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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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송영찬목사

처음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 땅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모
든 것을 소유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다. 아담이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아담의 통치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 선악을 알
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을 수 없도록 하셨다. 그런데 아담은 그
만 이 금단의 열매를 탐하고 말았다. 그 외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는 아담이 금단의 열매까지도 탐했다는 것은 사탄의 속임처럼 “하
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이유”였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마에서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셨다. 그 이후 인간은 질곡의 생활 전선에서 하나님을 향
한 구도의 길을 걸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 많은 특혜를 박탈당하고
땀흘리며 살아야 하는 인생은 이처럼 죄의 대가를 철저하게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
해서 죄의 형벌에서 놓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따라서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
서 주어진다. 반면 죄의 결과로 인해 사람은 한
평생동안 땀흘리며 생존을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일생동안 지고 가야하는 짐인 것이다.
그렇다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그
리고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은혜로 주
신 기회이기 때문이다. 단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부를 많이 축적해서 여생을 편히 살기 위함이 아니다. 오로
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맡겨진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 하나
의 수단으로 주신 것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부를 축적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부에 대한 성도와 세상 사람들과의 가치관의 차이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생의 가치관은 이 세상에 둘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악착같이 일함으로써 어떻게든지 죄의 형벌에
서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 정도를 벗어나 편법을 써서라도 부를 축
적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부정부패가

을 친다. 구조악이나 사회악이 끊임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데 그 목적이 여생을 일하지 않고 편히 살고자 하는데 있다는 점이
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일하고 살도록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일하
지 않고 살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꿈인지 그들은 말해도 알
아듣지 못한다.
문제는 성도들까지도 그들과 같은 잣대를 가지고 어떻게든지 여
생을 편히 살아보자고 그들이 만든 경쟁의 대열에 서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치관은 이 세상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해야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