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과 의인의 길_송영찬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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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과 의인의 길

송영찬 국장 daniel@rpress.or.kr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시고 그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다
(창 12;1-3).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복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했는
데 그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믿음으로 아
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
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
니라”(히 11:8-10).

아브라함의 복은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나라에 참여하는 것이었으
며, 아브라함은 그 나라에 속하는 모든 백성의 아버지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
이 복의 근원이었던 아브라함이 누리는 복이었다.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후
손이라면 의당히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누리게 되는데 그것은 아브라
함의 언
약에 참여하는 것으로 주어질 것이었다. 이 언약은 마침내 아브라함의 후손들
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는 것으로 성취되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기
업은 아브라함이 참여한 영원한 나라에 속하게 될 것을 보증하는 증표(sign)
로서 의미를 가진다. 

시편 1편에서 말하는 ‘복 있는 사람’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여
기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삶과 구별된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
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시 1:2)이다. 이것은 
복 있는 사람이라면 언약의 성취 과정에서 주어진 시내산 언약에 참여해야 한
다는 정당성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
러내심으로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셨고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기로 하
셨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율법을 순종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
다. 하나는 그가 아브라함의 언약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며 동시에 언약의 
성취로 약속의 기업을 누리고 있을 것에 대한 것이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은 이 세상을 이분법으로 구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누가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인과응보의 상선벌악(賞善罰惡)을 주장하지는 않는
다. 하나님의 상급과 심판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인간적인 판단이나 참여로 변
경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편 기자는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다르며 
그 두 길은 나무가 열매를 맺음같이 명확하게 그 결실로서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중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길을 제시하는 것에는 언약에 참여한다
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보여주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우리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
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고 말씀하셨다. 이 세상은 온
통 성공지상주의, 행복지상주의에 빠져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로지 언약의 말씀 안에서 사는 ‘의인의 
길’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이 세상과 구별된 교회의 진정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