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
황형목 목사_울산 목은교회
“국민 성공 시대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 많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은 억만장자가 아니라 의와 진리와 거룩이었
다. 어떤 이는 내심 ‘최소한 오복이라면 몰라도 그게 무슨 복이냐’고 냉소
할는지 모른다.
참된 복 외면하는 사람들
백번 양보해서 성경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그런 고상한 복은 에덴 동산에서
나 필요할 뿐 눈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에서는 순진한 이상에 불과하다고
일축할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선물을 인간은 불편하게 여기며, 공연히 잠자
는 양심을 깨우는 통에 처세술에 걸림이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지만, 동방예의지국 역시 돈이면 다 된다는 황금만능,
성공이 곧 정의고 명분이고 최고선이라는 성공지상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한
도 끝도 없는 욕심을 다 채우지는 못해도 최소한 남과 비교하여 한 움큼이라
도 더 많이 가지겠다는 경쟁심으로 충혈되어 있다. 공부나 사업의 목적이 돈
이요 모든 갈등
과 화합의 원인도 돈이요 학문과 종교도 결국 돈으로 귀착된
다. 모든 인생사의 이유와 목적은 돈으로 설명이 가능할 정도다.
특권과 유착 끝에 IMF를 당했던 부실경제를 반성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경제
로 선진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 주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 행진을 계속했
고 국민 소득 2만 불을 달성했으며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복지제도의 기본
틀도 어느 정도 마련했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내내 경제가 죽었다는 선동에 동조했고, 멀쩡한 경제를
다시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국민성공시대
만 열어준다면 부패고 거짓말이고 부도덕도 다 눈감아 주겠다는 게 국민적
합의였다.
‘어떤 자세로 돈을 벌어야 하나, 재물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에 대해서
는 별로 고민이 없다. 북한 어린이와 주민들을 돕자고 하면 군량미로 전용한
다고 거부하고, 남북이 경제협력하면 북방 특수를 누릴 뿐만 아니라 한민족
끼리 서로 상생하니 일석이조가 아니냐고 하면 핵폭탄 만들어 남침하려는 공
산당을 돕자고 하는 친북 좌파 주장, 낭만적 퍼주기라고 비난한다.
부자라고 하루에 열 끼를 먹는 것도 아니고 예전에
비하면 보릿고개 같은 절
대 가난은 극복한 것 같은 데도 거짓과 경쟁은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이웃
사촌끼리 소박한 정을 나누며 온갖 국난도 극복해 온 민족인데 경제대국이
된 마당에 오히려 더 각박해진 이유는 뭘까? 이웃을 존중하고 서로 하나가
되어야 사람 사는 세상이 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왜 욕심과 경쟁으로만 내달
릴까? 이웃을 인정하지 않고 각자 혼자 사는 길을 택한 이유가 뭘까?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 때문일 것이다. 이익과 편의에 따라 언제든지
배신하는 세상에서 철칙 같은 게 있다면 ‘나는 혼자’라는 생각이다. 약속
을 믿고 이웃을 의지하는 사람은 맹수와 어울려 사는 철없는 애송이로 취급
한다. ‘형편이 변하고 이익이 갈리면 언제든지 변한다’고 긴장하며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하니 얼굴은 웃고 있어도 마음은 열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내가 쓰러지면 누구하나 믿을 수 없고, 심지어 형제나 아들조차 나를
맡기지 못한다는 불행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인다. 의와 진실을 생명처럼 여
겨도 눈앞에 이해관계가 걸리면 무너지기 마련인데 이웃을 수단으로 삼으니
거짓과 변덕이 난무하는 세상이 된 것이
다.
의와 진실은 낙원에만 필요하고 약육강식의 살벌한 세상에서는 필요 없는
게 아니라 험한 세상일수록 더욱 절실한 가치다. 누구나 이를 인정하면서도
이익과 편의를 위해 신의를 저버리는 모순을 반복하는 것은 역으로 그 누구
도 극복할 수 없는 근본 한계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언뜻 가난 때문에 가정
과 교회가 붕괴되는 것 같지만, 그러나 맨 밥을 삼키듯 삶의 근본을 찬찬히
곱씹어보면 진실과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불행의 원인임을 어렴풋이 알게 된
다.
신자는 의와 진실 지켜내야
우리 중에 누가 하나님의 선물을 진주처럼 귀하게 여기며 의와 진실을 사모
할까? 이웃에 숨어 있는 그런 분을 만나 섬기며 고단한 행로에 서로 위로를
나누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