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자_조병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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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의 목회편지(97)
딤전 5:17(b)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자

조병수 교수_합신 신약신학 

목회란 무엇인가? 목회 개념은 시대마다 그리고 관점마다 바뀔 수 있는 것일
까? 솔직히 말해서 목회는 어느 시대에 전개되며 누가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
르게 이해될 수 있고 또 다르게 이해되어야 한다. 오늘날 어느 목사가 갓 쓰
고 집신 신고 목회를 하겠다고 고집한다면 또 성도들이 목사에게 그렇게 목
회하기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시대착오적인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시대착오 발상 목회 없어야

최첨단 장비를 갖춘 도시목회에 익숙한 목사가 농촌교회를 섬기면서 겨우 한
글을 깨우친 노인들에게 매일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자기의 설교를 다시 들으
며 공부하라고 강요한다면 이것은 이만저만한 어불성설이 아니다. 목회는 시
대에도 맞아야 하고 대상에도 맞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분명히 
“오늘의 목회”와 “여기의 목회”란 것은 있다. 
하지만, 하지만 
목회의 이런 현장성에도 불구하고 동서고금을 논할 것 없이 
모든 목회에 항상 바탕이 되는 것을 한 가지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다.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이 꼭 설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목회에서 설교의 귀중성은 백 번 강조해도 틀림이 없다. 
그러나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를 보내
는 중에도, 심지어는 길을 지나가다가 인사를 나누는 때도 목사에 의해서 말
씀이 가르쳐져야 한다. 목회란 시대가 변하고 공간이 달라져도 말씀을 가르
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목회의 뿌리라고 불러
도 괜찮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잘 다스리는 장로가 갑절로 존경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에
서 이 점을 주지시키고 있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은 더욱 그러
하다(갑절로 존경을 받아야 한다)”.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는 다스리는 장로
와 가르치는 장로가 구분되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가르치는 장로란 오늘
날로 하자면 목사를 일컫는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과 가르침을 왜 나
누어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두 단어는 구태여 
구별해야 할 필요가 없는 비슷한 말이라는 점을 생각
할 때 혹시 사도 바울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함으로써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
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사도 바울은 유사한 단어
를 두 번 사용하여 가르치는 장로의 근본적인 사명이 무엇인지를 밝혀주고 
있다는 것이다. 
목사(가르치는 장로)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목사가 교사보다
는 연출자의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목사 자신도 그 길을 욕심내고 성도
들도 목사에게 그런 길을 가기를 요청한다. 가르치는 사명을 내팽개치고 무
대 위에서 공연하듯이 목회하는 목사들도 문제지만 교사보다는 매니저처럼 
행동을 하는 목사를 선호하는 성도들도 잘못이다. 
그러다 보니 목회는 어느덧 무대공연이나 사업과 다를 바 없는 것이 되어버
리고 말았다. 목사는 연출과 경영을 배우는 데 혈안이 되고 신자들은 좋은 
게 좋은 거니 생각하면서 아무런 비판정신이 없이 텔레비전의 쇼나 연속극
을 보듯이 그냥 무심하게 교회생활을 해나간다. 교훈이 없는 목회는 상품이 
빠진 상자와 같다. 
목회가 이렇게 근본 개념에서 벗어나게 된 원인을 시대와 관점의 변화 
때문
이라고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공간이 달라져도 목회에서 빠뜨릴 수 없는 뿌리이기 때문이다. 목회의 현장
성은 언제나 이 근거에서만 이야기될 수 있다.
오히려 목사가 목회의 근본개념에서 이탈한 까닭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자
신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표현이다. 목사가 더 이
상 말씀연구에 전념하지 않을 때 역시 말씀을 가르치는 것에도 열심을 내지 
않게 된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이라는 사도 바울의 진술에
는 교육 뿐 아니라 연구에서 나타나는 수고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
는 안 된다. 연구하는 목사만이 가르치는 목사가 된다. 

연구하지 않는 목사 없어야

오늘날 목사와 교회가 존경받지 못하는 것은 연출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진
리 교육이 결핍되었기 때문이다. 말씀을 공부하지 않는 목사와 교회가 존경
을 받는다는 것은 꿈에라도 불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