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 그늘 아래서
부활절에 되찾은 감사와 만족
추둘란_수필가,홍동밀알교회
“100점 짜리 집 두고 불편했던 마음 사라져”
코끝에 닿는 바람이 순해지자마자 집안에 큼직한 지네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
다. 지금 사는 집에서 네 번째 봄을 맞는데 이다지도 일찍 지네가 나타나기
는 처음이었습니다. 올해는 또 어떻게 지네와 한 해를 보내야할지 암담하기
만 했습니다.
여느 해보다 일찍 나타난 지네
마침 부활절을 보름 앞두고 특별 새벽기도회를 할 터이니 가장 중요한 기도
제목을 하나씩 정하라고 목사님이 광고를 했습니다. 목원들 얼굴도 떠오르
고 직장 일도 떠올랐지만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지네가 나오지 않는 넓은
집을 소망합니다’로 정했습니다.
식구들을 차례대로 물기도 했거니와 잠잘 때 얼굴 위나 다리 위를 지나다니
기도 하고, 목장예배 드리는데 불쑥 나타나 목원들을 기겁하게 만드는 지네
만 문제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압이 약해 물 쓰기가 불
편한 점도, 그래서
가끔 말썽을 부리는 수도 모터도, 비좁은 방 한 칸에서 목장예배를 드리느
라 불편한 것도 다 문제가 되었기에 간절하게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님, 오죽하면 그 많은 기도 제목 가운데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집 문제
를 특별 새벽기도의 제목으로 정했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해결해 주셔서 내
평생에 다시는 이와 같은 기도를 하지 않게 해 주소서”라고 호기 있게 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기도를 하면 할수록 하나님 앞에 떳떳
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더욱이 주일 설교 말씀 가운데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께 어떤 이는 종려나무를 깔아드리고 어떤 이
는 겉옷을 벗어 깔아 드리며 어떤 이는 호산나를 외치는데 여러분이 그 자리
에 있었다면 무엇을 하고 무엇을 외쳤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게 되자 내
마음은 완전히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호산나, 호산나!”를 외치는 그 자리에서 “주여! 집을 주옵소
서! 우리 집에 지네가 많고 살기 불편한 것을 주님도 아시나이다” 하고 손
을 번쩍 들고 외치는 나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당장 새벽기도의
기도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전도 대상자 가운데 한 가정을
위하여 그들을 교회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음
에 평안이 찾아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와중에 주일 낮예배의 대
표기도 순서가 닿았고 그런 마음을 숨기고도 성령이 충만한 듯 씩씩하게 대
표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과 귀를 속일 수 있고 심지어 내 자신이 나를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눈만은 속이지 못한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어느 선교사가 쓴 책 한 권을 읽게 하심으로
나의 잘못이 근본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선 기도 제목을 바꾼 것은 하나님이 좋아하실 만한 기도 제목으로 바꾸어
드린 일종의 제스처를 취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
도 제목의 우선 순위만 바뀐 것일 뿐 여전히 집에 대한 불평을 버리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집을 소망하는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사실
은 다른 데에 더 큰 문제가 있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 교회의 1호 목자 가정으로 충분히 헌신하
고 있
지 않습니까? 남편의 교회 차량 운전이 몇 년째이며 저의 꽃꽂이 헌신
은 또 몇 년째입니까? 헌금이 적었으며 봉사가 적었습니까? 그러니 이제 집
을 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주시옵소서!”
이렇게 집을 소망하되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
다. 하나님께 내 인생의 주권을 맡겨드린다고 수십 번도 더 기도하고 아멘
도 외쳤지만, 실제 부딪히는 문제에 있어서는 이렇게 나의 업적을 세어가며
하나님이 내게 복종하기를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민서네 집이 크고 넓고 좋은 집이었으면 아마도 우리 교회의 목장은 하나
로 끝났을 것입니다. 민서네 집이 어떤지 성도들이 다 아시니 집 좁아서 목
장 예배 못 드리고, 지네 나와서 목장 예배 못 드리겠다는 성도는 아마 없
을 겁니다.”
기도 제목이 바뀐 이유에 대해 목사님께 말씀드렸을 때, 뜻밖에도 목사님은
이 낡고 불편하고 비좁은 집이 오히려 목장 분가에 한 몫을 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특별 새벽기도회를 마감하는 날, 일찌감치 회개하고 부르짖어 응답 받은 성
도들도 많았건만 나는 그제야 원점으로 돌아와 홀로 다시 시작하고 있었습니
다. 그리고
마지막 통성기도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 내 손을 잡아주시
는 주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주위에서 원추리 새순을 베었습니다. 나물로 무쳐
목장예배 때 목원들과 함께 먹고 싶었습니다. 낙엽 쌓인 자리에서 올라온 새
순이라 흙 한 점 묻히지 않고 깨끗이 벨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사 와서 이듬해 봄이었습니다.
집 뒤 숲에서 두릅순을 한아름 캐다 드리며 목사님께 들뜬 목소리로 말했습
니다. “목사님! 100점 짜리 집이에요. 하루 종일 해 잘 드는 남향집에, 이
웃도 좋고요, 집 주변에 희귀한 야생화와 산나물 천지예요. 보물 창고나 다
름없어요.”
더 이상 집에 대한 불만 없어
그 감사와 만족과 기쁨을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니 올 부활절에 주신 하나님
의 선물이 내게는 크고도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