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박윤선 목사 설교>
바른교회(1)
롬 12:1; 히 12:14
1. 교회는 성결(순결)해야 됨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
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롬 12:1).
인간은 자존자(自存者)가 아니며 자율자(自律者)도 아니다. 그는 의존자(依
存者)로서 하나님을 섬길 자이다. 그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쳐야 된다는 사실이다. 본문의 “너희 몸
을 …… 드리라”는 말씀은 우리 자신을 드리라는 것과 같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쳐야 되는 이유는 나 자신은 모든 것의 촛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몸을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은혜를 다 큰
것으로 아는 까닭이다. 우리가 작은 은혜라고 생각하는 그것도 지극히 높으
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므로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그것으로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까닭이 아니라, 그것이
라도 드려서 감사의 뜻을 나타내려 함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
를 생각할 때에 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도 드려야 할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말해서 “거룩한 산 제사”는 무엇인가?
(1)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화(聖化)되어 감
“성화”는 무엇보다도 기독신자 자신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끗해지는 것이
다. 그는 전에 즐기던 죄악을 끊는다. 헨리 알라인은 시편 38편을 읽다가 그
말씀이 자기의 영혼 속으로 밀려 들어오는 듯한 은혜를 받고 죄를 심히 아프
게 깨달으면서 기도하던 중 사죄의 기쁨을 얻었다고 한다. 1823년에 빌리 브
레이는 기도하기를 “당신이 말씀하시기를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셨지요, 나는 믿습니
다.”라고 하였다. 그때 그는 그의 영혼이 아주 새로워지는 사실을 체험했다
고 한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성화시키
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점진적이다. 우리가 성결을 찾아야 할 이유는 육체적
행복보다 성결을 더 귀히 여겨야 되기 때문이
다(히 12:4).
(2) 성별(聖別)을 힘쓸 것
“성별”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리를 비진리와 섞지 아니함이며, 하늘나라의
것을 세속화하지 아니함이다. 고후 6:14-17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
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
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
이라 ……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하였다.
교회가 진리를 증거하다가 어떠한 희생을 당하든지 그것은 소금의 직분을
행한 것이고 성별의 생명을 가진 운동이다. 우리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교회
의 역사를 회고해 볼 때 성별운동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것이 속화운동과 충
돌해 오면서 교회의 생명을 보전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상고시대에 가인
과 아벨의 다툼은 성별과 속화의 충돌이었다. 아벨은 가인의 속화운동에 삼키
우지 않고 끝까지 참된 신앙을 파수했으므로 성경은 증거하기를 “저가 죽었으
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 11:4)고 한다.
스웨덴 서부에는 교회가 많기로 유명하다. 또 그곳의 기독신자들은 비타협
주의로도 유명하다. 그 나라의 성도들은 교회에서 사경회를 하는 몇 날 동안
계속 상점 문을 닫고 집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 나라 교회에 이같은 신앙
분위기가 이루어진 것은, 19세기에 헨릭 솰토(Henrik Schartau) 목사가 모든
합리주의자들과 충돌해 가면서 성경 진리의 절대성을 파수한 결과이다. 그 당
시에 솰토와 함께 바른 신앙노선에서 일하던 목사들은 책벌도 받았고 출교도
당했다. 그러나 마침내 그들의 진리파수 운동으로 말미암아 스웨덴의 서부는
강한 신앙의 지역이 되었다.
노르웨이에는 한스 닐센 하우게(Hans Nielsen Hauge)라는 신앙 인물이 일어
나서 합리주의와 충돌하고 아홉 번이나 투옥된 일이 있었다. 그는 현대 “노르
웨이의 아버지”라고 불려 오고 있다. 그만큼 그의 영향력은 컸다.
2. 교회는 화평을 유지해야 됨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
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교회는 “순결
“을 주장하는 동시에 “화평”도 주장한다. 그런데 이 둘은 함
께 주장되기 어려운 경우를 만날 때도 있으니, 신자들이 순결을 주장하는 가
운데 순결치 못한 자들의 공격을 당하여 다툼이 일어나기 쉽다. 순결과 화평
은 함께 있어야 하겠지만 이 둘의 공존(共存)을 유지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
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 둘의 공존을 위하여 노력해야 된다.
그 노력이 진리와 법도에 근거한 것이라면 좋은 열매를 가져올 수 있다.
(1) 화목하는 자는 남을 잘 이해하는 자이다. 그는 남들의 실수를 자신의
실수와 같이 생각하고 자신도 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자이다.
(2) 화목하는 자는 옳은 말이라도 부드럽게 하는 자이다. 잠 15:1에, “유
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하였다.
신자들이 혹 의분(義憤)으로 인하여 과격하게 말하다가 화목을 깨뜨리는 일
이 있다.
(3) 화목하는 자는 용서하는 자이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마침내 자기에게
유익을 가져온다. 잠 19:11에 말하기를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
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
기의 영광이니라”고 하였다. 신자들이 서로 용서
하지 못하고 머리카락을 쪼개듯이 작은 허물까지 들추어 낸다면 그것은 잔인
한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