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교수의 목회서신 연구(5)-빛에 가까운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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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가까운 어둠 (딤전 1:3-4) 

그림자는 항상 빛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양지와 음지 사이의 거리는 그
리 멀지 않다. 

정말 두려운 것은 거짓 교훈이 바른 교훈에 즉시 이어진다는 것이다. 곁길 
(샛길)은 언제나 큰길에서 갈라진다. 거짓 길은 바른 길에서 시작된다. 이런 
현상은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에도 나타났다.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에 다른 
교훈이 일어난 것이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로 가려고 할 때 
이미 거짓 교훈이 교회에 발생하였다. 어떤 사람들이 다른 교훈을 가르쳤던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신속한 일인지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로 떠나면서 디모
데에게 명령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 두려운 것은 때로 거짓 교훈이 바른 
교훈보다 더 강한 매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바른 길을 가는 것을 
싫어하고 다른 길에 곁눈질을 한다. 사람들은 정로 (正路)보다 사로 (斜路)
에 이상한 매력을 느낀다. 몰래 먹는 떡에서 야릇한 맛을 느끼듯이 몰래 배우
는 거짓 교훈에 홀딱 
넘어가며 형언할 수 없는 쾌감을 누린다. 이 땅에 이렇
게 끊임없이 거짓 교사들이 등장하는 것은 사람들의 이와 같은 경향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곁길을 향한 강한 동경심이 있지 않고야 어떻게 이처럼 
계속해서 거짓 교사들이 등장할 수 있겠는가. 사도 바울의 시대에 그랬다면 
우리 시대에는 오죽하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게 
할 것을 권면하였다 (딤전 1:3). 그러면 다른 교훈은 무엇인가. 사도 바울 자
신이 이에 대하여 설명을 주고 있다. 그것은 신화와 족보이다. 이 두 말은 상
이한 것이라기보다는 보충적인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신화의 성격은 신
약성경에 네 차례 나오는 진술을 살펴볼 때 어느 정도 발견할 수 있다. 무엇
보다도 신화는 망령되고 허탄한 것이다 (딤전 4:7). 망령되다는 것은 신화가 
경건하거나 신앙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치 할머니가 손주에
게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와 같이 별로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본래 헬라
어에서 “허탄하다”는 말은 나이 많은 노파와 같다는 뜻이다). 따라서 신화는 
진리와 반대가 되는 것이
다. 그런데 불구하고 말세에는 사람들이 진리에서 돌
이켜 신화를 좇게 된다 (딤후 4:4). 왜냐하면 신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로 교묘하게 꾸며지기 때문이다 (벧후 1:16). 참으로 놀라운 것은 심지어 유
대인들 가운데서도 신화가 횡행한다는 사실이다 (딛 1:14). 위에서 말한 바
와 같이 신화와 족보가 서로 보충적인 것이라면, 신화의 내용은 족보에 관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족보는 사람의 계보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창
조의 설화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본문에서는 후자를 말하는 것
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
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다른 창조신화를 따르는 처사를 의미한다. 이런 처사
는 결국 변론과 분쟁과 다툼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딛 3:9).

밝은 빛에 가장 근접하는 어둔 그늘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바른 길에서 즉
시 파생하는 거짓 길이 사람들을 유인하는 힘은 대단히 강렬하다. 신화와 족
보로 이루어진 다른 교훈의 매력은 보통 강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약과 같
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화와 족보에 맛이 들면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
하고 착
념하게 된다. 다른 교훈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
도로 억센 것이다. 그것은 마약중독과 같은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거
짓 교훈을 바른 교훈보다 더 열정적으로 고집스럽게 추구한다. 본래 악에 대
한 추구는 선에 대한 추구 보다 지독하다. 그래서 사람을 바른 교훈에 들어서
게 하는 일보다 사람을 거짓 교훈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려운 것
이다. 이런 까닭에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두어 사람들이 신화
와 족보에 착념하지 않도록 바로 잡을 것을 엄중히 명령했던 것이다 (딤전 
1:4). 

지금도 어두움은 빛에 가장 가까이 있다. 진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거짓이 
있다. 우리가 잠시라도 경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진리 
곁에는 항상 거짓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