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38)
예레미야 17:9-10
혼돈의 시대
정창균 목사_합신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신뢰 지키는 것은 이기심 성취보다 앞서야”
법이 이불 속까지 들어와서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며 현직 판사가 간통죄를
놓고 헌법소원을 냈다는 말을 얼마 전에 들었습니다. 간통을 죄라고 한 현행
법은 헌법 위배라는 것이 그 사람의 주장이었습니다.
질서보다 개인 자유 우선하는 시대
며칠 있다가 간통죄는 정당한가를 주제로 밤늦게 벌어진 TV 토론에서 거침없
는 말재주로 열변을 토하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개인위주의 삶으
로 나아가는 것은 현대사회의 추세이고, 현대인에게는 무엇보다도 사랑이 가
장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 단순히 가정의 일체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명
분을 내세워 간통죄라는 수단으로 그 사랑을 억압하고, 그 사랑을 누리지 못
하도록 여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라
는 것이 대충의 논
리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그냥 단순하게 그 여인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당
신의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그 짓을 하고 다녀도 그렇게 여유 있고, 그렇게
철학적인 냉정한 논리로 포용할 수 있겠느냐고.
당신의 며느리가 당신의 아들이 아닌 다른 남자와 간통을 해도 “그것은 너
의 권리니까 잘했다!” 할 수 있고, 당신의 딸이 당신의 사위가 아닌 다른
남자와 은밀히 몸을 섞으며 지내도 “현대사회의 흐름을 따라 사는 자랑스러
운 내 딸”이라고 할거냐고.
당신의 배우자가 그래서는 안되고, 당신의 며느리가 그러는 것은 견디기 힘
들 거고, 당신의 딸이 그러는 것은 용납 못할 것이면 다른 사람도 그렇지 않
겠느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20년도 더 오래 전에 우리 모두의 정신적 지주로서 존경을 받
으시던 연로한 교수님께서 강의실에서 수시로 하셨던 성경 말씀이 한 구절
떠올랐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마음이라. 누
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9,10).
누가 보아도 이 말씀
은 인간 자체가 얼마나 거짓되고 부패한 존재인가를 정
직하게 인정하고 우리 자신의 생각과 행실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
다는 경고와,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는 존재임을 의식하고 두려움으
로 하루하루의 삶을 살라는 요구를 그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결국 자신
의 욕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련성을 삶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법이 이불 속까지 들어와서 간섭하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는 그 판사에게 하나님의 법은 이불 속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까지 간
섭을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지키는 것은 한 사람의 탈선한 이기
심을 성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란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그 판사나, 그 여인이 내세운 것과 같은 논리를 내
세우며 인생을 살아가려는 사람이 드문 것도 아니고 그러한 원리가 주장되
는 것이 유독 그 문제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태도는 어
쩌면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라고 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화되어 있고,
그러한 삶의 원리는 이 시대의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고 할
만큼 강력하기도 합니다.
상대주의라는 이름으로, 편의주의라는 이름으로,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다
원주의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자기 만족 최우선이라는 명목으로 거의 모든 사
람을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
이 초래하는 현상은 ‘혼돈’입니다.
각각 제 소견에 옳은 것이 최고의 삶의 기준이 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최선의 삶의 원리가 되는 혼돈인 것입니다. 결국 “이 혼돈의 시대에 우리
는 무엇을 절대 기준과 최우선의 원리로 삼고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혼돈은 가치관 상실이 가져온 결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
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는 사도 바울의 말씀은 어쩌면 이러한 혼돈의 시대를 살아야 할 우리
를 내다보며 하신 긴박한 경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