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찬양대 발족에 즈음하여
“인생 황혼에 비로소 하나님 기뻐하실 찬양 할 줄이야”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도시인들에게는 거대한 빌딩과 비행기 등이 너무나 시시한 일들이고 촌스럽
게 여겨지는 것들이지만 오지 마을 어린이들에게는 신기한 것처럼, 찬양대라
는 이름 아래 신기하고 즐거워하며 대견스러운 채석포교회의 에스더 찬양대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이곳 채석포는 서해안 태안반도의 가장 서쪽 끝에 자리잡고 있으며 바다 끝
으로는 비열도를 통하여 중국의 바다와 맞닿아 있는 곳입니다. 이전에는 오
지 중의 오지였는데 이제는 서해안 고속도로 때문에 서울에서 2시간이면 닿
을 수 있는 곳입니다. 남해에 땅끝 마을이 있다면 서해에는 채석포 마을이
있답니다. 조그만 포구인데 마치 외국의 유명한 어느 휴양지의 모습을 떠올
리게 하는 곳이며, 자연산의 신선한 해산물이 풍부한 곳입
니다.
평생 직장에서 해고당할 일 없고 본인이 힘만 있으면 죽는 날까지 일할 수
있으며,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이 실버타운이라고 여기며 나이 많은 분들이
바다에 기대어 살고 있습니다. 주위에는 여름철에 전국의 피서객들을 유혹하
는 아름다운 이름들… 연포, 만리포, 천리포, 백리포, 몽산포, 꽂지 등 이름
만 들어도 가고 싶은 정말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즐비하며, 바닷가 어디든지
발만 담그면 그대로 해수욕을 할 수 있는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
니다.
매년 많은 교회들이 수련회를 위해서 저희 교회를 찾아주셨는데, 건물이 너
무 낡고 장마에 비가 새고 습기가 많아서 수련회에 오시는 분들에게 불편을
끼칠까 염려스럽고 이것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마음도 편치 않아서 금년에는
수련회를 수용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름 아니라 지난 맥추감사
절 밤 예배 때에 ‘에스더 찬양대’의 기념발표회가 열렸답니다. 찬양대의
발표라고 하니까 어느 거창한 합창단의 모습을 연상하겠지만 태어나서 처음
으로 대중 앞에 서보는 나이든 초로의 여성도들의 합창단입니다.
상기된 모
습과 긴장감으로 인하여 연신 화장실을 드나들며 진정시키는 모습을 보니 마
치 어린 학생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교회 성도들이 약 40여명 되는데 그중에 찬양대원이 12명이니 관객 절반, 찬
양대 절반인 셈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수 만 명이 모인 어떤 콘서트보다 더
진지하고 상기되었고, 떨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지도한 저 자신도 몹시 긴장
하였습니다. 이제 레슨을 받으며 처음으로 찬양대 반주를 하는 처지인지라
그들처럼 정말 떨렸습니다.
우리 교회의 에스더 찬양대가 발족된 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금년 4월 첫
주일이었습니다. 그동안 교회 어린이 주일학교와 찬양으로 예배를 돕던 여
자 청년이 갑작스런 혼인으로 인해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는 광고가 있었습니
다. 목사님과 성도들은 깊은 충격을 받았으며 허탈감과 슬픔이 교회 전체를
누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여자 청년은 단순히 한 명의 신자가 아니라 교회
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들의 딸이었으며 언니였고 선생님이었기
에, 작으마한 우리 교회에서는 이것이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주일학교와 교회의 여러 부분에서 대신할
만한 사람이 없기에 더 큰 일이었
습니다.
농어촌에서의 한 사람은 도시의 100명과도 같은 엄청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녀의 갑작스런 혼인 발표로 우리 모두는 혼인의 기쁨에 앞서서 교회에 미
칠 파장으로 걱정하고 있던 중에 목사님과 저는 분명 여호와 이레이신 하나
님께서 또 다른 준비를 하고 계실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기도하게 되었습
니다.
그러던 중에 비록 배우지 못하고 나이 먹은 성도들이지만 이들로 찬양대를
조직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0세 이하의 여자 성도들을
꼽아보니 11명이었습니다. 찬양대를 조직한들 반주자가 없으니 큰일이며, 할
머니들 노래 부르듯이 제멋대로 찬송가를 부르는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목회하기 전에 부부교사였던 경험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기대
하면서 도전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4월 첫주에 찬양대의 명칭을 ‘에스더 찬양대’라고 작명하고 찬양대장은 안
수집사 중에 한 분을 세우고 지도와 반주는 사모인 제가 하기로 하였습니
다. 이제 찬양대는 조직되었지만 피아노는 바이엘 정도만 겨우 경험해서 초
등학생 가르칠 정도의 실력밖
에 없는데 예배 중에 찬양대와 찬양 반주를 한
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겁나는 일이었습니다. 요즘이야 피아노 레슨
을 안 받는 아이들이 드물지만 나이 60이 다 된 우리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피아노 치는 사람은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겨우 도레미파 치는 실력으로 한 곡을 매
일 새벽 1시, 2시까지 연습하여서 다음 주 찬양대 반주만 하였습니다. 손목
의 인대가 늘어날 정도로 연습하였습니다. 손목은 아프고 허리는 결리고 진
도는 나가지 않고 답답할 즈음에 노회의 어느 목사님께서 노회 안의 농어촌
교회에 반주자가 없는 교회의 사모들에게 쉽게 반주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
로 계획하고 참여할 사모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저
는 이곳 채석포에서 보령 청라면까지 왕복 3시간, 한 주일에 한 번씩 레슨
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참여한 사람은 저 혼자였습니
다. 그로 인해 지도하시는 목사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점점 성과를 보게 되었
고 자신감이 생기면서 발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4월 둘째 주일 발족한 지 일주일이 지났
습니다. 그런데 예배당 안에
찬양대석은 있지만 찬양대원은 그 자리에 앉을 수 없습니다. 찬양대원이 찬
양대석에 앉으면 막상 예배 좌석이 텅 비어버리기 때문에 목사님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성도들과 함께 앉아 있다가 순서가 되면 앞에 나와서 찬양을 부
릅니다.
그런데도 찬양대원 자신들은 물론이고 자리에 앉아 있는 모든 성도들은 감사
와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특히 찬양대원들의 모습은 이전의 모습이 아닌 새
로운 모습으로 기쁘고 감사하며 자신들에게 찬양의 사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
사하는 생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배에 종종 빠지거나 일 년에 몇번 얼굴
을 보이던 이들이 이제는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출석하고 예배 후에 연습하
고 음악 공부를합니다. 교회가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반주자의 찬양을 따라 부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음악의 기초 이론부터
가르치면서 지도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들 찬양대원들을 지도하기 위해
서 먼저 리듬카드를 만들어 음표와 쉼표를 가르치고 리듬을 가르치며 한 박
자, 한 박자 세어 가며 연습하고 훈련하였습니다. 정말 감사한 것은 배우고
싶어도 가난 때문에 배울
수 없었던 이들이 배우려는 열망으로 가득 차있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저에게도 큰 힘을 주었습니다.
찬양대의 첫 예배 찬양곡은 487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였는데 제일 긴
장한 사람은 남편인 목사님이었다고 합니다. 대원들 걱정이 아니라 난생 처
음 찬양대 반주를 하는 아내의 실력을 아는 고로 진땀이 나는데 신통하게도
한 곳도 틀리지 않고 잘 하더라는 것입니다. 찬양대의 처음 찬양이 끝나자
몇명 안 되는 성도들이 큰 소리로 ‘아멘’하면서 화답해 주었으며 첫 출발
을 성공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날마다 달라지는 목소리와 세련미와 박자를 맞추어서 부르는 우리 찬양단에
게 목사님이 맥추절에 발표회를 갖는 것이 어떤가 하고 제안을 했습니다. 찬
양대원들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발표회를 갖기로 하고 연습을 하기
로 했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보통 때는 주일 밤 예배 후, 그리고 수요일 저
녁 예배 후에 연습하기로 하였는데, 연습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토요일
저녁에 또 연습 시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맥추절을 앞두고는 스스로 연습
시간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두 주일 동안 매일 밤 2시간씩 연
습하였습니
다.
이곳은 어촌인지라 부부가 함께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 어로 작업을 합니
다. 봄철이면 새벽 3시경에 바다에 나갑니다. 논밭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 대
로 새벽에 밭에 나가 해가 지면 지는 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옵니다. 새까맣
게 그을린 얼굴에 피곤에 지친 몸으로 저녁에 다시 찬양 연습을 하기 위해
교회로 모여드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
하며 그저 가슴 한켠이 뭉클하기만 합니다.
부족한 대로 연습은 끝나고 발표할 그 날이 되었습니다. 1부 예배를 드리고
2부 사회를 보면서 감격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채석포 교회에 찬양대가 조
직되고 기념 발표회를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기적적인 사건입니
다. 여자이기를 포기하고 누구의 엄마로 살면서 자신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찬양대의 일원이 되어서 교회에서 찬양을 부르는 귀한 일
을 하게 된 것입니다.
찬양대원들은 햇빛에 그을린 검은 얼굴이지만 곱게 화장도 하고 유니폼으로
마련한 하얀 티셔츠를 입고 힘있게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
보는 찬양대원 남편들은 너
무 감격하며 기뻐합니다. 아내를 사랑스럽게 여기
기 시작하였습니다. 외지에 나가 있던 자녀들도 발표회 그날에 고향에 내려
와서 어머니의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감격하였습니다. 자랑스러운 어머니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날 하이라이트는 목사님의 섹소폰 연주였답니다. 남편을 알고 있는 분들
은 빙그레 웃을 것입니다. 언제 배웠을까? 정말로 연주할 수 있을까? 의아
해 할 것입니다. 제가 레슨을 받는 동안 남편은 저를 기다리며 무료하게 있
었는데 어느 목사님이 은퇴 후에 섹소폰으로 봉사활동을 하자고 제안하여서
몇분이서 레슨을 받았던 것입니다.
레슨을 한 번 받고 혼자서 독학으로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연습을 하여 서툴
지만 2곡을 그날 연주한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자랑함이 아니라 ‘나이 60
이 되어서도 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땀흘려 고생하는 이들에
게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는데 나이 들어 이러한 모습으로나마 찬양을 드리게
되었다며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는 성도, 4분 음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자
기에게 박자를 가르쳐 주어서 새롭게 찬양
을 하게 되었다고 기뻐하는 성도,
자기가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음을 이제야 알았다면 놀라하는 성도, 이 모
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찬양을 부르게 되었고 그들의 삶이 찬양처럼
즐겁고 보람있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발표회에서 부른 곡을 녹음하고 우리가 구입하여 가정에서 일터에서 남
편들에게 자녀들에게 들려주도록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한 가지 더 큰 소망이 있습니다. 지금은 낡고 비가 새는 조립
식 예배당이지만 어느 날 새로운 예배당이 건축되는 그날 우리는 또 한번의
축하 발표회를 가질 것입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살아가는 성도
들이 온 정성과 힘을 다해 감사함으로 부르는 찬양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흠
향하실 것을 믿으며, 또한 더욱 열심히 찬송을 불러 좋으신 우리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소원해 봅니다.
이 자리를 빌어 피아노를 지도해 주신 목사님과 녹음에 도움을 주신 목사님
두 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