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균 칼럼>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지난 칼럼에서 말씀드린 대로, 지난 달 중국에서 보낸 짧은 2주 동안 저
는 많은 서러운 삶의 현장과 이야기들을 접하였습니다. 특히, 강 건너우리 동
포들의 처절하기만 한 그 곳에서의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접하면서는 서러움
의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습니다. 큰 환난과 능욕 가운데 빠진 자기 백성과,
훼파되고 불타버린 예루살렘 성의 소식을 듣고 수일 동안을 앉아서 슬피 울
고 금식을 했다는 느헤미야 생각도 났습니다. 저를 더 서럽게 한 것은, 우리
보다도 먼저 복음을 받아들인 중국도,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던 저 강
건너 땅에도 이제는 복음이 갇혀버린 듯, 복음이 기력을 잃고 매여 버린 듯,
그 곳에서 예수를 믿거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한 처
지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서울에서는 그렇게 흔한 성경책 한 권을
갖는 것이 강 건너 그 곳에서는 목숨과 맞바꿀 각오를 해야만 가능하다는 현
실이 저를 더 서럽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 뿐인 것은 아니었습
니다. 몇 곳을 가보고, 몇 사람들을 은밀
하게 만나 보면서 저는 정말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공통적으로 들었고, 정
말 실감나지 않는 현실들을 직접 목격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29시간의 기
차를 타고 말씀을 배우려고 왔다 하였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밥도 제대로
먹기 힘든 제자들이 그 돈을 모아주며 가서 배우고 오라고 해서 올 수 있었다
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선생은 16시간의 기차를 타고 왔다 하였습니다. 2년
반 전, 제가 싸이판에서 가르칠 때 만났었던 한 자매는 임신 6개월의 불편한
몸을 가지고 저와는 언어도 통하지 않는 자기 남편을 대동하여 19시간의 기차
를 타고 왔습니다. 이 부부는 직장이 보장되는 유수한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대학생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취업을 포기한 채 돈이 없어 밥도 제대로 못먹으
며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제자가 15명쯤 된다 하였습니다. 임신 초
기 입덧을 할 때는 과일이 그렇게 먹고 싶어서 과일 가게에 나가서 먹고 싶
은 과일을 한참 동안 구경하고 돌아오곤 했다 하였습니다. 저와 헤어지는 날
점심을 먹으며 이 자매가 말했습니다.“돈 없이 신앙 생활하는 것이 더 재미
나요
. 하나님은 정확해요. 많지도 않아요. 꼭 필요한 것만 주세요. 어떤 때
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막 눈물이 나요. 너무 감사해서요.”집에 돌아오면 구
경하고 돌아 온 과일이 실제로 들어와 있고, 어떤 때는 ‘여호와 이레’라고
만 쓰여진 출처 불명의 흰 돈봉투가 집에 던져져 있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하
면서 이 자매가 한 말 이었습니다. 울보 목사인 저는 또 속으로 울었습니다.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돌아서서 내 대견스러운 딸 같은 그가 한 그 말을 쪽
지에 적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처지에서 이렇게 강력한 신앙인들이 생겨나
고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였습니다. 강 건너에서 온 사람들, 혹은 그곳과 관
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는 더 놀라운 사실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처참하리 만치 힘들어 보이는 상황 가운데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
고 있고, 총살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며 목숨을 걸고 전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
다는 사실 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장을 경험하는 동안 제 입에서는,“하나님은 살아 계신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알고 보니 복음은 갇혀 있는 것도, 기력을 잃
고 매여 있는 것도 아니었
습니다. 고생하는 그들의 모습은 불쌍하고 처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는 살아 있는 증거였습니다. 그들의 그렇
게 사는 모습은 더 이상 서러움이 아니라, 감격 이었습니다. 서럽게만 들렸던
그들의 이야기는 사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웅담 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배부른’불평과 원망이 나오려 할 때마다 저는 그 곳의 그 지체들을 생각하
기로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