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의 베드로  박동국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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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의 베드로 

박동국 장로/동흥교회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하여 모범적인 신앙고백을 했습니
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는 말은 우리 모
두가 ‘아멘’ 해야 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이 신앙이 반석이 되어 교회를 세우
게 하였고, 또 천국 열쇠를 허락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
려 죽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한다는 사실을 베드로는 받아들이지 못하여 예수
님을 붙들고 만류하다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
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
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결과론 적으로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예수님과 

께 십자가에 달리지 못하였고, 다시 고기잡는 어부로 되돌아갔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가는 데 실패했
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잃는 것이 구원을 얻는 길임을 확신하지 못
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두고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서 칼을 휘둘러 ‘말고’의 귀를 잘라 허세를 과시하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
다. 디베랴 바다에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아
가페”(무조건적 사랑,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하느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과거 주님과 함께 죽지 못한 자신의 위선과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절감하
고 있었으므로 그는 “내가 주를 ‘아가페’ 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고 감히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주를 ‘필로'(조건적 사랑, 인간적 
한계가 있는 사랑) 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정직하게 대답했습니다. 

다시 주님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아가페’ 하느냐”고 물었습니
다. 
이 질문은 “네가 나를 ‘아가페’ 할 수 없다는 것이 진실한 고백이냐”라
는 확인 질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더 낮은 자세로 “내가 주를 ‘필로’할 수밖
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주님은 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에는 주님께서 질문의 말을 바꾸어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필로’ 
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이것은 “네가 ‘필로’ 밖에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이
제야 고백하는구나.”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근심하면서 “내가 
주를 ‘필로’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주님은 처음부터 아셨습니다. 주님 저
를 용서해 주옵소서.”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주님은 “내 양을 먹이라” 하시고 이어 “네가 젊어서는 네 맘대로 다녔지만 늙
어서는 네가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너를 원치 않는 곳으로 데리고 갈 것이니
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팔을 벌린다’는 말은 ‘자기를 지키기 위하
여 방어하지 않고, 어디든지 인도하는 데로 순종하며 따르겠습니다.’ 라는 의
미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베드로는 인간적 한계를 인정하고 주님께 “
나는 ‘필
로’ 이상으로 주를 사랑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했을 때 주님께서
는 자신을 진실로 발견하고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를 들어서 주님을 ‘아가페’ 
할 수 있도록 높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는 “나는 주를 ‘아가페’ 한다”는 위선자들이 너무 많습니
다. 그러나 우리는 주를 ‘필로’ 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죽으면 ‘성령이 우리를 ‘아가페’ 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
다. 죽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위선자입니다. 위선자는 주를 ‘아가페’ 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주를 향하여 팔을 벌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