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교회를 사랑한다면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하나님의 새 창조와 관련해 바울은 인간 실존의 몇 가지 현실, 즉 고난(고
후 4:7-18), 죽음과 심판(고후 5:1-9)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이것들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보편적인 실재들이다. 이러한 주제들을 다룸으로
써 바울은 자신이 경험한 사형 선고와 같은 심정의 고통(고후 1:8-10)을 통
해 이 땅에 살고 있는 신자들의 삶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추구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이 전파한 복음은 새 역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새 창조를
이루시기 위해 사도들에게 위임한 특권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 새 창조는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취하신 것처럼 사도들 역시 그리스도와
같이 죽음의 과정을 통해 교회가 생명을 얻는 것으로 구현된다는 점을 강조
하고 있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
후 4:12)는 고백처럼 죽음을 상징하는 사도의 고난은 성도들의 부활을 상징
하는 생
명을 위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고린도에 온 거짓 선생들은 고난과 죽
음과 심판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로지 능력에 대한 관심뿐이
었다. 그러나 의와 성령의 새 언약에서는 성도들이 고난과 죽음과 심판과 같
은 곤경에 처해 있는 그 순간에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 주신다.
예수님의 죽음은 교회의 성도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다. 마찬가지로 사
역을 하는 사람들의 사망은 비유적으로 말해서 성도들을 위한 생명의 수단이
다. 이런 이유에서 바울은 생명이 고린도 교인들 안에서 역사하도록 하기 위
해 자기 안에서 사망이 역사한다고 말하고 자신은 기꺼이 희생적인 생활을
통해 새 언약의 직분을 수행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그 결과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는 사람들이 점차
더 많이 복음을 통해 회심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표명하며 그로 인해 하나님
을 영화롭게 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이것이 거짓 선생과 참된 사역자의 다
른 점이다.
바울이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진정으로 발휘된다는 사실(고
후 4:7)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고난을 통해 교회가 더 든든히
서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복음 전파를 위해 아무런 고난조차 받으
려 하지 않는 우리가 과연 교회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