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남포불을 밝히면서_김영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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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포에서 온 편지>

마음속의 남포불을 밝히면서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넉넉한 사랑으로 성숙한 한 해 펼치기를”

교회 앞마당의 전봇대 위에 원형의 투명한 호박 등 하나가 주위를 환하게 비
추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는 오랫동안 바람이 불면 불안하게 덜거덕거리는 
녹슨 외등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유난히 밝은 밤길 비춰주는 외등

하루는 남편이 전봇대에 사다리를 걸치더니 해질 무렵에 낯선 호박 등이 얼
굴을 내밀었습니다. 환한 불빛은 밤 예배에 참석하기 위한 성도들의 발걸음
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것 뿐 아니라 호박 등 불빛에 반
사되어 나풀거리는 눈발과 쏟아지는 빗줄기에 비추는 불빛은 나에게 낭만의 
분위기를 마음껏 누리게 하며, 지난날의 따뜻한 남포 불에 대한 추억을 기억
나게 합니다. 
70년대 초에 초등학교 교사로 첫 발령을 받은 곳이 벽지의 작은 규모의 학교
였습니다. 작은 동네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
아 등잔에 호롱불이 아니면 남
포에 불을 밝혔습니다. 램프라고 하면 이해하기가 쉽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은 남포라고 합니다. 2년쯤 후에 전기가 들어 올 때까지 깊어가는 겨울밤에 
남포 불 밑에서 책을 읽으면서 젊음을 고뇌하며 꿈과 사랑을 키웠습니다. 
남포 불은 최근에 만났던 따뜻하고 겸손한 한 젊은이를 생각나게 합니다. 
몇 년 전 휴가 때 고향에서 남편의 학창 시절의 친한 친구를 방문하여 그 곳
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이었
는데 한 제자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단 한번의 결혼 주례를 섰
는데 젊은 시절 6학년을 담임했을 때의 남학생이었습니다. 
한 학기를 마치고 전학을 간 학생이 성년이 되어 약혼자와 같이 선생님을 찾
아와 결혼 주례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 때 선생님은 나이든 평교사였고 
그 제자는 서울에서 명문대학을 나와 치과를 개업한 의사였습니다. 처음에
는 거절을 하다가 제자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례를 섰던 이야기를 하면서 제
자를 자랑스럽고 대견하게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우리도 같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 때 내가 치료받아야 할 치

아 때문에 고생을 심하게 하던 시기라 그 제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
다. 진정으로 스승을 존경하는 것이 외모나 체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인격
과 사랑이었음을 알았고 신뢰감을 갖게 하는 그 제자에게 3개월 간의 치료
를 잘 받았습니다. 
그 제자를 만나면서 주변의 이웃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이를 초월하며 
맺어지는 친구들도 있지만 사회적인 신분을 떠나 윗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하
면서 교제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지위나 규
모 때문에 아래 위 구분을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나이에 관계없이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들과 사모님들
은 또 어떤 모습으로 동료를 대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거칠어진 삶의 세월
을 더 산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살아온 세월만큼 그분들도 존경과 따뜻한 사
랑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흔히들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버릇없다며 요즈음 아이들 교육이 문제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지만 그 
버릇이라는 것이 다른 색깔의 모습으로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숙되지 못한 어
른들에게도 해당된
다는 것을 가끔씩 잊고 있는 듯 합니다. 
항상 사랑과 겸손을 가르치면서도 사랑과 대접받기에 익숙한 나와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제자와 같은 겸손함과 존경심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
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은 고슴도치와 같은 외로운 동물이라고 들었습니다. 고슴도치는 사랑하
는 이웃을 포옹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시로 인하여 상
처를 주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항상 혼자 인 것을…… 나이 들어도 수그
러들지 않고 깨어지지 않는 자아 앞에서 내 존재의 나약함이 가끔씩 나를 괴
롭힙니다.
지난 가을, 남편이 호박 등을 달아 놓고 몇 번씩이나 길가에 나가 그 빛이 
어디만큼 비추이는가 확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를 향해 올라오는 성도
들의 안전을 생각하며 기뻐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밝은 빛이 멀리 비추이
듯 내 안의 사랑도 먼 곳까지 전달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깜깜한 그믐밤에 더욱 빛을 발하는 호박 등을 보며 남포를 켜놓고 밤새워 책
을 읽었던 때가 그리워집니다. 그때는 아침에 일어나면 까맣게 그을린 등피
와 콧구멍이 새까만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세수 대야에 비
눗물을 풀어 그
을린 등피를 닦고 남포 불을 밝히면 그 불빛과 함께 마음도 환해집니다. 지
난해의 원유 유출 재난으로 남포등의 그늘같이 어둡던 내 마음에 불을 밝혀 
넉넉한 사랑으로 성숙된 삶의 한해를 열어 보려고 합니다.

마음의 불 밝혀 사랑 펼치고 싶어

춥고 깜깜한 긴 겨울밤의 호박 등은 따뜻한 빛으로 내 마음을 비춰주고, 맑
아진 내 영혼은 작은 신음으로 주님께 아뢰고 그리고 야곱에게 하셨던 “너
는 내 것이다” 라는 음성을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