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에 쓴 편지(25)
말만 번드르하게
Mrs. Daisy Sung_미국 포들랜드 한인 문화방송실
예수님은 율법주의자, 위선자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 같은… 이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27-33)라고 꾸짖
으셨다. 누가 들어도 꽤 심각한 상황을 두고 한 마지막의 최대 욕설로 들린
다.
분노를 보이신 예수님
혹 성경 전체를 이해하지 않는 입장에서 듣는 사람이라면 성격이 못됐거나
아니면 점잖지 못해 막말을 했다고 예수님의 인격에 의문을 둘 수도 있겠
다. 석가나 공자, 노자 같은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더라도 한국같이 작은 나
라의 위인들도 예수님의 그 욕설처럼 자신의 인격을 저하시킬 말투 같은 것
은 찾아보지 못한다. 재미있는 현상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멀리서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그와 같은 상황에 매일 부딪쳐 혼동
과 갈등에 어쩔수없이 열을 올려야 되는 일에 마음을 다스리며 애쓰며 사는
것이 우리 일상의 과제이다. 사실 문제는 간단하
다. 나는 화를 적당히 풀어
버리느냐 아니면 속으로 좀더 스트레스는 받더라도 나의 인격을 위하여 참
아 버리고 마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언어의 단순하지 않은 그 뉘앙스는 사실상 큰 차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다해 자기 말을 잘 다스리는 사람을 가리켜 ‘품위가 있다, 사람이
점잖다’는 등 높이 평가한다. 물론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말 본래의 성
격상 그런 입바른 말만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고 다 꼭 그런 사람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어느 나라 동화처럼 시골 동네에 어떤 소년이 늑대가 나왔다고 큰소리로 소
동을 쳤더니 동네 사람들이 몰려 나와 그 놀라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그렇게
여러 번 하다 정작 늑대를 만나 당황해 소리를 쳤을 때는 아무도 내다보지
않아 늑대에게 물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말이란 사람을 살리기
도 죽이기도 한다.
그것뿐인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어도 시청자들이 기억상실이라도 있는 것
처럼 일부 기업인, 정치인, 공인들이 반복하여 부정과 욕설로 다른 말을 하
거나, 유치한 행동으로 소동을 피우거나, 억지 말이나 비꼼으로 다른 사람
의 등을 치기도 한다. 그런
데도 어느새 그 양복 그대로 입고 TV앞에 점잖은
척 다시 서는 모습을 보면 바로 이 사람들이 치매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도
이 사람들은 그 틈에 끼어 함께 배불리고 있는 춤추는 언론들을 등에 없고
더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도 많다.
미국사회에서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을 얼굴이 둘인 사람(double
standard, two faced)이라고 표현을 하나 한국은 여러 얼굴, 여러 겹의 기준
으로 말도 많다.
‘사람이 어떤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낱낱이 심판을 받
으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인정 안 하는 사람이면 역시 무
시하고 말 일이지만 얼마나 심각하고 두려운 말씀인가는 양심이 살아있는 사
람만이 알 수 있다.
사람이 예의를 지키는 수준에서 떠나서 겉과 속이 다른 말과 행동을 하는 것
은 남을 속이는 것과 동시에 자기기만이다. 뭘 크게 얻어먹겠다고 그렇게 불
편한 심기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그런 속셈 같은 것은 떨쳐버리고 사는 게
팔자 편한 일이라는 것을 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속임이 없
는 그 마음에 성령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더욱 자신감이 생기고 두려움도
떨쳐
지는 것이다.
그와 같이 상대를 염려하고 존중하여 상처를 주지 않는 관계를 위해 다르게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런 사랑의 마음으로 다른 말과
행동을 했을 때는 뒤돌아서면 손해 본 생각에 억울하다거나 미운 마음이나
스트레스가 안 생기게 되어 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후한 점수를
주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즐거운 일이 된다.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을 공유하신 공생애 3년 동안 우리와 동일한 사람으로
사셨다. 그러므로 솔직하게 화도 내셨고 완악한 사람들에게 심한 말이라도
하여 일깨워 구원에 이르길 바라는 마음이 있으셨을 것이라 믿어진다.
현 우리나라 대통령은 적어도 가면 쓰는 것을 즐겨 안 하는 분으로 보인다.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의 가면을 다 벗겨보면 대통령보다 더 점잖거나 인격이
높아 존경받을 대상으로 남아있을 이가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다. 겉모양보
다 임시변통, 이중성의 정치를 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이중성 인격 장애자 많아
남이 가면을 쓰고 사니까 나도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었지만 그렇
다고 당장 이익을 보자고 내 생명까지 희
생시키면서 날리는 겨 가루를 잡은
것과 같은 짓을 하는 것은 헛 똑똑한 일이다. 말만 번드르하게 하여 이겼다
고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도 복받는 사람이 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