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시련
박종훈 목사/ 궁사교회
시골에 살면서 해마다 새봄이 오는 소식을 가장 실감 있게 느끼며 볼 수 있
다고 한다면 알뿌리를 가지고 있는 여러해살이 꽃들이다. 수선화와 상사화 그
리고 히야시스는 정월 보름만 지나면 땅위에 하얀 눈이 있어도 뾰족한 초록색
의 잎을 땅위로 얼굴을 내밀듯 솟아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늘 보이는 나무들과 달리 이 꽃들은 겨울에는 전혀 볼 수 없는 흙속에 꼭꼭
숨어 있다가 봄이 온다 싶으면 제일 먼저 기지개를 켜듯 솟아나는 생명의 신
비와 환희를 맛보게 한다. 어쩌다 잊어버리고 화단에서 삽을 가지고 땅을 파
다 깊이 잠든 알뿌리를 발견하고 황급히 놀래어 도로 묻어주는 일도 있었다.
땅위의 바람은 아직도 차갑지만 따뜻한 햇볕이 잘 드는 양지쪽에는 하루가 다
르게 자라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다 추워지면 그대로 성장이 멈추
며 따뜻한 날씨가 오기를 기다리곤 한다.
봄의 날씨는 따뜻하다가도 갑자기 추워지는 기상의 변덕스런 과정이
여러 번
지속된다. 이때 가장 시련을 겪는 식물은 봄인 줄 알고 땅위로 올라왔던 꽃들
이다. 특히 수선화는 다른 꽃보다 앞서 자라기 때문에 더 큰 고통을 감수해
야 한다.
지난 폭설로 고속도로가 마비되는 그때 이곳에도 적잖은 눈이 내렸었다. 며칠
만 있으면 꽃을 피우려고 꽃봉오리까지 달린 수선화가 벌거벗은 몸으로 혹독
한 추위와 싸우고 줄기를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는 더 추워지자
꽃봉오리를 가진 줄기는 더 이상 못 견디겠다는 듯이 쭉 처진 채 땅으로 고개
를 숙이고 있었다. 비록 말 못하는 식물이지만 가엾은 마음 금할 수 없었다.
따뜻한 봄인 줄 알고 부지런히 태양을 향해 올라왔건만 변덕스런 날씨가 다
시 겨울로 가는 듯한 추위가 다가오자 그저 참고 기다릴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사람들은 이 추위를 꽃샘추위라고 부른다. 남이 잘되고 행복을 누리고자하면
시기하는 인간의 죄성을 자연의 현상으로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한
번 더 깊이 생각하면 이 시련은 꼭 필요한 자연의 질서이다. 병아리가 세상
에 태어날 때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듯이 새로운
세
계로의 변화는 반드시 고통의 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
도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해산의 고통으로 천하보다 귀한 사람으로 이 세상
에 오는 것이다.
봄을 알리는 이 꽃들이 일단 땅위에 모습을 드러내면 아무리 추워도 다시 포
근한 흙속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추우면 그저 성장을 멈추고 기다릴 뿐이
다. 그러면 반드시 봄은 오고야 말고 마침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야 만다.
지금은 수선화가 마치 나팔이 큰 금관악기 마냥 동쪽을 향해 활짝 피어 있고
히야시스도 위를 향하며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모진 꽃샘추위를 견디고 마침내 꽃을 핀 식물들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의 한
면을 보는 것 같다. 특히 요즘처럼 파혼(破婚)의 가정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인내하지 못하고 성급한 판단으로 여러 사람이 고통을 겪는 결과를 보면서 봄
에 피어나는 꽃들을 통해 주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결혼이 갈수록 화려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혼인식이지만 상대적으로 늘어만가
는 이혼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결혼은 분명 축복이요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책임과 의무와 고난이 반드시 따라온다.
꽃샘추위와 같은 시련
이 오더라도 참고 견디며 살아가면 활짝핀 꽃처럼 행복과 열매가 반드시 오리
라 믿는다. 지금의 노인들은 이보다 더 엄청난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약속대
로 가정을 지키며 살아왔다. 비록 본인들은 험난한 세상을 살았어도 그 자녀
들을 통해 위로와 보람을 받게 되는 것을 우리의 이웃들을 통해 늘 확인한
다.
비단 결혼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행복 뒤에는 희생과 고난의 과
정을 지나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꽃샘추위는 간간이 오다 지나가지만 반드
시 봄은 돌아온다.
해마다 봄이 되면 나 역시도 한차례 몸살감기를 홍역처럼 치른다. 이때는 밥
맛도 없고 삶의 의욕도 떨어진다. 이때는 그저 조용히 쉬면서 한방차를 마시
면 이삼일 지나서 몸이 회복된다. 올해는 독감과 함께 오는 바람에 며칠 더
앓아 누웠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며 이전보다 더 몸이 개운하고 밥
맛도 좋아진다. 나에게 이러한 과정은 건강을 유지하는 아주 자연스런 일로
긍정적으로 받아드리고 있다. 자연을 좋아하기에 자연을 닮아 가는 체질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