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_이영란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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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슬로 쓴 편지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이영란 사모_좋은소식교회

“내가 변화되는 모습 속에서 소망 찾게 돼”

주님! 언제까지, 어디까지 나는 갈 수 있을까요, 내 평생 노래하겠다고, 주
님을 전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너무 약합니다. 자격이 없습니다. 두렵고 아픕
니다. 사랑을 말하는 내가 무섭습니다. 아무리 울어도 답답함은 여전하고 조
용한 울음이 격렬해집니다. 
‘넘어졌으면 일어나라. 멈췄으면 다시 걸어라. 미움이 가득하면 다시 사랑
하고 슬플 때 기뻐하고 상할 때 위로하라. 낙망할 때 소망하라.’ 절망가운
데 무덤을 찾은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주님, 그 주님이 내 이름을 부르시는 
새벽입니다. 내 평생에 부활의 새벽으로 다가오실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부활의 주님만을 바라볼 뿐

교회를 개척한지 몇 달 후쯤이었다. 한 모임에서 선배 사모님을 만났다. 많
은 경험과 눈물의 조언을 해주셨다. “이제 조금 지나보세요, 지금은 목사
님. 사모
님 하면서 존경하고 따르지요? 조금 지나면 각각 제 목소리를 낼 거
예요. 더 있어 보세요, 언제까지 함께 할 것 같은데 개척 멤버들이 떠나는 
아픔도 있어요.” 사모님의 가슴 아린 이야기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나에
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긍정적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이제 개척한 지 15개월이 되었다. 아이로 치자면 막 걸음마를 하는 때 내가 
드릴 고백은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이다. 날마다 내가 죽고 그분이 내 안에서 사시는 것 외에는 길이 없음
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앞으로도 계속 살 수 있게 하는 소망이다. 
소수의 개척 성도와 함께 첫사랑과 소명과 열정으로 출발했지만 언제부터인
가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일은 많은데다가 서로의 실상이 드러나는 현실
에 직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부교역자로서의 많은 사람과 일 속에서 보
아오던 남편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때로는 텅 빈 교회당에서 혼자 있거나 전도지를 붙이러 다니는 그 뒷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흰머리가 더 많아진 것 같았다. 게다가 교회 주변에 교
인들이 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총체
적으로 교회지기 일군이 되었
다. 
나 또한 아름다운 전도자의 걸음이 때로는 버거운 부담이 되기도 했고 집안 
살림, 교회당 살림에 버거워 헉헉대기도 했다. 아이들이 평일에 오기 시작하
면서 밥을 해주고 밤 시간을 돌봐야 하는 형편이 되니 앉으나 서나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새 성도들이 나오다가 보이지 않을 때는 심장이 툭하고 떨어
지는 느낌이었다. 계속 이러다가 심장병 걸릴 것 같았다. 
자잘한 일도 많았다. 봐주는 사람도 없는 가운데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 성도들의 자연스러운 말도 예민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목사와 
사모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표도 나지 않는 일을 해야 하고 그 많은 설교 준
비뿐 아니라 수없이 지옥과 천국을 왔다 갔다 하는 영적 싸움이 있는지를 모
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착하고 고맙고 진국 중의 진국인 성도들, 우리 교회를 생각하면 걱정
이 안 된다고 격려하는 눈물겨운 사랑의 성도님들이지만 우리의 늘 웃는 모
습 속에서 이런 아픔을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모님도 
이제 주방 일에 훈련이 되셔야 할거예요.” 지나가는 사랑의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 교회는 개척교회도 아니에요”라고 하시는 감사의 말조차 
아픔이 되었다. 그 작은 한마디 말들에 의해 정체성이 흔들린다. 
어느 날, 주방 안에 있는 커피 자판기에서 작은 바퀴벌레들이 노는 것을 보
고 놀라는 성도들 앞에서 나는 얼마나 초라하고 스스로 불쌍해졌는지, 이미 
나이 들어 틀이 잡힐 대로 잡힌 내가 깨어지는 여정이었다. 한밤중에 잠자리
에서 벌떡 일어나 계속 잠 못 이루기도 했다. ‘아 갈 길이 너무 멀다. 부흥
도 전도도 좋지만 내가 먼저 죽겠구나’ 싶었다. 
벌거벗은 모습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몰랐다. 나도 모르게 교회당에 들
어서면서 성도들의 눈으로 하나하나 보게 되고 즐거움이 아닌 부담으로 치우
곤 하였다. 이렇듯 소심해진 내가 나에게 적응도 이해도 되지 않았다.
교회 성장과 재정 등의 짐으로 영적 침체에 빠질까 노심초사할 정도로 남편
에 대한 나의 믿음도 작아졌다. 남편에 대한 나의 든든함도 연민으로 바뀔 
만큼 개척교회의 현실은 상상 이상이었다. 빨리 안정되기를 바라는 조급함
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다 일을 마치고 강단 십자가 앞에 나아가는데 그 날은 주님
의 피
가 나에게 방울방울 떨어지는 듯했다. 얼마나 울고 울었는지. 주님이 
바로 내 앞에, 내 안에 계셨다. ‘구유에 누이신 주님, 가난하고 낮게 오신 
주님, 십자가에서 날 위해 죽으신 주님. 내 죄와 허물과 일그러진 자아를 
못 박으셨습니다.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십니
다.’ 
나의 안일해진 삶과 허울 좋은 명예심과 진실과 사랑을 말하지만 거리가 너
무도 먼 나를 보았다. 교회를 세우기 이전에 나를 먼저 세우려 하시는 주의 
뜻을 깨달았다. 이 모든 현실이 어떤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나를 변화시키는 
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변화되고 말씀에 순종하면 된다. 남을 향한 무수한 손가락질이 내 안
에 있다는 것을 회개하게 되었다. 내가 먼저 청소하고 전도하고 내가 먼저 
섬기고 회개하고 내가 먼저 말씀과 기도의 삶으로 나아가고 내가 먼저 존경
하면 된다. 내가 죽으면 된다.
언제부턴가 자신의 허상과 실상을 발견하는 아픔이 우리 모두에게 복이 되
고 있다. 우리의 허물과 죄와 사탄 권세를 깨뜨리신 주님이 우리 안에 은혜
로 생명으로 역사하기 시작했다. 실패하려야 실패할 수 없는 생명, 미워하려
r
야 미워할 수 없는 생명, 절망하려야 절망할 수 없는 생명이다. 눈물겹도록 
성도들이 고맙고 정말 사랑스럽게 보여지기 시작했다. 
어느 땐가부터 ‘사모님이 너무 힘들다, 사모님을 돕겠다’고 나보다 앞서
서 준비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십자가 앞에 엎드리며 매일 다시 사는 남편
의 모습도 크게 보인다. 시도 때도 없이 놀러오고 밥먹으러 오는 아이들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죽으면 죽으리라 하니 
사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 가득해

이제 몸도 마음도 근력이 생겼다. 많이 편안해 졌다. 언제까지 어디까지인 
줄 알지 못하지만 내 안에 사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그분으로 말미암아 믿음
으로 소망가운데 사랑하며 살게 하실 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