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을 기준 삼아선 안 됩니다
남웅기 목사/ 바로선교회
누군가 제게 “대구역이 여기에서 멉니까?”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그
분은 직접 다녀 온 후에 “그게 어떻게 멉니까? 그만하면 가까운 거리지요”
했습니다. 얼마 후에 또 다른 사람이 대구역을 묻기에 이번에는 “가깝다”
고 했더니만 이 분은 다녀 온 후에 “그렇게 먼 거리를 가깝다고 표현하세
요?” 항변성 있는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왜 두 사람의 반응이 다를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들의 반응 앞에는 생략
된 말이 하나가 있습니다. “내 생각보다는”이라는 말입니다. 멀다고 생각하
고 갔는데(멀다기에 서울 청량리 이문동에서 강남의 양재동 정도의 거리를 생
각했었는데) 너무 가깝더라는 것입니다. 나중의 사람은 가깝다기에 자기 집에
서 동사무소 정도의 거리를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멀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구역이 멉니까? 가깝습니까?”라는 질문은 질문으로서 합당
치 않습니다. 반드시 객관적인 기
준치가 제시되어야만 합니다. 대구역이 한일
극장보다 멀다든지, 아니면 대구역이 도청보다 가깝다라고 표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의견이 갈라지고, 평가가 갈라지고, 느끼는 행복감이 달라
지는 것은 모두가 자기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 사람들이 자본주
의 사람들보다 절대적으로 빈곤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뜻밖에도 행복
감을 느끼고 사는데 비해 자본주의 체제하의 사람들은 놀랍게도 불행을 한숨
짓는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심각한 박탈감을 느끼기 때
문입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높은 지위에 있고, 현대의 문명이기를 마음껏 즐기며,
팁을 하룻밤에 몇 십만 원씩 팍팍 쓰고도 괴로워서 밤마다 술을 퍼 마시지 않
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채소장사를 하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혼을 소중히 여기며, 말씀을 사모하며, 행복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늘 선하지를 못하고, 사람의 욕심은 잠시도 멈추지를 못합니
다. 서로가 다투고, 불신하며, 미워하며, 분열하며, 불행해 하는 것은 모두
가 자기 생각만 판단기준으로 삼고, 다른 기준
을 용납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
님의 말씀을 기준 삼으면 판단이 분명해지고, 자신의 병든 영혼을 살피게 되
고,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을 알게 되어 모든 것이 감사요, 기쁨이요, 행복
이 되는 것입니다.
금번에 학생겨울수련회에 참석했을 때, 몇몇 학생들은 목사들의 눈에 확 들어
왔습니다. 다른 학생들의 주목도 한 몸에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시
종 환한 웃음이었고, 그들의 움직임은 활달했고, 자신만만했고, 강의 태도는
진지했습니다. 청년형제 자매들의 섬김의 봉사도 아름다왔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서 저렇게 살아야 하는 거다!” 저는 무릎을 쳤
습니다. 반면에 자기 생각만 강요하고 자기 기준만 내세운 학생들이 있었다
면 금번수련회가 그들에겐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는 말씀의 기준이 필요한 것처럼 사람과 어울리
는 데는 자기 기준을 죽이고, 공동의 기준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이 글은 바로선교회 홈페이지 http://853. or.kr에서 필자의 허락을 받아 가
져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