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에 쓸려간 반지하 서민들의 추석
< 유순아 박사, 한국멤버케어연구소장 >
“교회는 이웃에게 따뜻한 위로와 소망 전달해야”
올해는 유난히도 무덥고 잦은 비바람과 강풍으로 인해 힘겹게 여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그 어느 해보다도 긴 추석 연휴가 기다려졌다. 이 기간 동안 가족과 친지들을 방문하면서 좀 쉬고 싶었다.
그런데 추석 명절을 앞둔 연휴 첫날, 수도권 지역에 9월 하순 강수량으로는 103년 만에 최고치에 달한다는 300mm에 가까운 폭우가 쏟아졌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마치 양동이로 퍼붓는 것처럼 아니 하늘에서 물 폭탄이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배수 기능을 마비시킬 정도로 비가 내리면서 하수가 솟구쳤고 결국 도시 곳곳에서 침수 피해가 속출했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니 기습 폭우로 인해 일부 지역 도로가 물에 잠기고 그 물이 고스란히 저지대 반 지하 방으로 휘몰아쳐갔다.
아무 것도 모르고 반 지하 부엌에서 추석 음식을 준비하던 한 아주머니는 밖에서 물이 들어온다는 급박한 소리를 듣고 가까스로 문을 열였는데 순식간에 물이 쏟아져 들어와 온 집이 물에 잠겼다고 망연자실해하며 말도 잇지 못했다. 배수가 안되니 물이 욕실과 싱크대의 하수구로 역류해 치솟아 올랐다. 게다가 추석 연휴라 집을 비운 집들이 많아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 그 황망함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종일 쏟아지는 빗줄기를 내다 보면서 곳곳에서 속출하는 비 피해 소식을 들었다. 빗물에 쓸려간 반 지하 서민들의 애환을 보면서 쉬고 싶다는 마음이 싹 사라졌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피해를 당하는 사람을 없을까? 그런 환경에 처할만한 사람은 누굴까? 이 사람 저 사람 생각해 보며 전화를 하고 통화가 안되면 문자를 보냈다. 그러면서 직전에 전임 사역자로 사역했던 교회의 당회장이셨던 고 옥 한흠 목사님이 생각났다.
심방 사역을 한지 몇 년 안돼서였다. 양재동 화훼 공판장에 화재가 나서 비닐하우스 몇 동이 전소됐다. 그 곳에서 장사를 하는 분 중에 구역 성도가 있어 화재 소식을 듣고 곧장 달려갔다. 그 분은 안타까워하는 나를 보며 오히려 웃으면서 와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곳에 우리 교회 성도 두 가정이 더 있다고 하면서 그들을 데리고 오셨다. 위로하며 함께 예배를 드리고 왔다.
그 날 밤이었다. 옥 한흠 목사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유 전도사, 양재동 담당이지? 오늘 양재동 화훼공판장에 화재 난 것 아니?” “예, 제 구역과 다른 구역 성도 세 가정이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오늘 오전에 다녀왔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그리고는 끊으셨다. 다음 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시고 사모님과 두 분이 그곳을 찾아가서 우리 교회 성도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위로해 주셨다.
새까맣게 다 타 오그라들고 녹아버린 화재 현장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그것도 몸이 편찮으신 당회장 목사님께서 찾아 오셨으니 그 분들에게는 얼마나 큰 힘과 위로와 보상이 되었겠는가! 강대상 위에 계셔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니라 나의 작은 신음에도 귀 기울여 주는 여유 있고 따뜻한 아버지, 평생 잊을 수 없는 목사님으로 마음에 새기지 않았을까!
그 분께서는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말없이 도우셨다. 심지어 누가 봐도 ‘거짓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는데도 와서 도와달라면 번번히 속아주면서 도와주셨다. 보다 못한 부교역자가 옆에서 화를 낸 적도 있었다. 매일 아침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지하 본당 강대상 밑에서 무릎 꿇고 울며 기도하시던 그 모습이 생각난다. 그 분께서 이번 이 일을 보셨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제 옥 목사님은 다시 우리에게 내려올 수 없다. 그러나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기 원하셨던 그 분의 정신은 교회의 정책 위에, 사역자의 손과 발로, 성도들의 일상의 삶에서 되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로 위의 물들이 저지대 반 지하 서민들과 반 지하 교회의 추석을 순식간에 앗아갔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연합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와 소망을 전달해 줄 수 있는 강한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각 교회에서 준비하고 있는 가을 전도집회를 조금 앞당겨 슬픔을 당한 우리의 이웃을 찾아 가는 것은 어떨까? 추수감사주일 감사를 조금 앞당겨 그들을 위해 사용한다면 어떨까? 크리스마스를 조금 앞당겨 선물을 미리하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