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의 목회편지(49)-기품 (딤전 3: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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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품 (딤전 3:4a) 

조병수 교수/ 합신 신약신학

내가 그 목사님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강산이 변하고도 몇 번은 변했을 
시간이 되었다. 그때 나는 유학 말기에 어머니께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온 터였는데, 그 목사님은 내가 잠시 귀국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산골자기 목회지로부터 한 걸음에 달려오셨다. 으레 그렇게 사는 분임
을 전부터 잘 알고 있었음에 불구하고 나는 그의 행색을 보는 순간 아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다 해지고 빛 바란 검정고무신에 양말도 신지 않고, 
계절은 이미 겨울로 접어들고 있는데 얇은 반 팔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게
다가 셔츠의 목덜미는 닳고닳아 칼라가 떨어져 저절로 로만 칼라가 되었다. 
그의 옹색한 모습에 나는 그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이고 대화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그의 기품에 완전히 압도되고 말
았다. 그의 맑은 눈빛, 확신에 가득 찬 주장, 현실을 해부하고 앞날을 예견하
는 혜안, 그리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목회철학, 이런 모든 것이 마치 거
대한 산처럼 나를 눌러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기품, 이것은 목회자에게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기품을 잃어버린 목회자
는 이미 목회자가 아니다. 아니, 비단 목회자에게 뿐 아니라 기품은 모든 성
도에게 요청되는 필수적인 덕목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감독들에게도 (4), 
집사들에게도 (8), 여자들에게도 (11) 단정함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단정함이
란 다른 말로 하면 품위 있는 모습을 의미한다. 사실상 사도 바울은 벌써 이 
주제를 언급한 바가 있다. 사도 바울은 통치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권면
하면서 그렇게 기도해야 할 이유를 신자들이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
활을 하는 것에서 찾았던 것이다 (딤전 2:2). 사도 바울이 이처럼 감독을 비
롯하여 모든 신자에게 단정함을 요구하는 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
무 간단하지 않은가?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신자들에게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목회자들에게서조차
도 기품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사도 바울이 스스로 갈파했던 것처럼, “무명
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
진 자로다” (고후 6:9-10)라고 말할 수 있는 목회자를 만나보기가 참으로 힘
들다. 이름을 낼 수 있는 길, 성공을 보장하는 길, 재물을 얻을 수 있는 길
을 위해서라면 목회자의 기품이고 나발이고 다 내동댕이치고 허둥지둥 좇아가
는 목회자들이 지천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목회자들은 목회자의 기품이 
무엇인지 일부러 잊어버리려는 듯 하다. 

그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지 않고서야 어찌 목회자에게 기품이 있겠
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그 속에 가득히 담고 있는 목회자에게서 어찌 기품이 
뿜어 나오지 않겠는가? 비록 질그릇처럼 연약한 인생이라도 예수의 보배를 담
고 있으면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
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
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고후 4:8-9). 이런 목회자는 유명해지는 것
에도, 성공하는 것에도, 부요해지는 것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이미 예수를 위
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놓았기 때문에, 다시 말하자면 예수의 영광스러운 생명
이 그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의 영광을 그 속에 가득히 채
우지 않은 채, 머리에 번지르르하게 기름을 바르고 바지의 주름을 칼처럼 세
우고 파리도 미끄러질 정도로 구두에 광택을 내고 매끄러운 웃음을 입가에 흘
리며 날카로운 말솜씨를 뽐내며 기름진 매너로 치장된 목회자들의 외면적 기
품을 나는 혐오한다. 그리고 목회자의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텅 빈 것을 모
른 채, 그 외면적 기품에 깜빡 죽는 신자들을 나는 혐오한다.

다 해진 얇은 반 팔 와이셔츠를 입고 초겨울의 추위에 바들바들 떨면서도 
그 몇 번의 눈짓과 몇 마디의 말로 나를 간단히 굴복시켰던 초라한 목사님의 
기품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