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주저앉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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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주저앉고 말 것인가?

한국 개신교 선교 100주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1979년, 당시 예장합동
64회 총회는 미리 예견된 대로 주류와 비주류로 분열되는 양극단의 길을 선
택하고 말았다. 오랜 교권의 횡포와 총신이사회의 학원 장악에 대항하는 학
생들과 교수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양측은 각기 다른 길을 선택하고 만 것
이다. 그 와중에서 양측의 화합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했던 중립 세력은 한국
교회가 더 이상 교권에 유린되어서는 안 된다고 결의하고 1981년 제66회 총
회를 소집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 교단이 탄생한 것이
다.
개혁 교단은 무엇보다도 먼저 신학교의 정상화에 온 힘을 쏟았다. 고 박
윤선 박사를 위시하여 대부분 뜻 있는 총신 교수들이 사표를 내고 다시 뭉
친 곳이 서울 반포의 남서울 교회의 지하실이었다. 합동신학교가 시작된 것
이다. 우리 교단은 학원의 정상화와 교권주의 배제를 제 1 목표로 삼고 온
성도들이 심혈을 기울여 6년만에 
수원 원천동 현 위치에 합신 교정을 마련
하기까지 했다. 그 때 가졌던 교단 지도자들, 합신 교수들과 재학생들, 교단
소속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개혁에 대한 정렬은 한국 교회의 소망으로 찬란
하게 빛을 발하였다. 그 열망은 지금도 꺼지지 않아 우리 교단과 합신에 대
한 기대감은 여전히 한국 교회의 희망으로 살아 남아 있다.
각 교회마다, 각 성도마다 힘을 다해 오늘의 합신을 일구어 낸 일은 우리
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교단 출범 20여년 만에 50여 가정의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우리의 보람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교
단이 이처럼 큰 일을 해 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이 땅에 바른 교회
가 서 가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모두가 한 뜻
을 가지고 장차 한국 교회를 짊어지고 나갈 개혁의 역군으로서의 유능한 교
회 일군을 키워내기 위한 전국 교회 성도들의 기도의 힘이아닐 수 없다. 무
엇보다도 합신을 일구어내야 한다는 교단적 총화가 가져다 준 열매인 것이
다. 그 결과 오늘날 1천명이 넘는 목회자를 배출하게 되었고 적지 않은 해외
선교사까지 파송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단 기간 내에 교단이 힘을 모아 한
국교회사를 새롭게 장식한 우리의 저력은 어디에 내놓고 자랑해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단 출범 당시 자칫 우리 교단이 하나의 군소 교단으로 전락할
지 모른다는 소수지만 몇 사람들의 염려를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일깨우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최근 들어 국가 경제적으로 위기가 있었다 할지라도
우리 교단의 응집력이 많이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합신의 재정과 선
교사들의 후원, 그리고 농어촌교회와 개척교회 후원이 예전만 같지 못하다는
점에서 얼른 읽을 수 있다.
우리 교단이 한국교회의 소망을 한 몸에 안고 역사 앞에 서있다는 사실
을 벌써 잊어버리진 않았을 것이다. 단지 외부의 경제적 여건이 원만하지 않
은 일시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 이제 서서히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잠시 숨을 돌리는 것은 더 많은 약진을 위한 몸트림이지 않은가? 우리가 힘
써 개혁 교단을 사랑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다시 힘을 모을 때가 이르렀다.
이대로 주저 앉아버린다는 것은 그동안 애써 닦아왔던 교단의 위상을 스스
로 3류 집단으로 전락하
는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오고야 말 것이다.
개혁 교단이여! 다시 일어나라! 개혁의 힘찬 날개를 다시 한번 활짝 펴나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