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교수의 목회서신 연구(29)-어리석은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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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예수 (딤전 2:6a)

조병수 교수/합신신약신학

대학시절 잠시 과외를 지도한 일이 있었다. 수업이 중도에 도달하면 일하
는 아주머니가 과일접시를 내밀 뿐 이상하게도 학생의 어머니는 한번도 나타
나지 않았다. 속으로 무척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과외지도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마지막 수업을 하던 날 
학생의 어머니를 보게 되었다. 아, 나는 움찔 놀라고 말았다. 그 어머니의 얼
굴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야기를 들어보니 아이가 어렸을 때 목조로 된 집에 불이 났는데 아이를 끄집
어내려고 뛰어들었다가 그만 심한 화상을 입어 얼굴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
기를 속전으로 주셨다 (딤전 2:6a). 이 한 토막의 짧은 진술에서 우리가 놓쳐
서는 안될 것은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한 속전으로 내주신 것이 다름 아
닌 “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이다. 구속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창조자
의 권위를 가진 분으로서 빛을 창조할 때처럼 한 마디 말씀을 하시면 안되었
을까? 옛날 여호와 이레의 산에서 아브라함을 위하여 준비하셨던 것처럼 양이
나 한 마리 주시면 안되었을까? 광야를 걸어가는 이스라엘에게 시은소를 베푸
셨던 것처럼 신령하고 천상적인 물건을 내주시면 안되었을까? 인류의 구속을 
이루기 위하여 거룩한 제사장 아론이나 위대한 성군 다윗 같은 인물을 대신 
죽이면 안되었을까? 아니, 가브리엘이나 미가엘 같은 찬란하게 광채 나는 천
사를 인류구속을 위한 희생물로 내놓으면 안되었을까? 

예루살렘의 시릴 (Cyril)에게 귀를 기울여 보라: “우리를 위하여 죽은 것
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어떤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비이성적인 짐승도 
아니었고, 평범한 사람도 아니었고, 심지어 천사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성
육신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Cat. 13,33).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
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내주셨다. 이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처사인
가?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
리요 사람이 무
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 16:26)고 가르치신 예수께서 사람들을 
구속하겠다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으니 이 얼마나 모순되는 일인가? 예수께
서는 인류구속을 위하여 더욱 지혜로운 방법을 찾지 못하고 가장 어리석은 방
식을 택하신 것이다. 말구유에 어린 아기로 오신 것도 미련한 일이요, 가난하
고 병약한 자들을 친구로 삼으신 것도 어리석은 일인데, 인류를 구속하겠다
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못에 박히고 창에 찔리어 피를 쏟고 살이 찢겨 처참
하게 죽었으니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이다. 그가 행한 모든 것
이 어리석은 일이다. 게다가 그가 구원하기를 소원했던 인류가 무슨 보배라
도 된단 말인가? 죄인들, 악인들, 사특한 자들, 범법자들, 불의한 자들, 무법
자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인간들을 위하여 예수 그
리스도는 자신의 목숨을 내주었으니 정말 어리석고도 어리석은 자이다. 

어리석은 예수! 그 못난 행위에, 그 미련한 방법에, 그 어리석은 처신에 손
가락질하며 비웃어라. 먼지 같고 벌레 같은 인생을 구하겠다고 하나님의 신분
을 내버린 어리석은 예
수를 향하여 마음껏 비웃어라. 어리석은 예수를 비웃
는 자는 아기를 구하려고 불 속에 뛰어든 어머니를 비웃는 자이다. 아이를 구
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불 속으로 내던진 어머니를 누가 감히 어리석다
고 하는가? 어머니의 어리석음이야말로 아이에게 가장 큰 은혜인 것을 모르는
가? 예수의 어리석음이 은혜이다, 절대적인 은혜이다.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
하기 위하여 언어를 사용하든지 물건이나 짐승이나 사람이나 천사를 내주는 
지혜를 발휘했다면 그것은 부분은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멸망 받
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내주신 예수의 어리석음이 절
대은혜이다. 먼지와 같고 벌레와 같은 나를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내주
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앞에서 가슴이 떨리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