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홈즈나 루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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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홈즈나 루팽이 아니다!
-부활의 역사성과 생명력

김재성 교수(합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인류 구원의 약속을 성취하였다. 이 두 가지 중요한 
핵심 교리 가운데서, 부활은 항상 십자가 뒤에 나오는 부속품처럼 생각되는 
아쉬움이 있다. 종교개혁자들이 십자가의 사죄를 믿는 이신칭의를 강조하였기
에 그 후 개혁신학에서도 부활신앙이 더욱 강조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고 본다.

또한 니케야 종교회의에서부터 예수님에 관해서 논쟁이 되었던 부
분은 신성에 관한 것이었다.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나, 칼세돈 회의에서나 토
론의 핵심은 삼위일체론과 예수님의 신성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따라서, 칼빈
의 「기독교강요」에서 삼위일체론 부분을 고찰해 보면 그리스도의 신성을 집
중해서 입증하고 있다.

현대 신학으로 넘어오면서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이 강조되면서 예
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논의가 핵심으로 등장
하는 변화를 보여준다. 현대
신학자들은 인간 예수만을 집중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균형잡히지 못한 인본
주의적 신학의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한다. 

한국교회의 부활 신앙은 어떤 점에서 더욱 개선되고 증진되어야 
할 것인가?

첫째로 부활신앙은 유행을 따라서 강조될 것은 아니다는 지적부터 
하고자 한다. 사순절이니까 기도해야 하고, 고난주간이 왔으니까 새벽기도에 
힘써야 하고, 부활절이 왔으니까 흰 옷을 입고 마리아처럼 새벽에 어떤 장소
를 찾아가서 함께 모여서 연합예배를 드리는 것은 일종의 매너리즘을 조장할 
위험성도 있다. 부활절 새벽연합예배라는 특별 행사들을 통해서 지역의 성도
들이 함께 연합하고 우리의 신앙훈련을 도모하는 것은 유익하다. 하지만, 유
대인들이 아무런 감동도 없이 절기를 지키듯이 의례적으로 무슨 기념행사를 
하는 것처럼 진행해서는 안될 것이다. 

둘째로, 부활의 역사성을 더욱 강조하면서, 인류의 일반역사와 보
편역사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구원사의 
최정점이 바로 부활사건인데, 이 일은 모두 다 인류의 일반 역사 속에서 일어
났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런 부활의 역사성을 크게 훼손하므로서 기독교 
기본진리를 왜곡하는 오류를 범했다.

최근 한국에서는 한동안 역사책들이 많이 인기를 얻었다. 무슨 왕
조, 무슨 시대 역사 바로 알기, 간추린 왕조실록 등 각종 역사책에 대한 관심
이 고조된바 있고, 고전연구의 붐이 조성되기도 했었다. 요즘 성인들은 추리
소설 읽기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셜록 홈즈 소설이 12만부나 팔려나가고, 루
팽 이야기도 수 만부 씩 팔린다고 한다. 영국 귀족으로 둔갑한 홈즈는 매우 
치밀한 두뇌 싸움을 하는 사람을 나온다. 루팽은 프랑스사회에 부르죠아와 결
탁한 인물로 나온다. 모두 다 그 사회의 산물이다. 같은 유럽의 선진국이지
만, 독일에는 이런 추리소설이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경멸했
던 것이다. 독자들의 기호에 맞춰서 장사 속으로 팔아먹는 이야기들은 앞으
로 선거철이 닥치면서 추리기법을 동원하여 점치는 일이 성행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런 인물이 가상의 창작물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결
코 아니다. 셜록홈즈나 루팽처럼 추리소설가들이 만들어낸 인물이 아니다. 유
대사회의 신앙적인 전통을 
타고서 흘러 내려온 종교적인 분위기 만들어낸 기
독교 초기 제자들이 만들어낸 가공 인물이 결코 아니다. 부활의 역사성을 강
력히 증언하는 복음서의 기록들을 읽으면서 주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서는 
주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가 
손으로 만진 바라” (요한 일서 1-2절). 

셋째로, 부활의 생명력을 체험하는 감격과 기쁨이 있어야 한다. 부
활은 마치 유년주일학교 학생들에게 달걀을 나눠주는 것처럼, 간단히 정리하
면 생명체의 부활이 처음으로 드러난 날이다. 주님은 썩은 몸으로 죽으셨다
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살아나셨다. 마찬가지로, 모든 인류의 죽음을 이기
시고 첫 열매로 승리하였다. 사망이 왕 노릇하지 못하는 새 역사를 시작하신 
날이다. 

이 날은 한국 교회에 절망의 어둠을 벗어나서 소망의 빛을 주시는 
날로 체험되고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이 나라에는 통일에의 소망도 어둡고, 
북한 동포들의 처지와 형편도 어렵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과 전망도 불
투명한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 마치 무덤 앞에서 울던 마리아에게 평안을 
주신 것과 같이, 그리고 
불안에 떨던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시던 것과 같이, 
불안에 떨고 있는 인류에게 소망과 희망을 주신 날이 바로 이 부활의 날이
다. 구원의 확신과 역동적인 생명력을 지닌 바울 신앙의 핵심은 부활의 생명
을 믿는 확신에 차 있었다. 사도시대 이후 초대교회 성도들도, 그리고 한국 
초기 성도들도 부활을 믿는 삶으로 역경과 핍박을 견디고 승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