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유일한 원인자이신 하나님

0
20

유일한 원인자이신 하나님

김영규 목사
·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아무리 잔인한 죄인일지라도 그를 용서해 주고 용납해 줄 수 있는 사회가 좋
은 사회이다. 미국사회는 지금 남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배워야 할 것이
다. 

죄인일지라도 용서해야

뇌에서의 세로토닌의 감소라는 공통된 현상으로서 과식하는 것, 의심이 종
종 증가하는 것, 의기소침에서부터 우울증, 충동적인 행동, 공격성, 알코올 
오용, 폭력과 살인이 가깝게 손을 맞잡고 있다는 사실을 더 잘 알고 있다면 
그런 사실들을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다이어트를 추구하는 사회 자체가 그런 환자들을 양성시키는 배경이 됨을 기
억해야 할 것이다. 이미 죽음 자체가 우리가 얼마나 실로 큰 죄인임을 증거
하는 증인으로 있는 것처럼, 악행이나 살인도 우리 인간이 얼마나 큰 죄인인
지를 증거하는 증인으로서 우리 앞에 있다. 
하나님 없이 스스로 선과 생명을 산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결점이 

n바로 죄의 근원이라면, 가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것처럼, 인간에
게는 죄의 소원이 있고 선을 행하지 않은 동안 그 죄가 그에게 누워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의 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기 전에 자신 안에 핑계할 수 없는 
증거를 쌓고 있고 인간이 아우성치기 전에 피의 소리가 땅으로부터 소리지르
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먼저 들으시고 계신다. 죄란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으로 삼고 있지 않는 자들이 필연적으로 얻게 되는 죽음의 형벌의 첫 징조
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죄는 하나님의 형벌의 원인은 될지라도 
유기의 원인은 아니다. 
생명과 선, 죽음과 악처럼 죄도 긴 시간을 통해서 선을 이루시기 위한 수단
들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앞에 두셨다(신 30:15). 그런 수단들은 인간에
게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고귀한 가치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서의 패배는 바로 똑같이 죄인이 되는 것이 패배이다. 
하나님은 가인과 같은 죄인일지라도 그를 아직도 사랑하셨다. 근원적 원인
은 아니지만(신 29:29) 하나님의 모든 역사의 유효적 원인은 하나님의 자비
와 사랑이
시다. 그런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 인간이 배워 가는 목표점이다. 
인간이 죄를 짓고 스스로 자살하였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아직 그의 영혼을 
죽이신 것은 아니다. 자살은 아직 육체와 영혼을 분리시키는 어떤 죽음의 형
벌일 뿐이다. 
모든 유기자들이나 사탄의 활동, 죽음과 지옥은 아직 존재로 소멸되기 전까
지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 하나님의 속
성들을 드러내기 위해서 아직도 감추어진 하나님의 역사의 수단들로 존재하
고 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마지막 진노란 존재로부터 무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더 이상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 없다. 명하매 존재
한 피조물들이 그런 하나님을 향하여 불의가 있다고 비난할 수 없다. 
이런 문맥에서 성경과 개혁신학의 고백에는 예정론이 있다. 개혁신학은 선교
에 방해가 되고 거기에는 선교론이 없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또
한 기도에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런 비난은 성경에서 가
르치고 있는 구원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어떤 오해에 기인한다. 
오히려 예정론 자체가 선교론이고 그런 예정론에 있어서 전도의 
대상이 너
무 넓기 때문에 선교론이 없다는 것이 더 타당할지 모른다. 그렇게 넓은 이
유는 예정론 안에서 법이나 의식, 믿음이나 견인 등 인간 안에 아무 것도 고
려하지 않은 오직 하나님의 자유로운 기뻐하신 의지에만 구원의 원인이 있다
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예정 이전에 예지를 강조하여 믿음을 고려한 예정을 
말하고 믿음과 견인을 고려한 예정을 강조하여 실제적으로 믿는 행위 이전에
나 견인 이전에는 구원에 이르는 일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가 구원의 근본적 원인이 되었을 때 거기에 아무 것
도 고려하지 않았거나 고려했다면 죄 정도만을 고려하여 죄인들 중에 어떤 
이들을 택하셨다는 예정론은 성경에 증거되어 있는 것을 침묵하지 않으려는 
노력일 뿐이다. 그런 예정론은 누가 믿을지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 외에 아
무도 모른다는 의미에서 강조하고 있다. 

더욱 하나님 의지할 뿐

인간의 자유의지나 소위 책임들은 구원의 먼 원인과 관련된 하나님 안에만 
정보로 있는 그런 예정론과 거리가 너무 멀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많은 은혜들을 스스
로 받도록 하시는 창조의 특별한 형식에 불과하
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 개인이 믿는 일이나 거룩하게 생활하는 것조차도 이미 그런 예정
의 결과요 열매에 불과함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런 일을 함이 없이 하
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살고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감사의 생활을 행하
게 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어 가시는 어떤 어려움에도 견디며 오히려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만 의뢰하는 더 철저히 기도하기 위한 것임을 기억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