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서는 신앙 “여호수아 3장 8절”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신앙이란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겁 없이 우리를 벼랑 끝에 세우는 것”
애굽을 벗어난 백성들이 홍해를 담대하게 건넌 것은 하나님을 신뢰해서가 아니라, 홍해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홍해 가에서는 현실적으로 안전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눈앞에서 바다가 갈라지고 그 바다 한복판에 길이 이미 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바다로 달려 들어가도 거기 빠져죽을 일이 절대로 없었습니다.
이것은 굳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발동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저절로 확인되는 상식이고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빠져 죽을까봐 바다를 건너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신앙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바보천치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단강 가에서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강물은 강 언덕까지 넘실댔습니다. 그 강에 그냥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과 그러면 모든 꿈은 허사가 되고, 지금껏 살아온 인생은 한 순간에 끝장이 나고 만다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상식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에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는 야속하고 매정할 만큼 단호했습니다. “너희가 요단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나님이 변심하신 것일까요? 심술이 나신 걸까요? 요단에 들어서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요구였습니다.
강 저편에 보이는 저 땅 곧 우리를 들여놓겠다고 하셨던 저 땅에 하나님은 약속대로 반드시 우리를 들여놓고야 마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어느 정도나 가지고 있는가, 지금까지 40년 동안 그 길을 지내오면서 경험하고 확인했던 그 하나님을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여전히 신뢰하고 있는가를 행동으로 보이라는 요구였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언약궤를 등에 멘 제사장들을 앞세워 넘실거리는 그 강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요단강에 들어간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자살 행위가 아니고, 하나님을 그렇게나 신뢰하는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벌어진 일을 성경은 이렇게 극적으로 기록합니다.
“물이 그치고, 물이 쌓이고, 물이 끊어지고… 백성은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넜다!”(수 3:16). 갈라진 바다를 확인하고 안심하고 건넌 홍해 길을, 죽는 줄 알고 그냥 들어갔다가 이런 기막힌 현장을 경험하는 스릴 넘치는 이 길에 비교할 수 있을까요? 만들어진 기적을 누리는 길과, 기적을 만들며 가는 길을 어떻게 같은 차원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안전하고 편안하고 남보다 나은 생활을 보장 받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안전보장이 아니라, 위험하고 힘든 길을 내질러 가는 모험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인가가 너무 분명하여, 그분을 믿고 하늘 끝까지 올라가보고 싶고, 그분을 의지하고 땅 끝까지 나아가보고 싶은 모험입니다. 그리하여 벼랑 끝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넘실거리는 요단강 한복판에서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확인하는 스릴 넘치고, 감격 넘치는 모험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홍해 가에 있기를 바라고, 요단강 가에 서기를 두려워합니다. 홍해 가에 서서 지팡이의 기적을 학수고대할 뿐, 목숨을 담보로 한 믿음으로 출렁이는 요단에 들어서기는 싫어합니다.
홍해와 요단강 사이에는 광야라는 삶의 현장과 그 현장을 살아내는 40년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그리고 그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이들은 하나님을 알아갔습니다. 평생 홍해 가에 서 있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곳은 드디어 광야라 불리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 그리고 40년이라는 구체적인 세월을 살아내야 하는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란 열심히 기도하고, 힘에 지나도록 헌신을 드려서 힘든 현실을 빨리 벗어나거나, 고통의 현장을 면하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구체적인 현실, 그리고 계속되는 그 세월을 걸머지고 낑낑대고 울고 신음하고 때로는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때로는 따져 묻기도 하면서 점점 그곳에서도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며 은혜를 이루어 가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어 증거하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그만큼 신뢰하기 때문에 겁 없이 우리를 벼랑 끝에 세우는 행위입니다. 생명을 위협하며 넘실거리는 요단강을 원망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드러낼 기회로 알고 그냥 걸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꺼이 자신을 벼랑 끝에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 만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그 분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 외에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외에 모든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새해에 한국교회 지도자들 그리고 신자들이 가장 힘써야 할 일은 하나님을 그렇게 신뢰하기 때문에 기꺼이 벼랑 끝에 서는 신앙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