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 하는 쌀 포장작업
추둘란/수필가,홍동밀알교회
작년에 교회 농사가 아주 잘되었습니다. 단위면적으로 따졌을 때 마을에서
제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마을 사람들의 입에 교회 농사 잘 지었다는
이야기가 자주 오르내렸습니다.
교회의 논농사 년이어 풍년
올해도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이 없습니다. 작년과 비슷한 양이 나왔고 무엇
보다 벼가 추수할 때까지 쓰러지지 않아 일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흑미는 추석 전에 추수할 수 있는 품종이어서 추석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있
고 값도 좋게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비바람에 약해서 잘 쓰
러지는 흠이 있습니다.
더욱이 올해처럼 비가 잦고 바람이 많이 분 조건에서는 흑미를 심은 거의 모
든 논들의 벼가 쓰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교회 논의 벼
는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추석 특집으로 만든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에 교회의 논과 벼가 출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귀
한 흑미를 이번 주일날 낮에 온 성도들이 모여서 포장작업을 하였습니
다. 해마다 이맘쯤에 하는 작업이어서 성도들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다 알고 있습니다. 각자의 능력에 맞는 일을 맡아 분주하면서도 재미나
게 일을 하였습니다.
우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비닐 포장지에 교회 이름이 인쇄된 스티커를
붙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서 팔 힘이 좋은 몇몇 어르신들이 그 포장지 속에
800그램의 쌀을 어림잡아 담습니다. 그렇게 담긴 쌀 봉지를 옆으로 넘겨주
면 이번엔 시력 좋고 손 빠른 젊은이들이 전자저울로 정확하게 그램 수를 확
인합니다.
어림잡은 것이므로 더러 한두 숟갈 더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합니다. 작업이
한창 물이 오른 즈음에는 대충 담아주신 것인데도 그 양이 정확해서 더하고
뺄 것 없이 바로 옆으로 넘기기도 합니다.
정확하게 계량된 쌀 봉지가 옆으로 넘어가면 이번에는 쌀 봉지의 입구를 꼼
꼼하게 닫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봉지가 터지지 않게 이쑤시개로 두세
개의 구멍을 뚫어주는 분들이 계십니다. 여기까지가 여자 성도님들의 몫이
고 힘센 남자 성도님들은 그렇게 포장된 쌀 봉지를 혹 터진 것
이 없나 한
번 더 확인하며 큰 박스에 차곡차곡 담습니다.
잠시 하고 마는 작업이 아니라 두세 시간 동안 꼼짝없이 반복해서 해야 하
는 일이라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결리고 다리도 저립니다. 그런데도 어느 누
구도 쉬었다 하자는 소리 없이 웃으며 일합니다. 하나님의 손길과 숨결이 그
대로 스미어 있는 알곡이라 그 구수한 냄새를 맡기만 해도 감사하기 때문입
니다. 차곡차곡 포장되어 쌓여 가는 박스를 보면 찬송이 절로 나오기 때문입
니다.
쌀가마니를 풀어 쌀을 쏟아주는 일은 대개 남자 성도가 하게 마련인데 어쩌
다 오늘은 장 집사님이 맡게 되었습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어디서 그런 힘
이 나오는지 쌀가마니를 번쩍 번쩍 날라다 가는 쏟아놓곤 합니다.
“취직 잘 하셨네. 짚풀 나르던 실력으로 번쩍번쩍 잘도 하시누만. 아무나
못하는 일인디.”
젖소목장을 하시는 장 집사님이어서 평소에 젖소 여물 나르던 것을 떠올리
고 누군가 한마디하십니다. 여자가 하기에 쉬운 일이 아닌데 즐겁게 일하시
는 모습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저만 잘 하남유? 어르신들 스티커 붙이는 것은 아주 이력이 나셨으니 어
디 가서 단체로 아르
바이트해도 되시겄시유.”
이 화목한 웃음이 배인 흑미를 사다 밥을 해 드시는 분들은 드실 때마다 웃
음이 전염되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해가 되면 한해 농사를 위해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른봄에 벼 종자
를 소독하고 싹을 틔우고 모판에 담고, 못자리에서 어린 모를 키워 모내기
를 합니다. 모내기를 하고 나서 물을 대 주기도 하고 빼주기도 하고 피와 풀
을 뽑아주고 논둑의 풀을 깎아줍니다. 사람의 노력은 이것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알곡 하나 하나가 맺히기까지 더욱 섬세하게 돌보십니다.
햇살을 비춰주시고 달빛을 펼쳐 놓으시고 안개를 흩어 놓으시고 이슬을 뿌
려 주시고 비를 내려 주십니다. 바람 한 줄기도 때에 맞게 센바람, 약한 바
람, 뜨거운 바람, 서늘한 바람을 보내 주십니다. 농부들이 단잠을 자는 밤중
에도 하나님은 이 소중한 벼를 지키고 키우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을 먹이
시기 위하여 졸지도 않으십니다.
이 소중한 흑미는 도시 교회로 팔려 나갑니다. 따뜻한 밥 한 공기가 되어 식
탁에 오를 것인데 한 술의 밥을 뜨는 이름 모를 성도님은 혹 깨달을까 모르
겠습니다.
그 한 술의 밥에 하나님의 은혜와 손길과 숨결과 성도들의 땀과
기도와 찬양과 행복한 웃음이 들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한 술 밥에 담긴 손길 느끼길
각자 맡은 일이 있고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모습에 함께 자리
하신 하나님도 행복하셨을 것입니다. 천국에 가서도 홍동밀알교회 식구들은
이 땅에서 기도하며 농사짓고 쌀 포장하던 날들을 떠올리며 즐거워하고 찬양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