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석의 북카페
시내산 미스터리를 벗기다
떨기나무
김승학 지음|두란노|408쪽|2007년
“지금의 시내산은 진짜 시내산이 아닙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성경 고고학자도 아니요 전문 탐사가도 아닌 한
주치의가 그런 주장을 하다니 고고학적 주장이란 픽션을 쓰는 거나 다름없다
는 생각이 앞서 그런 말을 그냥 무시할까도 해봤다. 그래도 탐사자의 경력
이 퍽 남다르고 또 그가 학교에 가져온 몇 가지 유물들을 둘러보고 나자 생
각은 좀 바뀌었다.
남다른 자료 보고 관심 쏠려
그 날 이 책을 사서 벼락같이 읽었다. 지구 한 바퀴와 맞먹는 탐사 여행,
그 수치만으로도 놀랄만한 거리다. <떨기나무>를 쓴 김승학 씨와 그의 다섯
식구가 이 여행기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틈만 나면 북부 사우디아라비아
를 탐사한다. 칠 년 동안에 그곳을 열두 차례나 탐사함으로써 그는 왕자의
주치의라는 직책에 미디안 탐사
전문가라는 이력도 하나 더 보탠다.
중동 붐이 한창 일던 팔십 년대 1987년에 청년 김승학은 침술 의료인으로 사
우디에 돈 벌러 나간다. 그렇게 수년이 흘렀고 마침내 그의 영험한 침술 소
문은 메카 주지사인 마지드 왕자의 귀에까지 전해지게 된다. 당시 목 디스크
를 심히 앓고 있던 왕자는 하찮아 보일 수 있는 침술로 신통한 효험을 본
다. 이를 계기로 하여 그는 왕자의 주치의로 들어가 화려한 상류 사회와 교
류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이런 영광의 세월로도 자신의 영혼을 채울 수
없는 공간 하나쯤은 텅 비어 있는 법이다.
2000년에 잠시 조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부친께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접한
다. “어떤 분한테서 이 테이프를 입수했다. 이 테이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미디안 땅에 있는 어떤 산이 진짜 시내산이라고 하는데, 아주 성경적이더구
나. 네가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에 살고 있으니, 있는 동안에 네가 기도하면
서 사실을 확인해 보면 좋겠다.” 그 비디오테이프는 탐험가 론 와트와 그
의 아들이 몰래 미디안에 잠입하여 찍은 <디스커버리>였다.
부친의 부탁은 그의 마음에 비수처럼 꽂혔다. 준비를 꼼꼼히 하고서 2001년
3월에 첫 탐사를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탐사는 귀국하기 바로 전인 2006
년 7월까지 계속 이어진다. 그는 탐사를 다 마치고 다음의 주장을 편다. 시
나이 반도의 시내산은 진짜 시내산이 아닙니다. 그 근거로는 아홉 가지 이유
가 있습니다. 진짜 시내산은 미디안 광야, 즉 오늘날의 북부 사우디아라비아
에 있습니다. 그 근거로는 여덟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러한 확신에 들이댈 고고학적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그는 죽을 고비도 넘
기며 이 지역을 두루두루 답사한다. 사진으로 찍고 수많은 자료들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으며, 또 유물들을 직접 채취도 하고 수집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의 광야생활 40년 흔적이 미디안 지천에 널려 있다고 확신한
다.
사우디는 우리와는 영 딴판인 나라다. 자국민이라도 여행증명서가 없으면 마
음대로 어디나 다닐 수 없는 나라다. 여행의 자유가 극히 제한된 국가다. 이
런 나라에서 남다른 외적 조건이 그에게 없었더라면 북부 사우디 탐사는 불
가능했을 게 분명하다. 그 조건들을 열거해 보면 이렇다.
왕자의 주치의라는 신분, 왕자가 하사한 자동차에 고위층이나 달 수 있는 특
별 번
호판을 부착한 것, 왕자의 이름으로 등록된 자동차 등록증, 왕자의 여
행허가증명서, 유창한 아랍어 구사 능력, 이슬람의 문화에 아주 익숙한 점.
아무나 쉽게 갖출 수 있는 조건들이 아니다. 이런 조건들을 선용한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따져볼 게 있다. 시내산 역사 왜곡은 왜 일어난 것인
가. 그것은 로마 교황청의 정치적 해결의 소산으로 보인다. AD 527년 교황청
은 시내산을 순례하고자 하는 순례객들의 성화에 못 이겨 시나이 반도의 무
사산 북서쪽에 캐더린 수도원을 세우고 그곳을 시내산이라 명명했다는 것이
다.
학계의 이러한 주장이 옳다면 시내산 왜곡은 순례객의 종교적 감정의 과잉
배출을 해소시켜 주려 한 교황청의 선의적 해결책 정도로 보인다. 그럴지라
도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장소나 건물을 성스럽게 보려는 인간의 종교적 욕
망과 교회의 정치적 해결이 합작해 낸 역사 왜곡이라는 오명은 씻을 길 없
다.
역사 왜곡 오명 씻을 길 찾아야
이제 먼발치서 세계 성서 고고학계에 한국인의 이름과 업적이 기록될 날을
기대해 본다. 시내산 여행 경비를 절감하시려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
책
을 꼭 한 번 읽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