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의 광야에 핀 감사의 꽃_성주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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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의 광야에 핀 감사의 꽃 

성주진 교수/ 합신 구약신학 교수 

유난히 아름다웠던 가을단풍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수감사절을 착잡한 
심정으로 맞이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불평으
로 치닫는 대신 감사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불신앙으로 추락하는 대신 신앙
으로 비상하는 길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줄 압니다. 그러나 불평에서 
감사를 일구어내는 일은 불평을 나쁘다고 정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불평을 성화의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겪게 되는 하나의 증상으로 이해하고 진
단과 처방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불평
을 감사로 바꾸는 전기가 마련될 것입니다. 

먼저 그리스도인의 불평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가지고 있는 기대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상하게도 믿는 사람이 
때때로 믿지 않는 사람보다 불만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
까요? 믿지 않는 사람들은 숙명이려니 하고 
포기하거나, 새옹지마에 희미한 
소망을 걸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반해, 믿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에 그만큼 하나님께 대한 
불만이 높아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불평하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 과연 내가 하나님께 거는 기대가 정당한 기대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
기적인 욕심을 하나님께 투사한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도 유익할 것입니
다. 

그리스도인의 불평은 또한 신앙적 안목을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은 실상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인데 손
해인 줄로 생각할 때에 불평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지 못할 때
에 불평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한 불평은 원하는 것을 당장
에 손에 넣으려는 조급한 마음 때문에 생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하나
님의 선하심을 믿는 믿음에서 흘러나옵니다. 어떤 경우에도 나를 향한 하나님
의 사랑과 선하심을 바라보는 믿음의 안목은 우리에게 감사의 지평을 열어 보
여줍니다. 

나아가서 불평은 우리에게 채워지지 않은 진정한 필요가 있다
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불평은 우리의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를 우회적으로 알려 주는 표지
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불평이 생길 때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
이 무엇인가를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반성적 질문을 통하여 우리
는 습관적인 불평을 거룩한 불만족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으
로 깨닫게 된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한 자각은 신앙의 발전과 개혁의 원동력
이 됩니다. 사실 모든 의미 있는 개혁은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과 부딪히는 
현상에 대한 거룩한 불만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불평은 또한 우리가 이제는 기도할 때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불평을 하나님
께 가지고 나와서 기도한 시편기자가 좋은 모델입니다. 시편기자는 자기가 겪
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하나님 앞에 토로한 다음, “왜 나를 버리십니까?” 
“왜 내게서 멀리 계십니까?” “왜 나에게서 얼굴을 숨기십니까?” 하는 고
통스러운 불평을 쏟아 놓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셔서 기도에 응답하신 다음에는 감사의 찬미를 드립니
다. 기도를 통하여 불평을 감사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이처럼 불평의 상황은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초청하는 초대장입니다. 

마지막으로 불평은 우리의 삶의 중심에 무엇이 놓여 있는가를 살펴보게 합니
다. 불평은 내가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을 때에 생깁니다. 내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
게, 나아가서는 하나님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러나 그리스도가 가르쳐주신 그리스도인의 삶은 내가 아닌 그리스도와 이웃
을 삶의 중심에 두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접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
라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불평 대신 감사
를 꽃피게 하시는 줄 압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삶이야말로 불평을 감사로 바
꾸는 하나님의 복된 수단입니다. 
오 주여, 긍휼을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