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소망으로 살자
살전 4:13-18
故 박윤선 목사
사도 바울은 성도의 소망은 영원한 내세(來世)임을 확언하면서“우리가 소
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
요”(롬 8:24)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보이는 것은 잠깐이기 때문이다(고후
4:18). 모든 사람이 죽는 것은 동일하지만 마지막 날 주님의 재림 때에 생명
의 부활을 받는 자는 영생한다는 말씀이 성경에 약속되었다(요 5:28-29). 그
런데 그 소망은 현실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미래이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
는 방법은 무엇인가?
1. 예수님을 믿음
본문 14절에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라고 하였는
데 이 말씀은 부활 소망을 가지는 방법이다. 인간은 어떤 철학적 이론이나 과
학적 방법에 의하여 부활 소망을 가지는 데 도달 할 수 없다. 우리가 믿을 만
한 이는 예수님뿐이다.
(1)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 그는 죽기까지 인류를 사랑하시고, 죽기까지 진
리를 파수
하시고, 죽기까지 죄와 거짓을 대항하여 싸우셨다. 그의 시대에 종
교인들은 거짓되었고 불의하였으며, 일반 인류도 부패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과 정반대로 하나님을 바로 나타내셨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로서 인성(人性)을 취하셨으니 사람 중에 오직 예수님 한 분만
이 참 사람이었다. 이 사실에 대하여는 네 복음서가 증거한다. 우리는 네 복
음서에서 예수님의 참 사람되신 성품을 깊이 느껴야 된다. 그만큼 성경을 자
세히 읽는 것이 예수님을 보고 만지고 실감하는 믿음에 들어가는 방법이다(요
일 1:1). 우리는 이 믿음에 들어가기 위하여 복음서를 매일 얼마씩 정독(精
讀)할 필요가 있다.
(2)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음.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
님의 아들로서 죽임이 되신 그의 억울한 죽음(마 27:4)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
의 공의로우신 심판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불의하게 예수님을 죽였으나
하나님은 의롭게 그를 다시 살리셨다(행 3:14-15).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와
같은 처사는 그의 의(義)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인 고로 우리가 믿지만 그보다도 그의 부활
이
하나님의 의이기 때문에 우리는 믿는다.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켜 직접 혹은
간접으로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말씀은 다음과 같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
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요 16:10),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롬 1:17), “이 예수
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
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그는 육신으로 나타내신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세
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딤전 3:16). 신자의
믿음이란 것은 일면 진정한 옳음(義)을 향하여 자기 자신을 의탁하는 결단이
기도 하다.
2. 예수님의 말씀(성경)을 믿음
본문 15 절에“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부활)을 말하노니”라
고 한다. 여기“주의 말씀”은 ‘부활 신앙의 근거’라는 뜻이 이 구절에 들어
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의 진실성과 권위를 알 때에 그 내용은 자동적으로 믿
어진다(롬 10:17). 주의 말씀은 모르는 것이 없는 밝은 말씀이고(히 4:12-
13), 살아 계신 성령이 함께 하시는 생명의 말씀이고(벧전 1:23), 천지는 없
어지겠으나 없어질 수 없는 진실한 말씀이다(눅 21:33). 사람은 세력이나 법
칙을 신뢰하기보다 말하는 것을 특징으로 가진 인격(자의식과 자유가 있는
자)을 믿기 원하며, 또 그 믿음으로만 안식을 누린다. 그 이유는 참된 인격에
만 진정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믿을 만한 참된 인격은 주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그리고 인격과 인격의 의사 소통은 말과 글로만 완전
히 실현된다. 주님은 그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접촉하시며, 또 우리는 그 말씀
을 받음으로 그분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