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公正)한 사회’라는 거울_조석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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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公正)한 사회’라는 거울

 

< 조석민 목사,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교수 >

 

 

“인맥, 학맥 등과 같은 연줄문화가 부패의 온상”

 

 

지난 8.15 광복절에 이명박 대통령이 경축사를 통해서 “공정한 사회야말로 국가 선진화의 윤리적 인프라”라고 언급하며 “앞으로 공정한 사회라는 원칙이 확고히 준수되도록 해야 한다”고 선포하면서부터 ‘공정한 사회’는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은 어떤 의미로 공정한 사회를 말한 것일까? 정직한 사회도 아니고 정의로운 사회도 아닌 공정한 사회를 위하여 따뜻한 마음과 나눔의 실천이 매우 중요하며,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불공정한 관행을 없애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 그의 말에서 어느 정도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정한 사회란 그 표현 자체에 해석이 들어 있기에 그 의미가 분명한 것 같다. 다시 말해서 공정한 사회란 공평(公平)하고 정의(正義)로운 사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가 모든 면에서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목표로 제시한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원정>(原政)에서 “정치를 하는 자는 공정하게 하는 것이며 백성들이 균등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政也者 正也 均吾民也)이라며, 정치의 본질이 공정과 균등에 있음을 이미 오래전에 역설했다. 늦었지만 이 정부가 이제야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기에 진심으로 환영한다. 구약성서의 시편 기자는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시 99:4)라고 교훈한다.

 

하지만 공정한 사회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 평지풍파(平地風波)를 일으키는 무서운 회오리바람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이 앞선다. 공정한 사회라는 구호는 우리 사회에 그렇게 새로운 화두는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부정부패척결, 정의 사회 구현, 등등 수없이 많은 유사한 구호가 난무했던 것이 우리 사회이다. 특히 이런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일수록 전혀 공정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한 것을 우리는 역사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이런 점에서 공정한 사회는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 이전에 이 구호를 제창하는 자가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경재적인 부와 각종 기득권(旣得權)을 유지하기 위하여 무차별한 반칙을 합법적으로 자행하면서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리는 사회 속에서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고위 공직자들, 특히 사법부의 공직자들이 먼저 이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은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전국 1300여명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부패인식도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조사의 결과를 보면 청소년의 30%는 ‘정직하게 사는 것보다 돈 많이 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고, 심지어 청소년들의 76.8%는 ‘우리 사회가 부패하다’고 답했다.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청소년들에게까지 확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정한 사회라는 구호는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도 이루어가야 할 윤리적 모습이기도 하다. 신구약성서는 공평과 정의, 그리고 인애와 평화가 넘치는 믿음의 공동체와 사회를 이루어 나가야 할 책임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음을 교훈한다. 공정한 사회라는 거울에 비춰진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어떤지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교회는 이 거울에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목회자들과 교회의 직분자들은 이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야 할 것이다. 공정한 사회라는 구호가 단지 정치적 구호이기 이전에 공평과 정의의 실천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구약성서가 가르치는 교훈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의 잠언과 시편 기자는 각각 다음과 같이 교훈한다.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잠언 21:21).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시 89:14). 신약성서에서 바울도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골 4:1)라고 교훈한다.

 

우리 사회가 공정한 사회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인맥(人脈)과 학맥(學脈) 등등의 연줄문화 때문임을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연줄문화는 우리 사회의 부정한 거래를 양산하며, 정직하고 공평한 사회를 저해하는 나쁜 뿌리이다. 이런 못된 뿌리가 교회 공동체에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는 곳이어서 연줄문화는 다양한 모습으로 여전히 존재하며, 빈부의 격차 또한 교회 안에 그대로 존재한다.

 

서울의 한 교회는 주중에 모여 예배와 교제를 나누는 소그룹 편성을 할 때 비슷한 사회적 신분을 가진 사람끼리 모아 놓거나, 비슷한 재산의 소유자끼리 모아 놓아 아파트의 평수가 비슷한 가정끼리 한 그룹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변형된 연줄문화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공정한 사회와 교회의 본질을 저해하는 연줄문화를 교회에서부터 제거해야 한다.

 

교회 공동체 안에 연줄문화를 방치하면 교회는 곧 부정한 거래의 온상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아는 사람이 교회에서 만난 사람뿐이기에 같은 교회의 성도들에게 일을 맡기면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이것이 공적 영역으로 확대되면 그것은 오히려 부정부패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부정한 거래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뿌리 내리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결국 우리 사회의 부패행위를 막는 일이며, 동시에 공정한 사회를 이루어가는 방법일 수도 있다.

  

교회 공동체 안의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모두 한 가족이기에 향우회, 동창회, 동호회 등등의 특정집단이나 연줄 모임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