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는 이 시대의 ‘선각자’여야_송영찬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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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는 이 시대의 ‘선각자’여야

송영찬 국장

한 시대를 살아감에 있어 그 시대를 이끌어 가는 선각자가 있다는 것은 참으
로 반가운 일이다. 요즘같이 상류 5% 사회가 전체 부의 60%를 차지하고 자신
들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물질적 갈등을 자아내는 시대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
런 때일수록 신선한 옹달샘 같은 선각자야말로 마치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히
브리인들이 소망하던 하나님의 메신저인 모세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우리 시대의 특성은 무엇보다도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는 것으로 대변된다. 
부의 축적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대부분의 필요를 충족시켜 준다. 물질
의 풍요로움이 없다면 값비싼 문화 예술조차 누릴 수 없다. 세계가 열광하는 
월드컵을 비롯해 각종 스포츠 세계에서도 물질의 풍요로움이 뒷받침되어야 
할 정도이다. 이런 현상은 부패한 인류 역사가 한결같이 추구해 왔던 가장 고
질적인 질병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기 시작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
고 죽음 앞에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운영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가인이 아벨을 살해하고 자신만을 위한 삶의 터전을 공고히 하
기 위하여 ‘성’을 쌓기 시작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가인은 죽음 앞에 놓여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한 공포심을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 대신하고자 한 것이
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불가사의한 마야 문명과 잉카 문명의 멸망 역시 과도한 
부의 축적을 그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잘 알고 있는 로마 시대의 풍요로움
이 결국 로마를 병들게 했고 급기야 몰락의 길을 가게 만들었다. 그들 세계에
서도 종교가 있었고 종교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그 종교지도자들은 부를 축적
하는 것 이상에 대해선 아무런 길을 제시하지 않았다. 종교 지도자들이 한결
같이 부의 축적을 위해 축복하고 있는 동안 그 시대는 병들고 몰락해 가고 있
었던 것이다. 

진정한 목회자라면 물질의 풍요로움을 축복하기에 앞서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
계 회복에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사실 죽음을 앞에 둔 상태에서 주어지
는 그 어떤 축복이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사실을 보지
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 사람들이 목회를 하고 있다면 참으로 이 시대는 죽음을 향해 
치닫는 불행한 시대가 되고 말 것이다. 진정한 풍요로움은 영적 회복 이후에 
따라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