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절의 존경 _조병수 교수

0
18

조병수의 목회편지(96)_ 딤전 5:17

갑절의 존경

조병수 교수_합신 신약신학

종종 우리는 하나님이 직접 신기한 능력을 베풀기를 즐겨하신다고 생각한
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해 가운데 하나이다. 성경을 봐도 역사를 봐도 하나
님은 직접 능력을 베푸시기보다 대체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어렵
지 않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와 관련하여 이런 현상은 두드
러지게 나타난다. 

일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이끄시기 위하여 처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지도자들
을 세우셨다. 그런데 교회의 지도자 중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 
하나가 장로라는 직분이다. 장로 직분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목양하기 위해
서 이미 구약시대에 주신 것이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더욱 분명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장로 직분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라는 점에서 교인을 대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리하는 것이다. 
만일에 장로가 교인의 대표자라면 목에 힘을 줄 수 
있겠으나 하나님의 대리
자이니 만큼 언제든지 겸손할 수밖에 없다. 그는 제멋대로 행동해서는 안되
고 항상 하나님의 뜻을 사려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에 수많은 갈등과 혼란
이 발생하는 이면에는 이런 간단한 가르침 하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
가 있다. 
그런데 장로는 하나님에 의하여 세우심을 받았다는 사실에서만 권위를 찾으
면 안 된다. 물론 하나님의 세우심에 이미 장로의 기본적인 권위가 보장된다
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장로는 이런 기본적인 권위에 만족할 것이 아
니라 두 배의 존경을 받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장로에게는 뉘앙스가 조
금 다르기는 하지만 복지부동이란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 장로는 제 자리 걸
음과 무관한 사람이다. 
장로의 사전에는 자만(自滿)이란 단어가 없다. 장로에게 “그만하면 됐다”
는 생각은 금물이다. 전진하지 않는 것도 비상하지 않는 것도 장로가 반드
시 피해야 할 사항들이다. 장로는 달려가든지 날아가든지 배나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것을 의도했다. “잘 다스리는 장
로들은 갑절의 존경을 받기에 합당해야 한다”(17절). 
그렇다. 장로는 
갑절의 존경을 받을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
다. 그런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써야 한다. 그런데 사도 바울
은 여기에서 어떤 장로가 두 배의 존경을 받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그것은 “잘 다스리는 장로들”이다. 
이 표현은 언뜻 보면 논리적으로 약간 이상한 듯이 보인다. 사도 바울은 장
로가 갑절의 존경을 받기 위해서(결과) 잘 다스려야 한다(원인)고 말하지 않
고,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결과) 갑절의 존경을 받기에 합당해야 한다(또 다
른 결과)고 말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의 진의는 장로가 잘 다스리는 사람일 때만 갑절의 존경을 받기 위
해 노력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잘 다스리는 장로가 아니면 갑절
의 존경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 자체가 무의미하다. 장로의 역할을 제
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존경받기만을 구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갑절의 존경과 관련해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장로의 역할은 그다지 복잡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너무나도 간단해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다. 우리말로는 “다스리다”(개역, 개역개정)로 번역된 단어는 점점 여러 

지 파생적인 뜻을 가지게 되었지만 본래는 “앞에 서다”라는 단순한 의미
를 가진다. 그러니까 순전히 원래의 의미대로 읽자면 장로의 제일차 역할은 
앞에 서는 것이다. 
장로는 앞장 서는 사람이다. 장로의 자리는 앞이다. 이것은 장로가 뒷전에 
물러서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가리킨다. 뒷걸음치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 장로는 모범적이어야 한다. 장로에게는 선도적인 기능이 중요하다. 이
것은 장로가 진취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로는 가만 내버려두
면 언제나 발동되는 퇴행성과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장로는 앞장 서는 직분

사도 바울은 갑절의 존경을 받을만한 장로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한 단어를 
덧붙였다. “잘”. 이것은 비록 한 단어에 지나지 않지만 무한의 의미를 띠
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촌철살인의 단어이다. 과연 우리는 “잘”
이라는 단어 앞에서 무사히 견딜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