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정당과 낙선운동_이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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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정당과 낙선운동 

이정석 (풀러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갑작스러운 기독교 정당 창당 소식이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정치권의 복음
화를 위해 기독교 정당을 창당한다는 격문이 일견 비장해 보이기도 하지만, 
군사 독재 30년 동안 침묵과 협조로 일관했던 분들이 주동이 되었다니 안타까
울 따름이다. 물론, 누구나 정치활동을 할 수 있지만, 올바른 정치란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성화란 고난을 감수하려는 일사각오의 헌신을 
필요로 하는데, 이제 민주화가 이루어진 오늘날, 정치하다 감옥에 갈 일이 별
로 없이 된 시점에서 영광과 권력을 추구하는 방편으로 이 일을 하는 것이라
면 진심으로 말리고 싶다. 
정치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영적 전투가 치열한 곳이어서, 투
철한 목표와 정치적 능력이 없는 아마추어는 한 순간에 당하기 마련이다. 바
울 사도가 경고한 대로, “정사와 권세”, 즉 아르케와 엑수시아는 우리의 순
종 대상이며, 동시에 우리의 투쟁 대상이다(딛 
3:1, 엡 6:12). 정치 배후에
는 “어두움의 권세 잡은 자”가 도사리고 있다. 물론, 권력자들과 정치계도 
구속되어야 할 대상이며, 그리스도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로서(골 
2:10),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
를 알게 하려 하신다”(엡 3:10). 따라서, 교회는 정치를 외면하지 말고 적극
적으로 관계해야 되지만, 동시에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정치계도 구속되어야 할 대상

그렇다고, 기독교가 정치에 움추리고 두려워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는 동
안, 권력은 비기독교의 소유가 되고 말며, 그러한 실패의 대가는 너무나 엄청
난 것이다. 더욱이, 현대와 같이 국가의 권력이 점점 비대해지고 국가가 삶
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선교와 전도만으
로 세계를 복음화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정치에서 실패하면 모든 
것이 실패한다. 
기독교의 발상지인 이스라엘이나 초대교회의 7대 교회가 있었던 터키는 이슬
람의 침공을 막지 못할 때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바울의 피나는 선교의 노력
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또한,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던 평양과 한국 초
대교회의 중심이었던 북한지역에서 공산주의와의 투쟁이 두려워 기독교 지도
자들이 남하운동을 주도하자 북한 기독교는 사라지고 말았다. 실로, 세계 복
음화의 대부분은 그것이 순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정치적 영향력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기독교를 미워하는 국회의원들이 과반수가 되고 대통령
이 그러하여 반기독교적인 법률들이 줄 이어 제정된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매우 어둡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국과 세계 복음화를 성공하기 위
해서는 한편으로 전도와 선교를 헌신적으로 전개하고, 한편으로는 정치권을 
확보해야 한다. 문제는 그 영적 성격 때문에 결코 처절한 투쟁 없이 정치권력
이 확보되지 못한다는 냉엄한 사실이다.

복음화에는 정치적 영향력 배제할 수 없어

기독교정당에 대한 반론들이 많이 있다. 그리스도인 일부는 거기에 참여하고 
일부는 다른 당을 지지할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정당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정치적 분열을 야기한다거나, 기독교정당의 출현이 반동적으로 비기독교인들 
혹은 타종교인들을 결집시켜 반기독교 정치세력의 형성을 야기한다
거나, 기독
교적인 용어와 경건한 제스처를 사용함으로서 좋은 정치에 대한 그리스도인
의 감각에 혼선을 야기한다거나, 정치란 불가피하게 보통 그리스도인들이 인
정하지 않는 타협이나 연대나 관용이나 투쟁을 요구하기 때문에 기독교 정치
인들 자신이 스스로 당혹스럽게 된다거나, 또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속적으로 
해석하고 복음을 인간화한다는 등의 우려와 비판이다.
물론, 그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들이 모두 기독교정당 없이도 일
어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정당 자체가 죄악이라거나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는 없다. 그러나 만일 기독교정당을 만든다면, 그것은 한국교회의 위상을 반
영해야 되고, 먼저 거국적인 논의와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당 이름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함부로 붙여서는 안 된다. 적어도 주축을 이
루는 정당이 되면 몰라도, 한국의 사실상 제1종교인 기독교 이름을 붙인 정당
이 소수정당이 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물론, 일부 기독교인들이 힘을 모
아 다른 이름을 붙이고 정치운동을 하는 것은 무방하다.

정치집단에 기독교 이름 붙이는 것 고려해야

오히려, 한국의 현실에서 더 바람직한 
것은 주요 정당 안에서 기독교 정치인
들이 연대하여 기독교블록을 형성하는 것이다. 정당정치가 당리당략으로 운영
되는 현실에서, 기독교인들이 개인적으로 신앙 양심에 근거한 행동을 하기란 
쉽지 않다. 같은 당의 기독교인들이 결집하여 예배도 드리고 기도와 찬양도 
하며, 정치 포럼도 열고 여러 분야의 기독교 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을 초청하
여 기독교 정치관을 확립하며, 한국교회로부터 올라오는 입법 청원들을 수렴
하여 함께 입안을 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초당적인 모임이란 당과의 관계 때문에 사실상 어렵고 형식적이 된다. 한국 
정당들이 학연이나 지연 등으로 블록을 형성하는데 기독교인들이 합세해서는 
안 되며, 그들은 정치권에 파송된 선교사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먼저 기독교 
정당인들끼리 연합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직업적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정치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전 세계의 통치자이며, 따라서 한국의 통치자이다. 그
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것을 실
현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사용하신다. 
아무나 대통령을 시켜서도 안 되고, 아무나 국
회의원을 시켜서도 안 된다. 기
독교적 가치관과 위배된 정견을 가진 사람에게 다른 세속적 이유로 표를 주
는 정치적 불순종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대의 투표제도에서 후보에 대
한 지식이래야 세속적 경력정도이고 구체적 가치관이나 정견을 모르는 상황에
서 투표를 강요당하는 현실은 비합리적이며,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적 순종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망의 순수한 기독교 정치단체가 형성되어 
모든 후보들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정밀 분석하여 객관적이고 자세한 정보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선출된 후에도 모든 정
치활동을 모니터하고 보고해야 한다. 

기독교 정치인들 블록화 시도해 볼만

이번에도 시민단체들이 낙천운동을 벌리고 있는데, 그 기준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나는 정치단체들이 자료만을 제공해야 하며 판단은 투표자 자신에
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호한 기준을 사용하여 낙천과 당천을 분류해주
는 행동은 어린이들에게나 통할 수 있는 유치한 발상이다. 시민단체들은 유권
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이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우면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일반 은총의 차원에서 불신자들과 연대할 수도 있으
나, 언제까지 정치적 리더쉽을 양보할 수는 없다. 사실 우리에게 그런 권한
이 없다. 한국교회가 이제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한 오늘날 한말이나 일제하 
또는 개국 초기에 소수로서 한국 정치를 주도했던 영광을 회복해야 한다. 그
것이 한국을 정치적으로 성화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정체된 한국교회
의 성장을 재개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