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신앙을 찾아서<7>
다른 복음(A Different Gospel)
김병혁 목사_에드먼톤 갈보리 장로교회 협력목사
펠라기안(Pelagian)에 포로된 교회
지금으로부터 430여 년 전, 독일의 어느 작은 도시의 한 무명의 수도사에 불
과했던 마틴 루터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비텐베르그 성문 앞에 게재하였다. 이 사건으로 루터는 일
약 유럽에 가장 유명한 인사가 되었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로부터의 파문과 출
교에 이어 시대의 이단자로 지명 당하는 상실과 아픔을 맛보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처음 의도와 다르게 진행되어 가는 역사의 흐름을 관망하
거나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종교적 모함과 증오가 계속될수록 종교
개혁을 향한 의지와 신념은 더욱 강화되어갔다. 로마 교회의 탄압과 비방이
절정에 이를 즈음 루터는 앞으로 전개될 종교개혁의 내용과 방향을 구체적으
로 제시하는 세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일명 <루터의 3대 논문>으로 일컬어
지는 이 논문집은 거짓과 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한 시대 교회를 향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였으며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는 진리의 외침이었다.
그 중에서도 「교회의 바벨론 포로(De Captivate Babylonian Ecclesiae)」라
는 제목으로 출간된 논문은 종교개혁의 즉각적 필연성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
들을 토로하고 있다. 루터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성례관 속에서 하나
님의 말씀에 대한 거짓과 속임으로 일관하는 타락한 교회와 거짓 지도자들의
전형(全形)을 목도하였다. <바벨론 포로>란 일찍이 바벨론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되고 파괴된 이스라엘의 영적 형편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해석과 가
르침이 상실된 교회의 참담한 현실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다.
몇 해 전, R. C. 스프라울은 루터의 이 논문과 관련해서 황당하지만 결코 무
시할 수 없는 상상(想像)을 전한바 있다. 만약 지금 이 시대에 루터가 다시
살아나 우리 시대의 교회와 성도를 본다면 과연 무어라 할 것인가 하는 물음
이었다. 스프라울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라도 루터가 우리 시대의 교회
를 바라볼 수 있다면 지체 없이 다시 펜을 들었을 것이고 책제목은 아
마도
「펠라기안에 포로된 복음주의 교회(The Pelagian Captivity of The
Church)」정도로 짓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당시 교회의 영적 형편이 이교도
인 바벨론 의해 포로된 상태였다면 현대 교회는 펠라기안의 올무에 사로잡힌
상황이라는 이야기이다. 역사적 통찰과 혜안이 번뜩이는 비유이다.
왜 하필 펠라기안인가?
근래에 미국의 한 복음주의 협회에서 실시한 갤럽 조사에 따르면 “구원이 어
떻게 주어지는가?”라는 질문에 70%이상의 크리스천들이 “하나님과 사람의
공동의 역할과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미국의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는 복음전도자로서의 소신을 밝히는 어느 기자 간담
회에서 “하나님이 99%를 하시더라도 나머지 1%센트의 몫을 자신이 채우지 않
는다면 구원은 발생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프랭클린의 이신론적인 구호가 미국 교회의 핵심적인 가르침으로
둔갑한지 오래되었다.
어디 미국 교회만의 상황이겠는가? 오늘날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도 이와 다
를 바가 없다.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면서도 자신의
영
혼과 운명을 하나님의 손에만 맡겨두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인간의 전적 타락 교리는 인간의 선한 의지(도덕적 가능성)와 충돌된
다고 생각한다. 구원을 하나님의 요구(requirement)에 대한 인간의 반응
(response)으로 이해한다. 이처럼 구원을 하나님께만 맡겨둘 일이 아니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원을 이루는 징표를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대개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칼빈주의와 개혁주의에 대해 반감을 표시
한다. 칼빈주의와 개혁주의가 구원 문제에서 인간의 역할과 책임을 배제시킴
으로써 현실의 중심 무대로부터 밀려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
은 이러한 주장이 비단 비개혁주의 노선에 있는 사람들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위 개혁주의 노선을 따른다고 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사이에서
조차 칼빈주의 5대 교리(일명, 튤립교리)를 포기하든지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
리가 늘어나고 있다. 여하튼 구원에 있어서 신인협동론적인 시각은 현대 복음
주의 교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가 되었다. 그 저변에 펠라기안적인 사고
가 똬리를 틀고 있다.
펠라
기아누스(Pelagianus)는 5세기경 밀란(Milan)의 교회 수도사로 어거스틴
(Augustine)과의 논쟁을 통해 유명해진 인물이다. 하나님의 전적인 의지와 인
간의 무능을 강조하는 어거스틴의 설교를 들은 펠라기아누스는 마음속에 차
오르는 의문들을 해소할 수 없었다. 그의 생각에 어거스틴은 죄에 대해 너무
과도하게 집착한 나머지 인간의 본래적 사명(도덕적 추구와 문명의 개선 같
은)을 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어거스틴과 달리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적인 이해를 추구하였다. 인간
의 본성은 아담의 원죄와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선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사람
의 의지는 죄의 고리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으며, 구원은 하나님의 율법
에 대한 자신의 처신과 태도로서 결정되어진다고 하였다. 펠라기아누스의 이
같은 주장은 이내 정통 교회 회의를 통하여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하지만 아
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이단적인 사상은 교회 역사 속에서 숱한 변신과 적응을
시도하면서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다가 언젠가부터 세상을 지배하는 신앙으
로 둔갑해 버렸다.
교회 역사 속의 펠라기안주의(Pelagianism)
펠라기안주의가
5세기 이후에 출현하였다고 해서 초대 교회 안에 인간 중심적
인 복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초대 교회 당시 발흥했던 많은 기독교 이단
종파들의 주장들은 근본적으로 지극히 인간적이었으며 세속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이 정통 기독교권내로 유입될 만큼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왜냐하
면 이들의 출현과 함께 만들어진 정통 교리와 신앙 고백들이 진리를 파수하
는 방패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였기 때문이다.
펠라기안주의가 정통 기독교 역사 속으로 진입하게 된 것은 펠라기안 사후(死
後) 시점으로 보는 것이 옳다. 얼마 되지 않아 이단으로 정죄된 펠라기안주의
는 반펠라기안주의(Semi-Pelagianism)라는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것
은 어거스틴과 펠라기안의 극단적인 주장을 타협하는 성격이 있었지만 인간
의 전적인 죄성을 부정하는 한편 구원에 있어서 사람의 의지를 조건으로 삼았
다는 점에서 더욱 교묘해진 펠라기안의 재생이었다.
중세들어, 신인협동론적인 반펠라기안주의는 로마 카톨릭의 주류 신학으로 대
체되기에 이르렀다. 로마 카톨릭은 반펠라기안주의와 이원론적 세계관에 기초
하여 성례와 의식(儀式)을 통한 공로
적 구원관의 설파하였다. 로마 카톨릭이
펠라기안의 거짓된 환상에 매몰되었을 즈음 종교개혁자들은 바울과 어거스틴
이 부르짖은 참된 복음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오직 성경’, ‘오직 믿
음’, ‘오직 은혜’를 강조한 종교개혁자들은 ‘구원에 관한 한 인간은 백퍼
센트 하나님께 의존적이며 하나님의 예정 속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만 허
락되는 신적 은총이다‘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같은 종교개혁자들의 외침은 한 세기가 지나가기도 전에 더욱 강력
해진 펠라기안의 망령에 의해 심각한 도전을 받아야만 했다. 알미니안주의
(Arminianism)가 그것이다.
알미니안주의는 종교개혁 전통 자체를 부정하거나 칼빈주의 전체를 부정하지
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시종일관 펠라기안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주
권과 인간의 의지를 모순적인 관계로 파악하였다. 신앙의 영역에서 인간의 자
리를 확보하기 위해 구원과 믿음을 하나님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구원은 하나님과 관계된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로 간주하였다. 인간의
의지와 책임을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보다도 강조하면서 정통 교회의 가르침으
로부터
벗어났지만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와 같은 인간 중심의 시대 사조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하였다.
펠라기안주의처럼 종교개혁자들과의 신학적 논쟁을 통해 이단 사설로 정죄되
었음에도(도르트 총회, 1610) 알미니안주의는 쇠퇴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
에게서 환영을 받았다. 시카고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윌리암 스위트
(Willam. W. Sweet)의 말처럼 18세기 이후 알미니안주의는 보통 사람들의 신
학으로 변모하였다. 19세기에 들면서 알미니안주의는 웨슬레식 부흥주의
(Revivalism), 적극적 승리주의(triumphalism), 실용주의적 복음주의
(Evangelicalism), 주관적 감정주의(Sentimentalism) 그리고 신학적 상대주의
(Relativism)와의 은밀한 거래를 통해 그 진영을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오늘
날 현대 복음주의라는 초대형 간판아래서 사람의,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복음을 무차별적으로 생산, 판매하고 있다.
다른 복음, 그러나 그 안에 진리는 없다
어느 세속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좀더 덜 신학적이지만 좀더 종교적인 시대
에 살고 있다. 펠라기안주의와 그 계보를 따르는 자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
함 없이 종교를
권하고 있다. 이 종교는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과 주권 같은
신학적 대전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 없이도 신앙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
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구원이 인간의 의지와 책임에 부담이 된다면 침묵할 것
을 요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사람을 위하지 않는 신학과 교회는 무용지물이
라고 엄포를 놓는다.
많은 사람들은 이 종교를 통해 안식을 얻고자 하며, 종교적 희열과 결단을 경
험하며, 때로 합리적이고 매력적인 가르침과 배움을 얻는다. 이 종교의 탁월
한 친화력과 포용력을 매개로 사람을 얻고 교회를 확장하며 시대와 사귄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대변하지 않는 종교는 더 이상 참 종교가
아니다.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종교적 수사(修辭)로서는 가치는 있을지라
도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다른 복음(a different gospel)일뿐이다.
나는 C. S. 루이스와 비슷하지만 다른 상상을 해 본다. 만약 사도 바울이 종
교를 좇으면서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이 시대의 교회를 본다면 무어라 할
까? 확신컨대 그는 지체 없이 이렇게 고백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른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
는 것
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
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갈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