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말 해외 소식
▶ 인도네시아 : 인도네시아의 중국계 교회의 성장
기독교의 인기 텔레비전 복음 전도자이자 치유자인 베니 힌(Benny Hinn)은
지난 2006년3월 말에 인도네시아의 주요 도시를 순회했다.
십만 명 이상의 회중은 휠체어에 앉은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을 목격하
고 베니 힌의 은혜로운 설교를 듣기 위해 100달러(약10만원) 이상을 지불했
다. 세계 최고의 무슬림 인구를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베니 힌 같은 기독
교 사역자의 사역 대상지는 아닌 듯 보이지만 인도네시아의 대도시는 지금
국제적 복음주의 연결 망의 일부가 되었으며 은사주의(Charismatic) 개신교
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지역이다.
인도네시아의 무슬림들은 베니 힌 등과 같은 기독교 설교자에 별 관심이 없
다. 하지만 도시 지역의 부유한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은 교회로 몰리고 있
다. 1950년대부터 인도네시아에는 소수의 엘리트들만이 기독교인이었는데,
수백만의 중국인들이 전통 중국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에 호의를 갖게 되었으
며
이들 대부분이 복음주의 개신교회를 선호했다.
현재 5백만 명으로 추정되는 인도네시아 내 중국인들의 70% 이상이 기독교인
이다. 열정이 있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교회들은 개인적 확신과 물질적 성공
의 메시지로 특별히 젊은 중국인들의 마음을 끌며 부흥하고 있다.
이런 대규모 기독교로의 회심은 두 개의 큰 물결을 보이고 있는데, 첫 번째
물결은, 1950년대와 60년대에 중국 전통 문화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공개적
무관용(intolerance)의 반향으로 많은 중국인들이 회심하였다. 인도네시아
의 혁명정부는 중국 전통 문화를 상당히 답보적인 것으로 여기며 중국인들
을 처벌하였고 또한 중국인들이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심증을 갖고 있었다. 중국계 학교는 폐쇄되었으며, 학생들을 기독
교계 학교로 내몰렸고, 중국 사원에서 중국 문화의 특성들을 벗겨 내어 졌으
며, 사원에서의 종교 활동이 상당한 간섭을 받았다.
반면 기독교인들은 훨씬 많은 예배의 자유를 누렸다. 기독교는 중국인들에
게 (불교에 비교하여) 덜한 차별과 보다 넓은 활동 영역을 제공하였는데, 특
별히 정부에 관여된 일에 더욱 더 그랬다. 19
57년과 1969 사이에 중국 천주
교도의 수는 400% 이상 증가했다.
두 번째 물결은 1970년대 후반에 정부가 유교를 부인하면서 시작되었다. 법
으로 모든 인도네시아인은 자신의 종교를 공표해야 하는데, 유교를 믿는 이
들은 정부가 공인하는 5개의 종교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 받았다.
이와 유사한 시기에 부유한 국제 선교 단체들이 중국인들의 개종을 위한 성
공적인 운동을 멋있게 단행했다. 이들 은사주의적 개신교 단체들은 중국인들
의 사회 및 문화적 정서에 맞는 메시지를 솜씨 좋게 정교히 만들었다. 예를
들면, 불교 또는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회는 부의 축적을 옹호하였는데, 돈
은 거칠고 변덕스러운 사회에서 주요한 완충 역할을 한다고 믿는 계층에게
설득력 있는 메시지이었다.
은사주의적 교회는 또한 변하기 쉬운 중국 젊은이들을 끌어들일 현대적 조망
을 제시하였는데, “즐겁게 박수 치는(Happy Clappy)” 예배는 설교, 찬양과
기도 시간에 영어를 사용하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고루한 찬송가는 젊은이
들로 구성된 밴드가 연주하는 기독교 대중 찬양으로 대체되었다.
인도네시아 전역의 도시 지역에 사는 중국
인들이 모여 있는 대부분의 곳에
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다. 자카르타의 2개의 유선 텔레비전 방송국은 각
각 24시간 기독교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데 이와 비교되는 이슬람 방송국은
없는 실정이다. 도심 쇼핑 몰에서는 상가를 빌린 교회들이 상당한 수의 교인
들을 모으고 있다.
인도네시아 중국인들 사이의 종교적 합병은 이전의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중국인들 사이에서 관찰된 동향을 따르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처럼, 인도네
시아 계 중국인들의 기독교로의 개종은 이슬람교도의 신앙이 커지기 시작하
는 시점과 동일한 시기에 일어났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화가 가속화되는 것
에 대한 반응으로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외부적으로 더 드러내는 경
향을 보였다는 결론이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전통 중국 종교와는 달리 은사
주의 교회는 중국인들에게 자신들의 독특한 개성을 요란하고도 열정적으로
옹호할 수 있는 원만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더욱이 기독교 교회는 세계
기독교 소수 민족의 권리를 열심히 옹호하는 강력한 국제적 지지들과 연결되
어 있다.
인도네시아의 이러한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수 중국계 인도
네시아인
들이 기독교 공동체에 흡수되면서 인도네시아 사회의 주요 균열이 민족이나
인종적인 양상 보다는 종교적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기독교 개종이 비 무슬림에게로만 제한되는 한 이러한 균열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무슬림들을 개종시키기 시작한다면 이것에 대
한 반응은 아마 다를 것이다.
▶말라위: 교회가 방화되어 교인들이 다치다
아프리카의 말라위에서 방화범이 주일날 성도로 가득 찬 교회에 불을 질러
24명이 다쳤는데, 이중 3명은 부상이 심각한 것으로 말라위(Malawi) 경찰과
병원 관계자가 지난 2006년7월17일 발표하였다.
말라위의 수도 리롱위(Lilongwe) 에 있는 성 프란시스 천주교회 내부에서 신
원이 확인 되지 않은 한 남자는 5리터의 가솔린이 들어있는 깡통에 불을 점
화하였는데, 이 깡통이 폭발하여 교회 안에 있던 성도들이 놀라 교회 밖으
로 몰려 나왔다고 경찰을 발표했다.
이 교회 지도자들은 말라위의 수도에서 인구가 밀집해 있는 지역에서 교회
를 방화한 방화법의 범행 동기를 의심스러워 하고 있는데, 경찰은 방화 즉
시 현장을 도망친 방화범을 찾는데 모든 경찰 수
사력을 집중 하고 있다고 경
찰 대변인은 밝혔다.
기름이 든 깡통의 폭발로 인한 혼란으로 교회에 있던 성도들이 대피하기 위
해 문으로 한꺼번에 몰렸는데, 이 와중에 24명의 교인들이 다쳐 병원에서 치
료 받고 있다. 다행히 다친 이들 대부분은 가벼운 경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
졌지만 3명은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중 한 남자는 신체의
30% 정도에 화상을 입었고 두 명의 여인은 다른 이들에게 심하게 짓밟힌 것
으로 전해졌다.
천주교 리롱위 교구의 수장인 펠릭스 믁호리(Felix Mkhori) 주교는 방화가
일어 났던 주일 저녁 전국 라디오 방송에 출현하여 이번 전대미문의 야만적
인 행동에 충격을 받았다고 언급하며 부상당한 이들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자
고 촉구하였다.
아프리카 남부지역의 국가에서는 종교 단체에 대한 공격은 아주 드물게 일어
나는 비교적 평화로운 지역이지만 지난 2003년 테러 조직 알 카에다와 연관
되어 있다고 의심 받는 5명의 남자가 비밀리에 체포되어 미국으로 호송된
후 말라위의 성난 군중들이 여러 교회들을 공격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었
다.
또한 1992년에는 천주교 주교들
이 작고한 헤이스팅스 카무즈 반다(Hastings
Kamuzu Banda)의 독재에 대항하는 시위를 벌이다 몇몇 교회들이 공격 당하
는 일이 있기도 하였다.
한편 1999년 말라위 대통령 선거에서는 천주교 신자인 야당 지도자 관다 챠
쿠암바(Gwanda Chakuamba) 의 승리가 점쳐 졌으나 소수 종교인 이슬람교 신
자 바키리 무루지(Bakili Muluzi) 전(前) 대통령이 승리하자 이것에 항의하
는 시위로 몇몇 이슬람 사원들이 불타기는 일이 일어났었다.
말라위의 전체 인구은 1천2백만으로 이중 5백만이 천주교 신자로 추정되고
있다.
▶ 에리트리아 : 갇혀있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탄원이 접수되다
기독교 신앙 때문에 갇혀 있는 에리트리아 기독교인의 석방을 촉구하는 탄원
서에 11만 명 이상이 서명하였다.
현재 에리트리아에는 신앙을 이유로 1,800명 정도의 기독교인들이 재판도 없
이 갇혀 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신앙을 포기하겠다는 각서에 서명을 하
지 않은 다는 이유로 가혹한 대우를 받는데, 중노동 또는 며칠간의 지하 독
방이나 철제 컨테이너 안에 홀로 갇혀 있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5월 에리트리아 정부는 정교회
와 천주교 그리고 루터교를 제외한 모
든 교회의 즉각적인 폐쇄를 명령하고 이들 교회의 모든 종교 활동을 불법으
로 간주했다. 또한 정부는 자신의 집에서 신앙 활동을 하는 이들까지 박해
와 구속을 감행하였다. 정부의 허가를 받은 교회들도 국가의 간섭을 받아야
만 했는데, 정교회 총대주교는 정부에 의해 강제로 이동되었고 올해 초에는
가택 연금 상태에 들어갔다.
인근 에디오피아나 케냐 그리고 수단으로 피신을 간 에리트리아 기독교인들
에 의해 에리트리아에서 기독교인들에게 폭력과 고문이 가해졌고 그리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집을 떠나게 되었으며 남아있는 기독교인들은 보복을 당
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영국으로 피신을 간 기독교인들은 보복의 두려움
으로 자국의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는데 주저하기도 하였다.
2002년부터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와 구속을 알리는 소식이 증가함에도 불
구하고 에리트리아 정부는 에리트리아에서 신앙을 이유로 박해 받는 사람이
나 단체가 없다는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2006년7월18일 기독교 단체들은 런던에 있는 에리트리아 대사관으로 탄
원서를 접수시켰는데, 이 탄원서에
는 에리트리아에서 자행되고 있는 종교 자
유와 인권 침해가 반드시 멈추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스리랑카: 개종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출되어 심의를 받게 되다
스리랑카 의회의 상임 위원회는 현재 ‘반(反)개종법’이라고 불리는 ‘강
제 개종 금지 법’의 심의를 진행 중이다.
지난 2006년5월23일 스리랑카 복음주의 연맹(NCEASL: National Christian
Evangelical Alliance of Sri Lanka)의 3명의 대표는 반개종법을 거부를 촉
구하는 내용의 구두와 서면 의견서를 이 법안을 심의하고 있는 상임위원회
에 전달하였다. .
이 법안이 심의를 통과하면 다음 순서로 의회의 투표 절차를 밟게 되는데 투
표 처리에 들어 가 의회 정족수의 과반수 이상의 찬성표가 나오면 통과되게
된다.
이 반개종법을 대체할 다른 대체법안을 제안하려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는
데, 이 대체 법안은 개종과 종교 포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종교 활동을 규정하는 법안이 부재한 상황에서 스리랑카에는 기독교
인을 향한 폭력과 위협 그리고 교회의 물리적 폐쇄등과 같은 기독교 박해가
만연되어 있는 실정
이다.
스리랑카 복음주의 연맹은 반개종법이 개정이 되었다고 할 지라도 기독교와
같은 소수 종교에 대한 만연한 박해와 종교 자유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을 합
법화할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스리랑카 복음주의 연맹을 비롯한 다른 21개의 기독교와 힌두
교 그리고 시민단체들은 반개종법의 위헌성을 심판해 달라고 대법원에 소송
을 제기하여 반개종법의 두 개의 조항이 헌법을 위반한다는 판결을 받아내었
다.
현재 제안된 반개종법은 대법원의 위헌 판결 후 문제의 2개 조항을 삭제한
개정 법안인데, 아직도 이 법안에는 모호한 개념과 과도한 처벌 규정이 남
아 있다.
▶ 파키스탄 : 기독교인 여성이 남편의 폭력을 피해 피신하다
결혼과 함께 이슬람 신앙을 강요하는 무슬림 남편의 폭력을 피해 피신한 한
파키스탄 기독교인 여인이 은신에 들어갔다.
15세인 아샤 카딤(Asya Khadim)은 지난 2006년2월 폭행을 일삼는 무슬림 남
편으로부터 이혼 허가를 받아낸 후 보복을 피할 피신처를 찾고 있었다.
카딤은 무슬림 남편 카디르(Qadir)와 결혼하여 13개월을 지내다 그녀의 어머
니가 그녀를 대신하여 지난 2006
년1월 이혼 승인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녀의 남편 카디르는 그녀에게 이슬람 경전인 꾸란을 읽는 것을 가르치려
하였지만 카딤은 그것을 거부하였다.
카딤의 말에 의하면 남편과 남편 측 사람들은 강제로 그녀에게 꾸란을 읽도
록 하였는데 그녀가 거부하자 2달 동안 매일 그녀를 폭행하였다고 한다.
카딤의 사건으로 가정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정 폭력에 대한 전국적인 관
심과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파키스탄의 평화 위원회는 70%의 파키스탄 여성들이 가정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지난 2006년3월 보고하였다.
파키스탄의 인권 위원회는 최근 연례 보고서에서는, 구타와 화상과 사지 절
단 그리고 고문과 같은 갖가지 방법으로 여성들이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밝
히고 있다.
또 이 보고서에 의하면 학대 받는 여성들이 법에 호소한다고 할지라도 파키
스탄의 사법제도는 이들 여성들을 다시 한번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고 한다.
파키스탄 평화 위원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강간을 신고한 50%의 여성들이 오
히려 감옥에 갇히는데, 그 이유는 이슬람 형법에 의하면 강간을 입증하려면
무슬림 남성들의 증언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것
이 실패하면 혼외 정사인 간음
을 한 것으로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즉, 한 여성이 강간을 신고하면 역설적이게도 그 여자는 자신이 간음을 저질
렀다는 것을 밝히게 되는 셈이 되어 버린다고 파키스탄의 여성 인권 운동가
들은 말한다. 놀랍게도 이러한 사정으로 감옥에 갇히는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슬람 형법인 후드드 법령(Hudood Ordinance)은 강간과 간음에 대
해 처벌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드드 법령에 대한 논쟁이 지난 2006년6월 텔레비전으로 방영되어 파키스
탄 사회에 이 법의 파행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많은 무슬림들
은 이 법령이 이슬람법 샤리아를 기초로 만들어 졌다고 주장하며 논쟁을 일
축하였다.
또한 파키스탄의 6개 이슬람 정당 연맹의 강경론자들은 후드드 법령을 반대
하는 자는 꾸란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하여 왔다.
이러한 논쟁 가운데, 무샤라프(Musharraf) 파키스탄 대통령은 테러범과 살인
범을 제외한 모든 감옥에 갇힌 여성들에게 보석을 허가는 대통령 령(令)을
지난 2006년7월7일 발동하였다.
하지만 무샤라프 대통령은 후드드 법령이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권
n단체들의 요구를 묵살하며 지난 7월17일 논쟁이 되고 있는 이 법령의 개정
을 주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