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혼인의 아름다움_문종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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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혼인의 아름다움 

문종철 목사/ 지성교회

아상(我相)을 따르는 혼인, 이혼, 독신은 불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인을 생각하며,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경제력이
나 성격, 인물, 집안 배경 등을 본다. 이러한 자신의 생각들을 어느 정도 충
족시켜 줄 때 상대를 배우자로 결정한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
들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상대가 신앙을 가졌는가보다는 성격, 인물, 집
안, 경제력이 내 기준에 맞는다면 큰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그런 문제는 살
면서 기도하면 된다고 합리화한다. 결국 자기들의 좋은 대로 고르고 결정을 
한다. 그러나 창세기 6:2의 내용을 보면 그 일의 결국은 심판이라는 것이 명
백하다. 
남녀가 혼인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 속에서 얼마나 소중한 부분인지
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정욕을 따라 한 혼인이 결국 자신들의 욕구에 만족하
지 못해 쉽게 이혼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즉, 선택의 기준치와 만족도가 채워
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혼
인보다는 자신의 일을 더 사랑하게 되고, 이성은 거
추장스러운 존재이며 자녀를 얻는 일을 귀찮게 여기게 만든다.
어거스틴은 그의 저술「혼인과 정욕에 대하여」(De Nuptiis et 
Concupiscentia)’에서 혼인 생활과 후손을 위한 성적 욕망은 제도적 관점에
서 유익하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아담의 타락 때문에 정욕
은 하나님께 향한 질서에 더 이상 맞지 않고 무질서한 방식으로 물질적인 것
에 순응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 곳에서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의 자유의
지론을 부인하고 원죄 아래 놓인 사람의 상태를 말하면서 그로 인해 무질서
한 정욕으로 인한 혼인은 하나님 앞에서 합법적이지 못하며 악한 것이라고 주
장한다. 
어거스틴의 주장처럼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 없이 자신
들의 의지와 지혜로 이해타산을 따라, 자기들 보기에 좋은 대로의 합리성을 
따라, 진행된 혼인은 그 자체가 무질서한 진행이며 타락한 본성에 이끌린 정
욕을 따른 결과이다. 이것은 세상 질서와 시대 정신을 따른 혼인에 불과한 것
이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그 진행을 따르는 혼인의 올바른 인식이 
없는 
가운데 진행된 모든 혼인은 쉽게 이혼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이혼하지 않
더라도 지극히 인간적인 요소들 안에서 만족을 찾는 정도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세워 놓은 만족도가 성취되지 않을 때에는 기꺼이 독신
으로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 시대의 정신이다 보니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든 다
니지 않는 사람이든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가운데 자신들의 필요를 따라 혼인
하기도 하고, 필요를 따라 이혼하기도 하며, 필요를 따라 독신으로 살기도 하
면서 별 문제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이러한 현실 앞에 이제는 새로운 인식
이 필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내용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4장은 ‘혼인과 이혼’의 문제를 잘 다루고 있는데 흥
미로운 사실은 ‘혼인과 이혼’에 대한 주제를 다룬 다음 그 뒤를 이어 ‘교
회'(25장)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26장은 성도의 교제, 27
장은 성례, 28장은 세례, 29장은 주의 만찬, 30장은 교회의 권징, 31장은 대
회와 회의, 32장은 사후의 인간의 상태와 죽은 자의 부활, 33장은 최후의 심
판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24장은 단순히 ‘혼인과 
이혼’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지 않고 ‘주님과 교회’의 문제로 이어지는 계시적 발전상을 잘 보여주고 있
다고 보아야 한다. 
24장 2항에서 “혼인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상호 협조와, 합법적인 후손으로 
인류의 증가와 거룩한 씨로 인한 교회의 증가와 부정(不貞)을 예방하기 위하
여 제정되었다”라고 말한다. 혼인한 남자와 여자는 남편과 아내라는 돕는 배
필로서 사랑과 복종의 ‘상호 협조’를 한다. 또한 “합법적인 후손으로 인류의 
증가와 거룩한 씨로 인한 교회의 증가”라는 ‘하나님의 형상’의 삶을 살아가
게 된다고 가르친다. 
사람마다 혼인을 하면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하고 그래서 합법적이 되고 자녀
를 낳아도 그것이 합법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합법적 혼인
과 합법적 후손은 지상의 혼인제도의 신성한 비밀을 알게 하신 하나님을 아
는 지식과 그것을 신앙고백하며 소망 중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다. 남녀를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그 둘을 한 몸 되게 하신 분도 하나님
이시다. 그러므로 ‘혼인의 합법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를 떠나서는 존
재할 수 
없는 일이다.
24장 6항에서 ‘이혼’의 문제를 말하는데 “…간통 또는 교회나 공직자에 의
하여 해결이 전혀 불가능한 남편의 고의적인 처자유기(妻子遺棄) 행위는 혼인
의 약속을 취소할 타당한 사유가 된다. 이혼을 할 때에는 합당한 이혼 절차
를 준수해야 되고 이혼 당사자가 자신들의 고집이나 재량권을 내세워서 이혼 
사건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24장 2항의 표현이 혼인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소개 한 것이라면, 이 내용(24장 6항)은 이혼 사유의 측면 즉, 부정
적 측면을 말하면서 혼인제도의 신성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여호와는 영이 유여(有餘)하실 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
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詭詐)를 행치 말지니라”(말
2:15) 

성경의 증거 

1. 하나님의 형상(形象)으로서의 남녀
사람은 남자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여자로서만 존재하지도 않는다. 사람은 남
자와 여자로 창조함을 입었다. 창세기 1:26-28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사람(남
자와 여자)을 하나님
의 형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른 피조물의 창조 기사가 
자동사와 3인칭단수형으로 되어 있는 것에 비해 1:26-28의 내용은 자동사에
서 타동사로, 3인칭 단수에서 1인칭 복수로 바뀌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
의 형상으로 아주 특별하게 창조하셨음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형상’이 갖는 
중요한 성격은 ‘다스림’이라는 말에 있다. 
사람이 기타 동물과 다른 것은 그 존재가 생육과 번성으로 끝나지 않고 ‘다
스림(통치)’이라는 일과 관련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스림(통
치)의 일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표현을 잘 말해준다. 기타 피조물들은 각
기 그 ‘종류를 따라’ 창조함을 입었으나 사람은 특별한 의미의 독특한 피조물
로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따라서’ 창조되었다. 성경의 증거를 통해서 볼 때 
사람은 남성과 여성으로서 각자의 성적 정체성을 갖추고 있지만 성경의 보다 
더 깊고 본질적 의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의미이다. 
창세기의 내용을 가장 먼저 접하는 독자들은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너 온 이
스라엘 백성들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로서 생활한 민족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개인으로서나 공동체적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들이 배워온 바에 의하면 여성과 노예
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존재들이며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자는 파라오(바로)
였다.
이집트는 당시 자신들이 정복하고 다스리는 모든 영역에 파라오의 ‘형상’을 
세웠다. 파라오의 형상을 곳곳에 세운 까닭은 그 땅의 주인과 다스리는 자가 
파라오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의미에서였다. 그러므로 애굽에서 430년 동
안 ‘파라오의 형상’을 보며 살아온 이스라엘의 인식 속에는 자신들은 가장 비
천한 노예이고 이집트 사람은 그 위에 자리하며, 온 땅을 다스리는 자는 파라
오(바로)라는 인식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불러내셔서 본래 사람은 여자와 남자가 그 능력과 
지위에 있어서 전혀 차별이 없고 어떤 사람은 다스리는 자로 또 어떤 사람은 
노예로 살아가도록 하지도 않으셨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신다는 증거로 사람(남자와 여자)
을 만드시고 그 사람을 가리켜 친히 자신의 형상 
즉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선포하셨다. 이 내용은 그 동안 온 땅을 다스리고 정
복하는 자는 파라오라고 배워온 ‘형상’에 대한 인식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충격적 선포이었다. 
창세기의 내용에 이어서 십계명의 둘째 계명(출20:4-5)에 나오는 “위로 하늘
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
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는 말씀 또한 하나님은 인생들
이 생각하는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되지 않는 스스로 계신 거룩하신 분이라
는 내용과 함께, 이미 창세기 1:26-28에서 말한 내용에서 ‘사람(남자와 여자)
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유일한 존재라고 하신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며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은 성경의 증거처럼 남자와 여자로서 온 땅 곳곳에 존재하며,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여 땅과 바다와 공중의 새들을 다스리는 존재
들이다. 그러므로 돌과 흙으로 만들어서 굳은 채로 자신의 사역을 하던 당시
의 파라오 ‘형상’과는 분명하게 비교되는 활발한 인격적 활동을 하는 ‘생

을 가진 형상’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오직 성령이 너희
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
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새 창조의 질서’에서도 확인되는 내용이다. 

2. 하나님 형상을 상실함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향하여 경쟁적이거나 지배적이지 않게 서로가 서로를 
다스릴 수 없고 다스리려 해서도 안 될 삶으로 지음 받았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성경의 증거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함으로 인해 서로가 서
로를 향하여 다스리려는 심성으로 심정의 전환이 생긴다. 즉, 사랑과 복종의 
거룩한 상호 헌신을 통한 삶이 아닌 남녀가 서로를 향하여 하나님처럼 다스리
려 한다. 참으로 그들의 눈은 밝아진 것이 아니라 어두워져서 ‘다스려야 할 
대상’과 ‘함께 해야 할 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전적 타락을 하게 된 것이
다. 
사탄이 하와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고 유혹하
였다. 결국 그들의 눈은 어떤 의미에서(사
탄의 말과, 인간의 속음에 대한 조
롱의 표현으로) 볼 때 밝아졌는데 그것은 자신들이 벗었음, 즉 하나님의 형상
을 잃어버린 수치스러운 상태임을 아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그들의 눈
은 그런 식으로 밝아진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둘이 함께 다스려야 할 대상
들을 향한 권세를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사용하는 존재가 된다. 

“…… 너는 남편을 사모(소원, 열망)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다”(창
3:16). 

이제 아담에게 하와는 더 이상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아닌 다른 
피조물에 불과하게 여겨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와에게 있어서도 아담은 더 
이상 자신과 ‘한 몸’이 아닌 다른 피조물로 여겨진다는 인식 속에서 그를 다
스리려는 열망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제 남편과 아내 둘 사이에 있어야 하
는 ‘사랑과 복종’의 실상이 파괴된 것이다. 

3. 사랑과 복종의 실상(엡5:21-33)
남자와 여자는 서로 상응하는 존재로 그 성에 맞게 부여된 본질을 따라 사랑
하며 복종함으로 한 몸을 이룬다. 성경이 말하는 부부간 사랑의 개념과 복종
의 개념은 매우 고매한 것으로 남편은 아내 사랑
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하는 것이며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되 교회가 주님에게 복종
하듯 하라는 의미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5:32에서 남편과 아내에게 있어야 
할 사랑과 복종의 실상(實相)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큰 비밀(계시)’임
을 말한다. 
남편이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함 같이 하라는 말은 특별하며, 소
중하며, 진실 되게, 사랑하는 것인데 이는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존재로 세운
다는 차원이다.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게 흠 없이 거룩한 존재로 여기는 사
랑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내를 향하여 자신의 우월 의식이나 권위주의
적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다. 또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복종의 개념
도 당시 여인들이 사회제도적 통념과 전통에 의해 하는 복종의 차원이 아닌 
교회가 주님에게 하는 복종이다. 이러한 복종은 교회가 주님의 거룩하심을 알
아서 그의 인격과 사역을 즐거움으로 따르는 복종을 말한다. 
이러한 복종은 과연 세상이 흉내 낼 수 없고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사랑의 
방식이요, 세상의 복종이 아닌 거룩한 복종이다. 그러므로 이 증거 앞에 우리

는 부부사이의 능력에 따른 권위구조를 전혀 볼 수 없다. 다만 사도가 깨닫
고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큰 비밀스러운 계시를 발견할 뿐이다. 하나님은 아
담과 하와를 만드실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인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형성할 것인가를 ‘하나님의 형상’과 “돕는 배필” “한 몸”이라는 표현
을 통해 증거하셨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과 주의 몸인 교회가 어떻게 신비
한 연합(한 몸)을 이루는가 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편은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는 사랑의 방식을 통해 아내를 돕고 아내는 교
회가 주님께 복종하는 참된 복종으로 남편을 돕는다. 이것이 ‘돕는 배필’의 
의미이다. 부부는 이러한 사랑과 복종의 삶이 있을 때 한 몸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남녀가 혼인하여 함께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이 한 몸이라는 방식
은 너무나 유치하고 저급한 발상이다. 그리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한다
고 하여서 그것이 한 몸을 이루는 것도 아니다. 한 몸을 이루는 진정한 의미
는 남녀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함을 입어 이 땅 위에 존재하며, 하나님 나
라의 삶의 방식을 따라 자신들이 왜 이 땅에서 생육
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
하게 사는가? 라는 이유를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차원에서 찾고 알아서, 그
러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사랑하며 복종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4. 지상의 혼인 제도는 제한적이다
남자와 여자는 부부로서 가정을 이루는 삶을 통하여 장차 궁극적으로 있을 
하나님 나라의 아주 실제적인 상황을 지상에서 학습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
은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에 대한 궁극적인 앎을 향한 지상의 것으로서 제한
된 제도이다.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깨
닫고 동시에 교회는 주님께 어떻게 복종해야 하는지를 지상에서의 부부 관계
를 통해서 배우고 익힌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창2:18)”라고 하신 본질적
인 의미가 바로 이 비밀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남자나 여자, 즉 한 성(性)으로
서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여 다스리는 ‘하나님의 형상’이 되지 못
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과 교회가 머리와 몸으로서 사랑과 복종의 관계로 
하나를 이루는 심오한 진리를 배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 줄기
세포 배양에 대한 결과(서울대 황우석 교
수)와, 한ㆍ일(韓ㆍ日)공동 연구의 결과를 내 놓은 세계 최초의 정자 없이 난
자만의 결합(물론, 한쪽 난자의 유전자에서 특정한 부위를 지워 정자와 비슷
하게 만든 뒤)의 성공(?)으로 포유류인 생쥐가 태어나게 한(2004. 4. 22) 생
명공학 기술의 발전이 ‘여성만으로도’ 생육하며 번성할 수 있다는 차원으로 
확산되어 성경의 절대 이념을 도전하는 상황에 있다. 
그렇지 않아도 신앙인 안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갖는 생육, 번성, 다
스림의 의미를 모르는 가운데 혼인하여 사는데 부부 됨의 의미와 자녀 출생
의 문제를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인식의 무지와 결여됨 속에서 진행하며 나름
대로의 행복을 찾지는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5. 온전한 사랑과 복종은 장래의 소망으로 남겨놓으셨다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비밀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지상의 부부
로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랑과 복종’의 본질을 이루지 못한다. 이처
럼 지상의 부부가 갖는 부족함과 갈증은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온전하
고 흡족하게 해소될 것이다.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의 
완성 안에서는 주님과 
같이 신비한 부활의 몸을 가진 남자와 여자는 각자의 성(性)을 따라 서지 않
고 신랑 되신 주님 앞에 어린양의 ‘신부’ 곧 교회로서 ‘함께’ 서게 된다.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답하신 주님의 답변은 이러한 의미
를 잘 말해주는 한 예가 된다(막12:18-25). 그 날에는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
고 누가 누구의 아내와 남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천사와 같고 
둘이 아닌 신비한 ‘한 몸’ 즉, 교회로서 남녀가 함께 한 ‘신부’가 되어 ‘신
랑’이신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혼인 제도는 장차 있을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삶 이전에 지상에 두신 하나님의 신성한 제도이다.

6. 마치는 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의미에서 남녀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고 ‘돕
는 배필’로서 ‘한 몸’을 이루며 살게 하신 것이다. 과연 사도 바울의 고백처
럼 “이 비밀은 크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가 이 놀라운 비밀을 몰랐던 것처
럼 오늘날 우리들 교회 또한 이 큰 비밀이 가르쳐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모르는 남녀와 가정이 
모여서 교회라는 이름만 가지고 수와 규모
에 감격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