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정국과 한국교회
김재성 (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 교수)
대한민국은 최근 부패한 정치집단의 치부가 계속해서 드러나는가 싶더니, 마
침내 정치가들에 의해서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되어 권한대행이 국정을 운영하
는 비상체제로 가고 있다. 이런 급격한 변화와 혼란 속에서 모든 시민들의 마
음이 상하고 대립이 격화되어 있어서 국가를 향한 교회의 역할이 다시 한번
중요하게 되었다.
세속 정권의 부침에 영향을 입으면서 살고 있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런 정치
적 격동과 비상사태에 직면하여 어떤 판단을 해야만 하는가를 집중적으로 제
시하여 보고자 한다. 이와같은 엄청난 역사적 재난에 직면하여 우리 기독교인
들은 “왜 이런 헌정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거스틴, 무제한적인 권력욕을 지탄함
세상의 정변, 헌정 중단, 쿠테타와 탄핵 등 여러 정치적 격동을 볼 때에 기독
교인들은 세상 권력의 속성을 바르게 꿰뚫고 있어야 한다. 어거스틴
은 로마제
국의 멸망을 목격하면서 제국의 몰락은 심각한 우상숭배와 도덕적 타락 그리
고 무제한적인 권력욕에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로마인들은 명예와 칭찬과 영
광을 추구하였다. 권력에의 욕심은 탐욕과 방종을 일삼는 부패한 인간들이 저
지르는 것이다. 로마는 제국의 확장을 위해서 끝없는 욕심과 확장 정책만을
일삼았던 것이다. 교만한 인간들은 질서를 파괴하고 죄를 마음대로 자행하면
서 자신들을 하나님의 지위에 올려놓으려 했던 것이다. 로마의 황제들은 모
두 다 신으로 섬겨졌던 것이다.
어거스틴 당시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멸망이라는 엄청난 재난에 직면하였었
다. 로마의 말기에 기독교는 가장 번성하였었기에 로마 멸망의 원인이 혹시
기독교에 있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받았던 것이다. 이교도들은 기독교를 비난
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로마의 함락은 기독교인들에게도 엄청난 도전이자 시
련이었다.
어거스틴은 410년 고트족의 침략으로 대 로마 제국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신
의 도성’이라는 책에서 “왜 이런 재난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기독교적 해답
을 제시했다. 당시 변화무쌍한 세속 정권의 몰락을 바라
보는 기독교적 시각
을 제시한 이 책은 413년부터 426년 사이에 쓰여졌다. 먼저 그는 치열한 전쟁
의 와중에서 죽은 자들, 부상당한 자들의 처참함에 대해 술회하면서 “내가
백 개의 혀를 가지고도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고 비참해 했다. 무려 팔
백년을 지탱해온 숱한 외적을 물리치고 건재해온 대 제국이 단 삼일 만에 무
너지고 말았으니 도저히 그 참상이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나님의 섭리사관으로 볼 것
세상의 변화 무쌍한 사건들은 하나님의 섭리적 간섭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땅위에서 벌어지는 지극히 사소한 사건들이라도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에 있다. 하나님은 종종 악한 왕들의 폭정을 허용하고 계신다. 그러나 결코
그대로 두시지는 않는다. 성경에서 섭리를 가장 잘 설명한 구절은 누가복음
12장 6절-7절에 나온다. 참새 한 마리,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다 세신 바 될
정도로 하나님이 보호하여 주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
을 이루는 도구가 되어진다.
로마 멸망이라는 급격한 사건을 보는 어거스틴의 역사관은 바로 이러한 섭리
사관이었다. 그리고, 이를 종교개혁자들이 물려
받았다. 칼빈은 하나님이 우주
를 보전하시는 일반섭리와 그 안에서 일반인들의 국가와 발전, 비와 구름, 바
람, 안개, 지진 등을 작용하시는 특별섭리 그리고 믿음을 주셔서 교회를 이루
고 지켜주시는 특수 섭리가 있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은 특수 섭리의 대상인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안보해 주신다. 그래서 만물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다.
기도와 변혁을 위해 적극적 참여를 병행 할 것
원칙적으로 교회는 세속 정치를 통해서 무슨 일을 구현하려 하지 않는다. 성
경이 세상의 것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을 기억하게 된다(요일 2:15-
17). 예수님은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별로 언급하지 않으셨고 소외계층과
죄인들을 위해서 구원역사를 성취하였다. 정치권력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돌아
가셨다. 세상의 권력을 인정하고 따르면서 세금도 내고 권위도 인정하는 모습
을 보여주신 예수님은 마침내 그 권력에 의해서 죽으신 것이다.
사도 바울을 비롯한 초대교회 설립자들 역시 정치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박해 당하고 학
정에 신음하던 성도들에게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 기도
할 것을 주문하였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서 살 수 없고, 부패하고 방탕하고 타락한 세속 권
력자들과 세상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그러한 제도 속에서 의무를 감당해야
하는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일에 대해서 나름대로 승화된 모습을 가지고 대해
야만 하였던 것이다(고전 5:10).
첫째,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기도하는 일이다.
로마서 13:1-7에서는 먼저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기도할 것을
권하면서 권세를 존중하고 국법을 준수하고 세금의 의무도 감당하라고 주문하
고 있다. 저항운동이 우선적인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바울 사도는 비인격적
이며 우상숭배하는 로마제국의 모순된 통치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거나 저항
하지 않았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신 주님을 본받
아야 한다.
터툴리안은 “우리도 황제와 그의 내각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의 권위와 세
계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주장했다.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무
슨 상관이 있느냐고 주장하면서도, 터툴리안의 마음에는 국가를 향한 기도가
있었던 것이다. 악한 나라들과 사악한 권력자들이 속출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
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는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자
초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죄악을 막고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병행하는 것이
다.
교회에 속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세상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일관한다든지,
비관적으로 포기한다든지, 혹은 소극주의에 빠져서 팔짱만 끼고 구경하려는
태도는 잘못이다.
칼빈은 교회와 시 정부 사이에서 수많은 투쟁을 벌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
는 교회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몸부림쳤다. 교회가 직분자들의 선출권
과 치리권을 독립적으로 시행할 수 없었던 왕정통치 하에서 노력했던 것이
다. 그는 자신의 조국 프랑스에서 개신교회를 박해하는 로마 카톨릭과 왕권
의 박해에 대해서 묵묵히 견디면서 이겨나가라고 격려하였다. 이러한 그의 생
각은 ‘소극적 저항권’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의 제자 베자와 요한 낙스는
보다 적극적인 저항권을 주장하고 실제로 국왕이나 정치의 실정에 대해서 저
항하였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1900년 초반 네델란드에서
변혁주의 문화관을 구현한 매
우 실천적인 목사, 신학교수, 정당의 당수이자 수상으로 봉사하였다. 그는 변
혁주의 문화관을 제시하고 교회가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정치적 영향과 사회적 변화에 놀라운 역량을 발휘하도록 주도적으로 조직을
만들고 학교를 세우고 국정을 수행하였다.
이것은 실로 한국교회가 세상의 일에 대해서 염증만을 느낄 것이 아니라, 난
국의 극복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받은 은사를 발휘해야만 한다는 사
실을 보여주고 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의견을 제시하고, 대안을 마련해
서 제출하고, 부패와 부정을 밝히고 윤리적으로 살아갈 것을 호소하며, 그러
한 직임을 받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가운데서만 교회는 이 시대에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