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신비로움
< 임석주 목사, 창원참좋은교회 >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 가브리엘이 갈릴리 나사렛 동네의 처녀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하고(눅 1:26-35),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아기를 낳지 못하던 마리아의 친척 엘리사벳이 늙은 몸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들을 배어 지금 여섯 달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눅 1:36).
마리아는 너무 기뻐서 엘리사벳을 찾아갔고, 엘리사벳의 영접을 받은 후에 마리아는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눅 1:46-55).
마리아의 찬송 시는 한나가 사무엘을 낳고 사무엘상 2장에서 하나님을 찬송한 내용과 아주 흡사합니다. 이것은 마리아가 구약성경과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장에 보면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가 되는 마리아와 요셉은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은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 미가서 5장 2절에는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었을 때,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주저 없이 베들레헴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마 2:2-6). 아마도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다는 말씀은 유대인들에게는 어린이들도 알고 있는 상식이었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는 배가 불러오기 시작합니다. 임신 9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마리아와 요셉은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습니다. 성경에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곳이 베들레헴이라고 예언이 되어 있는데 이들은 왜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게 하려면 베들레헴으로 가야 하는데 왜 이들은 가만히 있었을까요?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Km 떨어진 곳으로, 나사렛에서는 145Km나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만삭된 여인이 나귀 같은 이동수단을 이용해서 하루에 10Km내지 20Km정도를 간다고 가정하면 1주일에서 2주일이 소요되는 거리입니다.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해서 마구간에서 예수님을 낳은 것을 보면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출발할 때 예수님을 잉태하고 9개월이 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리아와 요셉은 나사렛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만에 하나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예수님을 출산한다면 예수님은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약속하시고 무려 4천년이 지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태어나는 순간인데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태어난다면 4천년 동안의 기다림과 하나님의 약속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이것을 몰랐을리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나사렛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 이들은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았을까요? 마리아와 요셉은 베들레헴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환경적인 인도를 기다린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고 9개월이 지나 이제 곧 출산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도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계속해서 기다린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담으로부터 4천년이 지난 지금 자신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 앞에 감히 서두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끝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마리아의 배속에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 예수님이 첫 사람 아담의 실패를 회복시키고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마지막 아담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들도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려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성경의 역사를 통해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고, 사람의 조급함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고 오직 믿음으로 기다릴 줄 아는 훈련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만류하는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 16:23)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하는 열심으로 주님 편에서 말을 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일보다 자기의 생각이 앞 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단에게 이용을 당했고, 예수님은 내 뒤로(예수님보다 앞섰다는 것) 물러가라고 하신 겁니다.
결코 주님보다 앞서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보다 내 열심이 앞서지 않게 하십시오. 특히 당위성을 가진 일 앞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던 마리와 요셉을 하나님은 환경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눅 2:1-5).
마리아와 요셉은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요, 하나님의 시그널이라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12살 이상의 여인들도 모두 납세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호적을 해야 했지만 대개는 집안의 가장이 가족을 대신해서 호적을 하러 갔기 때문에 반드시 모든 사람이 호적을 하러 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임신 9개월이 넘은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갔다는 것은 이것을 하나님의 환경적 인도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와 요셉이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베들레헴으로 간 것과 두 사람이 미리 베들레헴으로 출발했다고 했을 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마구간 탄생입니다. 만약에 마리아와 요셉이 미가서 5장 2절 말씀을 기억하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베들레헴으로 미리 출발했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출산을 위해 최소한 여관방을 하나 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 기다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갔는데 방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신비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목자들에게 전해진 그리스도에 대한 표적이 됩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 2:11-12).
구약의 사람들은 초림의 주님을 기다리면 살았지만 우리는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면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며 우리의 존재와 삶으로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