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치, 조정, 그리고 섬김
김수영 목사_나눔교회,횃불트리니티 교수
“지혜롭고 공평하게 은사대로 배치해야”
며칠 전 평화포럼 모임에 갔다가 연세대 전우택 교수의 특강 중 서두 부분
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전 교수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 다섯 명을 비교했
습니다.
독특한 개성 가진 미국 지도자들
가장 유명한 조지 워싱톤은 든든한 지도자로서 군대가 주어지면 어떤 상황에
서든지 그 군대를 움직일 수 있는 지휘자였지만 사상가나 선동가는 아니었습
니다. 사람을 모아서 열 배가 넘는 영국 군대를 대항하도록 마음에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위대한 사상가였습니다. 종이와 펜을 주면 글을 써서 사람
의 마음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사람이 움직이도록 열정을 코앞에서 전달한 사람은 토마스 페인이었
습니다. 웅변과 열정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벌렁거리게 만든 사람이었습
니다. 독립에 불을 지핀 사람이었습니
다.
또한 흩어져 있는 13개 주가 연합하도록 주장한 사람은 헤밀톤이라는 사람이
었습니다. 그는 연방의 힘을 강조하여 지금의 미국의 기초를 놓은 사람이었
습니다.
그런데 이 네 사람은 나이가 비슷해서 의견이 부딪치면 갈등만 증폭되었습니
다. 그 사이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끝까지 의견을 도출해 낸 사람이 바로 벤
자민 프랭클린이었습니다.
그는 초대 대통령을 맡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지만 나이를 이유로 거부하고
자기의 역할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을 엮고 의견
을 조정하고 자기의 위치에서 섬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의 미국이
있게 된 것은 이들 다섯 명의 재능과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각각 따로따로 일하고, 힘을 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교회 안에서 일하다 보면 재능이 부족해서 일하지 못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
니다. 교회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공동체 안에는 다양한 재능
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워싱톤 같이 주어진 프로젝트를 목적지까지 이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추진력이 강합니다. 어떤 사람
은 제퍼슨처럼 자기의 생각
이 뚜렷하고 글로 잘 표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페인처럼 열정
적인 전달자이고, 어떤 사람은 헤밀톤처럼 모임의 기초를 놓되 멀리까지 바
로 보고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것은 벤자민 같이 성숙한 마음을 가지고 다양한 재능들
을 겸손히 엮을 수 있는 역할입니다. 이런 역할을 하려면 성숙해야만 합니
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의 위치와 재능, 한계와 역할
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다양한 재능과 의견이 모두 필요하다
는 것을 알고 꾸준히 그들을 엮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지도자를 한다면 모임은 다양하면서도 하나가 될 수 있
을 것입니다.
교회 목회를 하면서 늘 어려워하는 것은 사람과 같이 일하는 부분입니다. 제
일 힘들지만 보람이 있고, 제일 상처도 크지만 기쁨도 그만큼 큰 영역이 인
간관계의 역학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동기와 과정, 목적과 평가에서 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 되기
힘듭니다.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제일 간단한 것은 제왕적인 리더십을 발휘
하는 것입니다. 군대식으로
정렬시키고 ‘좌향좌, 우향우’ 하면 됩니다. 그
러나 성경 어디에도 제왕적 리더십을 지지하는 구절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
히려 섬기는 리더십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섬기는 리더십이 무조건 섬김만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재능
을 가지고 잘 섬길 수 있도록 잘 배치해 주는 것도 섬김입니다. 지혜롭고 공
평하게 각각의 은사를 따라 잘 배치해 주는 것이 지도자의 할 일입니다.
또한 갈등이 있으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조정해 주
어야 합니다. 잘 조정해 주는 것도 섬김입니다. 내 욕심대로 조정(control
or manipulate)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조정(mediate
or reconcile)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섬김의 리더십
성숙한 목회란 다양한 지도자들과 사람들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
고, 마음을 나누고, 설득하고, 기다리고, 그리고 하나로 만들어갈 수 있는
목회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