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특집 _ 주제논단
낙태죄 위헌 판결 논단<2>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낙태죄 위헌 판결에 대하여
<정두섭 목사 _ 전주 소망교회>
하나님이 경고하시고, 역사가 증명하듯 성적인
타락과 방종은 개인과 가정과 나라를 망하게 한다
진리는 다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과 소금과
선지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신 중에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말했다. “여기서 떠나십시오. 헤롯왕이 당신을 죽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전하기를 ‘보아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칠 것이요,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끝낸다’ 하여라.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겠다. 선지자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보아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림을 받을 것이다.” 이 내용은 누가복음 13장에 기록되었으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라고 탄식하신 배경이다.
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를 7:2로 헌법에 위배되거나 불합치하다고 선고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나라를 향하여 ‘한국아, 한국아!’하시면서 탄식하실만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1905년 일본의 흉계에 의해 굴욕적인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 선생은 그해 11월 20일 “시일야방성대곡” – ‘오늘에 이르러 목 놓아 통곡한다.’는 논설을 썼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방성대곡할 일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점을 당한 것은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라 힘이 없고, 군사력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낙태는 인간 스스로 하는 것이다. 성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에게 주신 가장 내밀하고, 생명을 잉태케 하는 성스러운 것이다. 태아는 인간 생명의 근원이며, 본질이다. 그 원초적으로 성스러운 성을 부부관계를 떠나 쾌락의 도구로 전락시키거나, 성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파괴하는 것이며, 성관계를 통해 잉태된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가장 지켜 주고 보호해야 할 부모나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낙태시키는 행위는 인간의 본질적인 죄악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통곡하신 배경을 통해 오늘의 심각한 문제를 진단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교훈을 성찰하고자 한다.
- 가축에게 자비를 베풀면서 사람에게 악행하는 인간의 이중성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사람들이 가축에게도 자비를 베풀면서 왜 안식이라는 율법으로 사람을 얽매며, 바른 말을 하는 선지자를 죽이려하는 가에 대해 질타하셨다.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눅 13:15). 요즘 동물복지와 그 권리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동물을 학대하면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하물며 태아를 함부로 학대하고 죽이는 것은 얼마나 모순되고, 위선적인가? 예수님도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다. 동물은 적어도 성폭행을 하지 않으며, 동물의 모성 본능은 자기 새끼를 끔찍이 사랑하고 보호한다. 그래서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9-10)라고 지적하였다.
- 갈릴리 사람들보다 더욱 악한 예루살렘 사람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바로 그 때에 몇몇 사람이 와서, 갈릴리에서 발생한 끔찍한 소식을 예수님께 전했다. “예수님, 빌라도 총독이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우상에게 바치려던 제물에 섞어 제사를 지냈습니다.” 참으로 끔직하고 충격적인 학살이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그렇게 많은 거름을 주었음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찍어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낙태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갈릴리 서민들보다 예루살렘에 사는 힘 있고 풍요롭게 사는 사람들이 더 크고 많은 죄를 짓는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오늘날 가난하고, 살기 어려운 나라에서는 낙태를 잘 하지 않는다. 이슬람교에서는 절대 금한다. 자녀들을 얼마나 많이 낳는지 놀랍다. 그러나 사람들이 먹고 살만한 나라, 기독교의 복음이 들어와 경제적으로 부요한 나라들에서 성에 대한 금기사항을 깨뜨리기 시작했다(눅 13:26-27 참조). 간통죄를 폐지하고,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낙태를 허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기독교의 복음이 들어온 다음 경제의 기적이 일어났다. 그런데 여기에 편승해서 먹고 살만하니까 간통죄를 없애고, 동성애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으며, 결혼을 기피하거나 늦추고, 자녀를 잘 낳지 않으려고 하며, 대신 성적 쾌락을 추구하고, 거기에 따르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됨으로 낙태를 합법화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경고하시고, 인류 역사가 증명하듯이 성적인 타락과 방종은 개인과 가정과 나라를 망하게 한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라고 거듭 경고하셨다. 그렇게 많은 거름을 주었음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찍어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 불쌍한 여인을 치료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말씀하신 후에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그런데 바로 앞에 18년 동안 허리가 굽어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에게 손을 얹고 병을 고쳐주셨다. 그러자 그 여자는 곧 허리를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것에 분개하여 무리에게 말했다. “일을 해야 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엿새 가운데서 어느 날에든지 와서, 고침을 받으시오. 그러나 안식일에는 그렇게 하지 마시오.”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끌고 나가서 물을 먹이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18년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이 매임을 풀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허리가 고장 나면 힘을 쓸 수가 없다. 이 여인은 오래 병마에 시달렸기에 온갖 고통과 설움을 삼키고, 결혼도, 가정도 가질 수 없는 가련한 여인이었다. 이 여인은 오늘날 가난하고, 나약하고, 몸과 마음이 병들고, 고통하고 신음하는 여성을 대변한다고 하겠다. 여성으로서 가장 치명적인 고통은 사악한 남자로부터 성적으로 폭행을 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불안 중의 하나는 임신한 아이의 건강이다. 그래서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성폭행을 당하여 원치 않는 임신을 하였거나, 임신한 여성이 태아로 인하여 생명이 위기에 처할 경우 등에 대해 최소한의 엄격한 낙태 허용규정이 있다. 문제는 성폭행을 당하여 임신을 하였거나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여 출산하였을 때 그들을 정죄하고 비난하기보다, 사회적으로 보호해 주고, 그리고 국가적으로 산모와 아이를 책임지고 보살펴서 그들 모두를 살릴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 참 선지자를 죽이는 세상은 망함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여쭈었다.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습니까?” 예수님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답하셨다. 진리는 다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다. 우리가 태아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할 명백한 성경 진리가 있다(시 139:13-19 참조).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바로 선지자인데, 거짓 선지자들과 민중들에게 야합하는 헤롯왕을 가리켜 주님은 여우와 같이 간교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선지자는 비록 고난과 비난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죽이는 왕이나 집안이나 나라는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고 주님은 경고하셨다.
헌법재판관은 우리나라의 최고의 법률인 헌법을 해석하고, 그 해석에 따라 판결하고, 선포하는 우리나라의 최고의 선지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7:2로 낙태죄를 헌법에 위배되거나 불합치하다고 판결하였고, 다수의 의견으로 결정하였다. 하여 결과적으로 낙태죄는 위헌이라고 판단한 2명의 헌법재판관의 의견은 묵살되었고, 다수의 주장으로 그들을 죽인 것 같이 되었다.
당시 헌법재판관들은 현 정부가 임명한 6명과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1명이 낙태죄를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에 가표를 던졌다. 반면에 보수 성향인 2명만이 낙태죄를 합헌이라는 의견을 냈다. 현재 헌법재판관들의 성향은 진보 6명, 중도 2명, 보수 1명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진보성향을 가진 다수가 거의 절대적으로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진보 이념을 가진 사람들은 특히 성 문제에 있어 대부분 성경의 진리에 반대하기 때문에 참으로 심각하여 앞으로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심히 걱정이다. 존귀한 인간의 생명이 이념에 따라서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진리에 거스르는 이 시대의 조류에 영합하여 낙태죄를 헌법불합치라고 판결한 것이다.
이번에 조용호, 이종석 헌법재판관이 낙태죄가 합헌이라고 낸 의견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은 이전보다 더욱 분명하고 강하게 낙태가 합헌이라고 판단하였다. 그 중요한 내용은 이렇다. “지금 우리가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한 위헌, 합헌 논의를 할 수 있는 것도 우리 모두 모체로부터 낙태 당하지 않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태아였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는 헌법 10조와 함께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고유한 가치를 가지며,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 “임신한 여성의 관점에서 볼 때 태아는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니다. 인간으로서 형성돼 가는 단계의 생명으로서 인간의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태아는 다른 누구로 대체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인격체로 발전할 수 있는 자연적인 성장의 잠재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출생 전 생성 중인 생명이 헌법상 생명권의 보호대상에서 제외된다면, 이는 생명권의 보호가 불완전한 것에 그치게 된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근본적으로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낙태는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에 어긋나는 생명침해행위”이다.
“임신한 여성에게 신체의 자유 또는 자기결정권을 주기 위해 태아의 생명권을 희생하는 것은 동등한 배려를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이다. “태아는 인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소중하고, 국가는 이를 보호해야 하는 정당한 공익이 있다.” “태아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행위는 우리 헌법질서가 받아들일 수 없으며,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보호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수호한다는 규범적 목표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또한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서도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기반한 제네바 선언을 사례로 들며 정당하다고 하였다. 다수의견에 대해서는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따른 낙태의 허용은 결국 임신한 여성의 편의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라며 “이를 허용할 경우 현실적으로 낙태의 전면 허용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해 일반적인 생명경시 풍조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현재 임신한 여성은 모성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며 “국가는 낙태를 형사 처벌하는 외에 미혼부 등 남성의 책임을 강화하는 ‘양육책임법’ 제정,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안정망 구축, 여성이 부담 없이 임신·출산·양육할 수 있는 모성보호정책, 임신한 부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육아시설의 확충 등 낙태를 선택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탄식하시고 죽으신 이유
예수님은 당신을 죽이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시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라고 탄식하시면서 의연하게 예루살렘으로 나아가셨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헤롯대왕은 베들레헴에 있는 유아들을 대학살하였다. 그리고 헤롯 안디바는 예수님을 죽이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을 떠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쾌락과 자랑을 위해 사탄에게 종노릇하며 멸망당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예수님은 알지 못하여 한 때 무지하고, 무모하게 죄를 지은 사람들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다 쏟아주셨다. 태아에게 잘못한 죄까지도 다 용서하여 주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다신 죄를 짓지 않고, 그와 같은 죄를 짓는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성의 순결과 결혼의 신성함과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도록 해야 하겠다.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지금 왜 세계가, 그리고 동방예의의 나라로 일컬었던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갈까? 사도 바울이 ‘말세에 고통하는 때인 것을 알라‘(딤후 3:1-6)고 경고한 대로 지금 말세의 끝이 다가왔다는 징조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이전보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눅 13:25-26)고 말씀하셨다. 앞으로 세상은 더 악한 일을 많이 하게 될 것이며, 낙태죄를 폐지하게 되면 이어서 봇물처럼 하나님의 진리에 위반되는 법을 만들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눅 13:29-30)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에서 ‘언플랜드(Unplanned)’라는 놀라운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텍사스 소재 ‘가족계획클리닉’ 책임자로서 낙태운동에 앞장섰던 애비 존슨이 실제 낙태 과정을 지켜본 뒤 낙태반대론자로 변신하는 과정과 이후 낙태반대 활동을 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가족계획클리닉’이 낸 2017-2018년 자체 보고서에 따르면, 이 조직은 미국 최대 낙태 시술 기관으로, 매년 33만 건 이상의 낙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상영되면서 미국 전역에서 국가적, 지역적으로 낙태반대운동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두 번째 연방 대법관을 임명해 대법원의 균형이 5대 4로 보수화됨에 따라 낙태 이슈가 더욱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공화당 강세의 9개 주가 낙태를 제한하는 법안을 진행 중입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임기 첫해 미국 전역 19개 주에서 낙태를 규제하는 법률 63건이 통과됐고, 트럼프 임기 첫 반년 동안 전미 각 주에서 낙태를 규제하는 규정이 431건 나왔다. 그리고 2018년 1분기에 37개 주에서 낙태 제한 규정 308개가 통과된 것이다.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소망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법률이 신앙과 모든 행위에 대하여 정확하고 오류가 없는 성경에 의해 제정되고,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갖는 재판관들이 세워져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바로 세워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고, 한국교회가 세상을 향한 선지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 이 글의 성경구절은 주로 새번역 성경을 인용하였다. – 필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