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혁의 vivavox (8)
부활절 용상 사건에 관한 단상(斷想)
김병혁 목사_에드먼톤 개신개혁교회
“예수 다시 사신 날, 한국 교회는 갈라졌다.”
얼마 전 한국의 유명 포털 사이트 뉴스란에 내걸린 꼭지 뉴스 제목이다. 지
난 4월 16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2006년 부활절 연합예
배’ 단상에서 벌어진 소위 ‘부활절 용상 사건’에 관한 기사였다.
이날 설교자로 추대된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사모의 의자(피
해자측에서는 용상<龍床>이라고 표현함)를 전례 없이 강단에 배치하려는 조
목사 수행원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측 예배 준비
관계자들 사이에서 볼썽 사나운 충돌이 있었던 모양이다.
언론을 통해 이번 사건이 확대될 조짐이 일자 다음날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홍보국 명의로 사과문을 KNCC에 전달하였지만, KNCC측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기총) 대표회장과 조용기 목사의 공개 사과뿐 아니라 폭행 가담자들의 사
법처리를 요구
하며 강경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어느 언론 보도에 따르면 KNCC측은 이번 행사에서 폭력 사건말고도 조 목사
의 부활절 설교에도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적 돌출 발언
을 차단하기 위해 한기총과 KNCC의 사전 합의하에 작성된 <공동설교문>을 그
대로 전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금번 연합 부활절 행사를 실제적으로 주도했다고 하는 손기
웅 한기총 일치위원장은 지난 4월 27일 <한국 교회의 연합행사의 바람직한
방향성>이라는 주제로 열린 한 토론회에서 “2006년 부활절 연합예배는 한국
교회의 새로운 희망의 지평을 열었다”는 생뚱맞은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애초부터 필자는 신학과 신앙고백에 관한 깊은 고민 없이 합종연횡하듯 이루
어지는 한국 교회의 연합일치 운동에 반대하였지만 이왕에 한국 교회의 이름
으로 진행될 행사라면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에는 오르내리지 않기를 바랐
다. 그런데 ‘예수 다시 사신 날’에 ‘한국 교회가 갈라졌다니’… 혹 떼
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온 꼴이 되고 말았다.
그것도 예수의 이름으로 화합과 상생의 장(場)을 만들어 보자고 특별히 마련
r
한 한마당 잔치 무대 위에서 의자 하나를 두고서 한 편의 목사들과 다른 한
편의 목사의 수행원간에 시정잡배들이나 할 법한 뒷골목 담화와 활극이 연출
되었다니 통탄할 일이다. 너무 부끄러워서 기억조차 하기 싫다. 하지만 결
코 쉽게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왜냐하면 이번 사건은 한국 교회의 어두운
현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고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예고편에서 의자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다. 모든 갈등을 연결하고 증폭시
키는 중요한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자신들의 교회에서 평상시
하던 대로 지극히 존귀한 목사의 부인을 위해 의자를 상석에 배치하려 했
고, 다른 한쪽에서는 행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뿐더러 목사(성직자)도
아닌 인물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다.
연단에 의자를 반입하려는 측이나 그것을 거부하는 측이나 의자를 바라보는
해석은 달랐지만 의자를 향한 집착만큼은 대동소이했다. 이들에게 있어서 의
자는 더 이상 물리적인 객체가 아니다. 연단에 놓여질 의자는 특별한 사람에
게만 허용되는 권세와 존귀의 상징물이었던 셈이다.
부활절 오후, 의자
하나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니 한편
의 성경 스토리가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제자들에게 앞으로 일어
날 일에 대해 예고하셨다. 때마침 예수님의 설교는 예루살렘에서의 받으실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관한 소망의 메시지였다. 그런데 설교를 듣고 있
던 야고보와 요한이 뜬금 없는 요구 사항을 늘어놓았다. 주의 영광 중에 하
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는 간청이었다.
그것은 예루살렘까지 예수를 따라 나섰던 그들의 본심이었다. 그들의 관심사
는 예수님의 십자가나 부활이 아니었다. 예수님을 좇는 대신 얻게 될 세상
의 영광의 자리였다. 결국 두 제자의 자리 욕심은 다른 열 명의 제자들과의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였고 결국 마음이 분열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고 말았
다. 이번 한국 교회 부활절 연합 행사에서처럼 말이다.
입으로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말하지만 정작 마음은 상석에서 배부
른 대접을 받는 환영(幻影)에 취해있는 무리들이 득실댄다. 목사와 사모라
는 직함으로 상석을 당당하게(?) 요구하며, 목사와 사모라면
마땅히 상석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 또한 부지기수이다. 목사와 사모의 상석 확보
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나서는 실미도 공작원 성도들도 너무 많
다.
이번 부활절 용상 사건의 진원지인 교회는 모든 책임을 일반 성도들의 과잉
충성 탓으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신앙에 관한 한, 상석을 고집하는
집착증의 일차적임 책임은 목사에게 있다. 상석을 꿈꾸는 욕망은 잘못된 성
경 해석과 거짓된 가르침 그리고 허황된 종교적 확신이 낳은 부산물이기 때
문이다.
용상에 관한 인간 본성의 미련을 포기하지 못하는 제자들과 우리에게 주님
은 오늘도 이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
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눅11:43-44) 그렇다. 주님처럼, 종처럼 낮아
진 채 진리를 먹고 사는 삶이야말로 사분오열된 한국 교회의 아픔을 치유하
는 유일한 방책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