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균 칼럼> 겁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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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균 칼럼>

겁도 없이

요즘에는 교회를 골라가며 물건을 훔치는 교회전문 도둑들이 있다는 말은 
여러 번 들었습니다. 두 달 가까이 전에는, 우리 교회 근처에서 개척을 한 후
배 목사님 교회에도 새벽에 도둑이 들어와서 음향기기를 들고 갔다는 이야기
를 들었습니다. 어느 교회는 입당예배 드린 다음 날 도둑이 트럭을 대놓고 에
어콘을 몽땅 뜯어 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지난 성령강림주일 다음 날이었습니다. 이번 학기 마지막 강의를 위하여 
12시 넘어서 사무실을 떠났다가 저녁 식사까지 하고 사무실로 다시 돌아왔습
니다. 그런데 급히 보내야 할 원고의 마무리 작업을 하려고 보니 노트북이 안
보였습니다. 어느 놈이 겁대가리도 없이 교회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와서 저
의 사무실 제일 안쪽 의자 위에 놓아둔 노트북을 들고 간 것입니다. 알아보
니 우리 찬양인도 팀의 씬디도 들고 갔습니다. 찬양인도 팀에 새로 합류한 여
학생이 찬양사역을 위하여 한 달 전에 자비로 거금을 들여서 사 들고 온 것이
었는데 그것
을 들고 간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앞이 캄캄하기도 하고, 화도 났
습니다. 노트북도 노트북이지만 지난 몇 년 동안의 제 자료가 몽땅 그 속에 
있는데 한순간에 다 없어져 버렸으니 참으로 황망하였습니다. “여기가 어디
고, 그것이 뉘 것이라고 감히…” 하는 생각과 함께 누구인지 모르는 그 도둑
에게 분노와 증오심이 생겼습니다. “대낮에 하나님의 교회를 침입하여 교회
의 물건을 들고 간 하나님 무서운 줄도 모르는 겁대가리 없는 그 사람을 가만
두지 마옵소서.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도록 따끔한 벌을 그 사람에게 내려 주
소서”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2-3일을 기도했습니다. “노트북은 가져도 좋으니, 그 속에 있는 자
료라도 백업을 하여 돌려보내게 해주소서.” 그러나 아무런 소식도 없었습니
다. 오히려 소식은 도둑으로 부터가 아니라 제 자신으로부터 왔습니다. 이번 
일은 너무나 게을러터진 제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1차 경고가 아닐까 하는 깨
달음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내 노트북 하나 가져갔다고 그 사람에게 그러한 
마음을 품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인가 하는 가책이 든 것입니다. 생각이 거기
r
에 미치자 정신이 번쩍들었습니다. 그래서 “겁대가리 없는 놈, 큰 벌이나 받
아라”하는 마음이 슬며시 들려고 했던 것도 회개했습니다. 그 전 날 성령강림
주일 오전 설교에 저는 “성령 충만한 자의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이야기
를 했었거든요. 남아공에 있었던 94년에 케이프타운에 있는 성 야고보 교회
(St.James Church) 교회 주일예배 시간에 갑자기 흑인 너댓 명이 수류탄과 기
관총을 들고 난입하여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난사하여 애커만 씨 부부등 수명
이 죽고 방문 중이던 러시아 선원 등 여러 사람이 많이 다쳤습니다. 어디론
가 도주해버린 알 수 없는 이 흑인 원수들을 향하여 며칠 뒤 그 교회는 일간
지 신문에 상당한 크기의 광고 가사를 냈습니다. 크고 굵은 활자로 붙인 그 
광고 기사의 제목은 이러하였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가 당신들을 사랑
한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We want you to know that we love 
you).” 저는 이것이 성령 충만한 자의 참 능력이라고 열을 낸 것입니다.

하루 전에 강단에서 이렇게 설교한 작자가 노트북 하나 가져갔다고 “큰벌
이나 받아라” 할 수 있습
니까? 그러고 보면 정말 겁대가리가 없는 작자는 교
회의 목사 사무실에 들어와서 노트북을 들고 간 작자가 아니라, 불과 하루 전
에 성령 충만한 자의 능력을 운운한 그 입으로 자기 노트북 가져간 사람에 대
하여 저주성 발언을 하려 한 저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이
것을 회개하자 저의 마음도 평안해지고, 잃어버린 자료들에 대한 아쉬움에서
도 자유로와 졌습니다. 인도에서 선교했던 선교사는 번역을 다 끝내 놓은 성
경이 불타버려서 절망 가운데 있다가 “다시하면 된다”하고 일어나서 다시 성
경을 번역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용기도 생겼습니다. 

그 사건 이후 한결 더 무거워진 열쇠 뭉치를 들고 사무실 입구에도, 방송
실 입구에도, 계단 출입문에도, 여기저기 추가로 달아놓은 보조키를 열 때마
다 저는, 짐승을 가지고 선지자도 가르치신 하나님이 열쇠뭉치를 가지고 나
를 가르치신다는 생각을 합니다. 결국 이래저래 좋은 기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