경에 그쳐서는 안 된다. 성경만이 우리의 모든 충족을 
주는 것이 사실이나 
같은 성경을 놓고서도 해석하는 차이에 따라서 감리교
인, 침례교인, 여호와증인, 장로교인등으로 나누어 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러나 이 신앙고백들이 성경이 말하는 것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칼빈주의 개혁
교회의 사람들은 직분자가 신앙고백을 지지한다는 약속의 표시로 동의서
(Form of Subscription)에 서명할 것을 요구한다. 그만큼 신앙고백을 성경 다
음으로 지지하고 신학과 삶의 교의와 규례로 삼아온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비 개혁자들은 언제나 신조의 필요성에 대하여 부정적이거
나 반대하는 입장에 섰다. 유니테리안파, 소시니안파, 아르미니우스주의, 오
순절주의, 현대자유주의자들은 신조의 권위와 용도를 아주 싫어한다. 왜냐하
면 그들은 자아를 죄 가운데 죽는 것으로 보지 않고 지성과 마음이 죽지 않았
다고 하는 그들의 신앙에 도전하기 때문에 그들에겐 이러한 것이 불쾌한 일
인 것이다. 그들은 사람이 타락하지 않았으므로 스스로 선을 행할 것인지 악
을 행할 지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고, 믿을지 안 믿을 지에 대해
서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칼반주의 개혁교회는 사람이 타
락하여서 스스로는 진리를 알 수 없고 
스스로 올바르고 선한 것을 발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나의 실례를 든다
면 성령의 사역에 대한 교리에 있어서 어떻게 인간 밖에서 예수그리스도에 의
해 성취된 구원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인간의 영혼에 적용되는가 할 때, 돌
트 총회에서 천명한 것은 인간의 전적타락과 주권적인 은혜라는 용어를 사용
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을 전혀 구원할 수 없는 피조물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시
는 하나님의 배려와 주권뿐만 아니라, 사람이 아닌 성령 하나님의 역할이 분
명히 제시된다.

우리교단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 문답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를 성경적 고백서로 채택했다. 이러한 교리로서 칼빈주의 개혁교회
를 이루어내는 데에 완전한지 미흡한지는 교회가 판단할 일이나 아무튼 우리
가 채택한 신앙고백서와 정신은 개혁주의적인 성격을 규정해 주는 것이기에 
우리교단은 개혁교회이다. 이것을 공적으로 채택했다는 것은 어떤 색다른 교
회나 분파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다. 신학과 교리뿐 아니라 교회정치에 있어서
도 성경계시의 정신과 신앙고백을 따라 바른 교회를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 때
문인 것이다.

더구나 알미니안적 요소가 교회에 깊이 들어와 진리를 왜곡하고 있는 이 시대
에는 신앙고백이 하나님 중심적 신앙과 삶으로 돌이키는데 중요한 증거들이 
된다. 우리가 무엇을 믿고 공적으로 천명하며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어 나
갈 것인가. 성경의 완전한 진리를 옹호하는 칼빈주의 개혁교회의 중요한 유산
들을 포기하거나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릴 것이 아니라 이를 붙잡고 살피고 연
구하고 보강해서 실제로 교회에 적용을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