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인하심에 대한 확신_이차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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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인하심에 대한 확신

이차식 목사_덕일교회

특정한 사람들만을 구원에 이르도록 하나님께서 영원히 작정하셨다는 칼빈의 
입장은 16, 17세기의 모든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일치된 생각이었다. 그러나 
루터교 신학자들은 이러한 견해가 숙명론이 수반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거부하
였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극한 항변에 대항하여 갖게 된 돌트 총회는 사
도시대 이후, 그 어느 모임만큼이나 학문성이나 경건성에 있어서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선택의 성격에 대하여 성경에 기반을 둔 돌트 총회의 5대 교리는 당
시 교회들에게 개혁주의 신학의 근간이 되는 커다란 일치점을 이루었을 뿐 아
니라, 이 은혜의 교리는 오늘날 모든 개혁파 교회의 의심할 바 없는 표준이 
되었다. 이 교리는 우리 신앙의 근간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도 중요
한 내용으로 고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작정하심은 미리 보는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과 천사
는 생명에로, 어떤 사람과 천사는 
영원한 죽음에로 예정되어 있으며, 선택받
은 자의 숫자는 정해져 있고 바뀔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가운
데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은 자신의 믿음이나 선행이나 인내, 조건 등과는 상
관없이 오직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오직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적당한 때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유효
적으로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다. 그리고 의롭다함을 받고 양자됨과 거룩하게 
됨과 영화에 이르도록 하셨고, 그의 능력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보호하
심을 받는다.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대로 어떤 자에게는 긍휼을 베푸시
나, 다른 이에게는 거두심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스러운 공의를 찬송하게 
하시는 것이다.” 

오직 성경 

만일 신자가 연약하여 반복적으로 죄에 빠진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보
호하시며 당신의 소유된 자녀들의 손을 항상 붙잡고 계신다. 하나님의 약속
의 확실성은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가에 달려있지 않고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 
달려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에서는 특별한 계시가 없는 한 우리는 이생에
서 미래의 견인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하였다.
로마 카톨릭이 개최한 트렌트 공의회에서(1545-1562년)는 특별한 계시를 받
지 않고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하는 사람에게 저주를 선언하였다. 이 
말은 성경이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성경 이외에 다른 특별계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 이외에 어떤 계시를 받을 필요가 없다. 
성경은 그 자체만으로 절대적이다. 성경 이외에 또 다른 특별계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로마 카톨릭과 같은 아르미니우스 주의자들만의 주장이 아니다. 
신비주의자들 그리고 일부 복음주의자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신자가 자신이 하늘로 갈 것이라는 사실을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경을 
통해서만 믿으려 하지 않고 소위 성령의 직통계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
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말씀 밖에서 행해지는 비정상적인 사적계시를 의존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말씀과 성례와 더불어 역사하시는 성령을 신뢰하
지 않고 이 은혜의 수단을 벗어나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추구하는 것은 궤도
를 이탈하는 행위인 것이다. 

성령의 역사로 회복하심

성경의 예언적 발언들은 선지자들의 사적 용도로 쓰이지 않
았다. 결코 계시
는 사적인 결정을 내리는데 기여하지 않는다. 어떤 구절이라도 성령님은 주술
적이며 마술적인 정보를 제공하거나 개인의 행복과 성공에 대한 은밀한 하나
님의 뜻을 계시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물론 성경에 지혜를 구하
라 하였으며 하나님 말씀에 대한 조명하심도 확실히 있으나 지금 특별한 계시
는 없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장래에 대해서 지나치게 알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
서 우리 삶에 대해 가지는 비밀한 계획을 침해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
리의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시나 우리에게 그 숫자를 알게 하지는 않으신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과 경건에 대해 평생 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계시
를 선물로 주셨다. 
또 성령의 활동은 이 세상에서 죽은 자를 살리고 병자를 살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들을 영적인 생명으로 소생시키며, 말씀 가운
데 밝게 하시며 일깨우시며, 결국 이 세상 끝에 죽은 자들의 몸을 일으키시므
로 구속사역을 완성하실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귀신들의 세력을 묶는 권
세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는 권세를 주신다. 
그 증인의 
증인됨은 그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신자들은 이생에서 여러 가지 의심과 육신의 죄와 투쟁하며 환난을 당한다. 
그러므로 심각한 시험 아래 있을 때 믿음의 확신이나 견인의 확실성을 늘 충
만히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시 32, 77편).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자들
이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제공해주셔서(고전 10:13) 기도와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로 다시 견인
의 확실성을 회복시켜 주신다(벧전 5:9,10. 하이델베르크 문답 127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