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털고 갑시다
황대연 목사/ 한가족교회
저희 교회는 헌금시간에 헌금함을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성도님들은 예배당
에 들어오면서 교회 입구에 있는 헌금함에 헌금을 드립니다. 개척초기, 헌금
바구니를 돌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어느 선배 목사님의 조언이 있었지만,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헌금은 미리 준비해서 드리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헌금함을 사용해오고 있습니다.
드려진 헌금에 대해 목사인 제가 그 내용과 기도제목들을 알고 새벽마다 위하
여 축복하며 기도하기는 하지만, 헌금 시간에 누가 헌금했는지 강단에서 발
표하듯 헌금봉투를 읽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봉헌 기도는 개별적이지 않고
헌금의 종류에 따라 전체적인 드림의 기도를 합니다. 그렇다고 주보에 별도
로 헌금자 명단을 싣는 것도 아닙니다. 비교해 본 바 없어서 헌금 바구니를
돌리는 경우보다 헌금 액수가 적은 것인지, 많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 제가 볼 때 모두들 자신의 믿음의 분량대로 성심껏 헌금
들을 하고 있다
고 생각합니다.
저희 교회는 3개월에 한번씩 분기를 정하여 등록교인들 모두가 참여하는 공
동의회로 모입니다. 이때 헌금 수입, 지출 내역을 결산하여 프린트로 나누
어 드립니다. 요즘은 교회 재정관리 프로그램을 사용하니까 컴퓨터 자판 엔
터만 치면 몇 초도 안되어 수입, 지출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보기 좋게 출력
이 됩니다. 참 좋은 세상입니다.
교회가 작다보니 교회의 재정은 수입에 비해 쓰는 데가 많아서 늘 마이너스입
니다. 그러다 보니 오백 만 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은 늘 고무줄처럼 늘어났
다 줄어들었다 벌써 2년째 갚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은행으로부터 아
무 날까지 다 갚든지, 아니면 다시 서류를 갖추어 은행에 나와 대출기간 연
장 허락을 받아야한다는 통지가 왔습니다.
이번엔 이것을 다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쓸 망정 빚지고
는 못살 것 같았습니다. 주홍글씨처럼 새겨진 교회 장부의 마이너스 흔적을
지우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 몇 날을 엎드려 기도하고 지난 1/4분기 공동의
회 때 교회 식구들 앞에 그런 속마음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삼십대의 L형제,
K형제가 거듭니다.
“목사님, 털고 갑시다. 빚을 다 갚는 것이 좋겠습니다.”
모두들 그게 좋겠다는 동의의 표정들입니다. 저는 이어서 말합니다.
“빚을 다 갚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부담을 나누어져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헌금을 좀 더 하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제가 한 달 사례비를
반납하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얼마 후 중년의 J성도께서 조용히 한 말씀하십니
다. 그분은 등록하신 지 얼마 안 되는 분으로 제게 일대일 제자훈련을 받는
분이기도 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께서 생활비를 반납하신다니…죄송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 문제는 무리하기보다는 목사님께서 수고스러우시더라도 대출 기간을 일
단 연기하시고, 다음 회기까지 석달 동안 긴축해서 살아보면서 갚아나가는
것이 어떠실까 합니다.”
이번에도 모두들 그게 좋겠다는 동의의 표정들입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
야 하나…생각 끝에 찬, 반 양론을 묻기로 했습니다. 의견은 다를 수 있지
만,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이니 결정 여부에 따라 시험은 들지 않기를 바란
다면서 거수를 하니 중년
의 J성도의 의견을 따른 분들이 많았습니다. 결국
다음 회기까지 보류하기로 하고, 공동의회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한 주를 보낸 그 다음 주일…헌금 중에 십만 원 짜리 수표가 두 장
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교회 통장에 입금키 위해 은행을 찾았는데(회계가 사
정이 생겨 제가 대신 입금하게 되었지요.),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은행 한쪽
에 놓여있는 CD단말기를 사용하는 데, 수표가 계속 되물림이 되는 것이었습
니다.
“응? 뭐가 문제지?”
수표를 꺼내들고 자세히 보니, 그것은 십만 원 짜리 수표가 아니었습니다.
CD단말기가 받을 수 없고, 창구의 은행직원을 통해서만 입금할 수 있는 일
천 만 원짜리 수표 두 장, 그러니까 모두 이천만원이었던 것입니다! 교회에
돌아와 회계 장부를 보니 틀림없이 십만 원짜리 두 장으로 기록되어 있는
데…회계에게 전화하니 깜짝 놀라는 눈치입니다. 습관처럼 수표만 보고 액
수 확인을 안 했던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K권사님의 십일조였습니다.
“권사님, 웬 십일조를 이렇게 많이 하셨습니까?”
“목사님, 나가 이번에 시골 땅을 팔았어라…이제 다 정리해부렀소.
..그래
도 하나님께 참 감사해부요…”
K권사님은 시골 권사님으로 이곳에 사는 아드님 집에 올라오셨다가 아예 이
곳에서 사시기로 마음을 정하시고 가까운 저희 교회 새벽기도회에 몇 번 나오
셨다가 감동이 되셨던지 작은 지하실 교회에 등록하신 분입니다.
이날 저녁, 저는 일대일 제자훈련 관계로 중년의 J성도님 댁을 찾았습니다.
시작에 앞서 차 한잔을 놓고 잠시 교제하는데, J성도는 작은 봉투를 하나 꺼
내 조심스럽게 상위에 올려놓습니다.
“이게 뭡니까?”
“목사님, 지난주일 공동의회 때, 목사님께서 빚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시
는 것을 보고 많이 생각했습니다. 전, 우리 목사님께서 돈 얼마 때문에 은행
에다 아쉬운 소리를 하셔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
다…그래서 제가 어디서 취해왔습니다. 헌금은 아니고, 일단 빌려드리겠습
니다. 단, 이자 걱정은 마시고 교회의 마이너스 통장을 정리하는데 쓰십시
오. 오백 만원입니다…”
저는 그 봉투를 들고 무척 감동했습니다. 위하여 축복 기도를 드리는 데 나
도 모르게 목이 메었습니다. 간절히 기도 한 후, 봉투를 도로 돌려
드립니
다. 눈이 둥그래지는 J성도님께 오늘 어느 성도님의 수표 두 장 이야기를 하
며, 빚은 그렇게 다 털어졌노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J성도님 역시 감동이
되시는 듯, “참 잘된 일입니다. 참…” 하며 기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많이 위로 받고 용기를 얻은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