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이신 하나님_ 송영찬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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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처이신 하나님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시 11:4)라는 시인의 
선포는 결코 위협이나 협박이 아니다. 이것은 실제이다. 하나님은 지상의 보
좌인 성전에서 친히 그 백성을 돌보시는 분이시다. 뿐만 아니라 하늘의 보좌
에서 친히 역사를 경영하신다. 

하나님의 통치는 완벽하여서 의인의 길을 보실 뿐만 아니라 악인의 행악을 
일일이 지켜보신다. 하나님은 현미경으로 보는 것처럼 인생들이 허사를 경영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세하게 알고 계신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눈은 마치 악
인들을 찾기 위해 부릅뜨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아무도 여호와의 눈
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그러나 의인에게는 피난처가 있다. 곧 여호와의 품이 그 피난처이다. 시인
은 의인에게 악인을 피해 새 같이 산으로 도망하라고 종용한다. 적어도 의인
은 한 순간일지라도 악인의 불화살을 
피해 산 속에 있는 깊은 토굴에라도 숨
을 곳이 있다. 반면에 악인이 숨을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들에게는 훤
히 들여다보이는 철장에 갇혀 있는 새처럼 산으로 도망할 기회조차 주어지
지 않았다.

오히려 의인은 여호와의 ‘감찰’을 받고 있다. 이 단어는 시험하다, 분석하
다, 실험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 단어가 의인에게는 마치 금속을 
재련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마치 풀무불에 녹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정금을 
얻기 위한 과정처럼 묘사된다.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를 시험하시는 것은 정
화를 그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악인에게 이 단어는 심판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미 불화살을 잰 활
을 들고 활시위를 놓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여호와의 심판의 용도로 감찰하
시는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은 우주적으로 볼 때 악을 제거하기 위
한 정화의 과정이지만 제거의 대상인 악인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심판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하나님의 품이 아닌 다른 곳으로 피난처를 삼고자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저버린 것과 다를 바 없다. 반면에 하나님의 품으로 피난처를 삼는다면 하나
님의 얼굴을 
보게 되는 영광도 누리게 된다. 아무리 우리가 이 세상에서 힘
들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
는 이 땅에서 이미 충분히 위로와 보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