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의 ‘만종’_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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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만종’

박종훈/ 궁산교회 목사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의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 지금의 직업을 열
매로 본다면, 이전에 마음에 씨를 심어서 때가 되어 잎이 나고 꽃이 피어 열
매를 맺은 것이다. 이 씨를 마음에 품은 것은 어린 시절이다. 많은 가능성을 
가진 어린이들에게는 보고 듣고 느끼는 다양한 체험들이 꿈의 씨앗이 된다. 
오늘의 내 길을 가면서 가끔 스스로를 돌이켜보곤 한다. 목회자로, 그리고 소
외된 농촌교회를 섬기는 오늘의 내 모습이 있기까지는 어린 시절에 마음에 이
미 씨를 심었던 것이었다.

내 고향은 면소재지에서도 한참 떨어진 오지였고 교회와는 전혀 거리가 먼 곳
이었다. 방학 중에 한두 번 같은 또래들과 어울려 호기심으로 여름성경학교
에 나간 기억밖에 없었다. 어른이 된 내가 목회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잘 믿어
지지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이 길을 걸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였다. 전혀 꿈
꾸지 않았던 길이지만 그래도 내 마음에 씨앗이 뿌려졌던 것은, 이제 와서 생
각하
니 한 편의 그림이었다. 

밀레의 ‘만종’을 어디서 처음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느낌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노을이 지는 들판에서 부부가 모자를 벗고 감사기도를 
드리는 모습은 당시에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어른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
어온 한결같은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야, 공부 열심히 해서 우리처럼 땅 파먹고 살지 말고 도시에서 잘 살아
야 한다.”

우리들은 이 말을 들으면서 농사일은 천하고 못 배운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그림은 그 동안의 생각을 바뀌게 하였다. 천하
고 힘들게만 여겼던 농사일을 참으로 아름답게 그린 그 그림을 보며 조상 대
대로 내려온 농사일을 새로이 보게 되었다. 

또한 은은한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감사기도 하는 그 모습은 나로 하여금 종
교에 눈을 뜨게 하였고, 어느 날 면소재지에서 들려오는 차임벨 소리가 내 마
음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조금씩 오랜 시간을 두고 예배당을 만들어가면서도 아직 교회의 상징인 종탑
을 세우지 못했다
.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매만지는 그런 종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도시에서는 주일마다 들려오던 종소리가 소음규제의 
법에 저촉되어 사라진 지가 오래되었다. 이는 실제의 종소리가 아닌 확성기
를 통해 나오는 차임벨 소리가 그 대상이다. 

조 장로님은 유럽을 방문하는 중에 우연히 청동 종소리의 맑고 청아한 소리
에 깊은 감동을 받아 한국에서 종달기 운동을 하게 됐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관광차원으로 국가에서 교회종의 관리보수를 적극 지원한다고 한다. 현재 한
국에도 백여 교회가 종을 가지고 있으나 앞으로 5,000 교회에 종을 달면 전
국 어디에서든 이 종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이 운동을 하고 있
다. 

작년에 영동의 어느 교회를 방문했을 때 실제의 종소리를 듣게 되었다. 예전
에 듣던 종소리는 둔탁하고 노인의 소리라면 이 청동종은 아주 맑은 어린이
의 소리 같았다. 삶에 지친 영혼들에게 시원한 청량제(淸凉劑)요, 방황하는 
탕자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되길 바라는 맘이다. 언제가 될지 모
르지만 그 날을 기다리며 종탑을 준비하련다. 
이 마을의 저수지에 와서 고기를 낚는 
낚시꾼들에게는 사람을 낚는 어부역할
을 감당하는 종소리가 되길 원한다. 영원히 이 땅에서 살 것처럼 땅의 것만 
바라보는 영혼들에게 하늘을 바라보며 영원을 사모하는 본능이 되살아나는 종
소리가 되길 원한다. 

내 꿈을 꾸도록 한 ‘만종’을 예배당에 걸어놓고 나처럼 꿈꾸는 아이를 찾고
자 한다. 
누군가는 이 농촌을 이어가야 하기에.
오늘도 마음속에 그 소리가 들려온다. 
땡그렁 땡, 땡그렁 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