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는 재주는 있으니까…”
이재헌 목사_대구 동흥교회
자신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경우 많아
경상도에 있는 어느 목사님에게 서울에 있는 큰 교회에서 청빙이 왔다. 사모
님이 염려가 되어 목사에게 말했다. “여보, 우짤라요? 서울로 갈낀교?” 말
이 떨어지기 무섭게 목사님의 대답에는 힘이 있었다. “기도해 보입시다. 하
나님의 뜻이면 갈 수도 있겠지머!”
서울 교회 청빙 받은 목사님
사모님이 염려스런 표정으로 반문하였다. “아이가, 생각이 좀 있는가베.
그 교회는요 날고뛰는 사람도 안 된다 카든데, 우리가 가서 될 끼라고…?”
약간 자존심이 상한 목사님의 목소리는 한 음 높아졌다. “와, 나는 날고
못 뛰나?” 이어서 사모님의 반격이 이어졌다. “당신이 무신 학벌이 있는
교, 구변이 좋은교?”
목사님 역시 지지 않는다. “목회를 어디 학벌 갖고 하더나? 말솜씨 갖고 한
다 카더나? 하나님이 능력 주시면 다 되는기다.” 목사님의 용기에 사모님
은 일단 기가 꺾이면서 중
얼거리다시피 말을 이었다. “아이가, 그래도 무
슨 재주라도 있어야지.” 목사님 역시 스스로에게 위로하듯 말하였다. “날
고뛰는 재주는 없어도 기는 재주는 안 있나. 가서 기면 되것지 걱정마라.”
결국 그 목사님은 서울로 목회지를 옮겼고 성공적인 목회자로 충성하고 계신
다는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날고뛰는 것보다 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
던 것이 분명하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목회자들이 힘있게 뛰어 보려고 애를 쓴다. 심지
어 날아서라도 멋지게 성공하는 목회를 해 보고 싶은 유혹에 빠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온 나라를 뒤집어 놓은 가짜 학위 파문 속에서 가장 많은
가짜 학위가 신학 박사 학위라는 부끄러운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
은가? 뛰고 싶고 날고 싶은데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부족하니 수단 방법 가
리지 않고서라도 뛰어보고 날아보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보다 많이 그리고 보다 크게 충성하며 사명 감당하기 위해서는 날고뛰는 것
이 훨씬 효과적이고 좋은 것은 사실이다. 교회와 성도들을 섬김에 있어서도
분명히 이 사실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뛰며 날 것인가 하는
방법
에 따라서 그 의미와 결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바벨탑
을 쌓는 열정으로 뛰며 걷는 자들에게는 모래성의 화려함만 주어질 것이 분
명하다. 하지만 기는 재주만을 가진 자에게는 성령의 날개를 타고서 비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문제는 기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본래부터 가진 재주가 그것
이건만 함께 가던 자들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뛰고 날아갈 때에 여전히
땀 흘리며 기어 갈 수 있기 위해서는 무능한 자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비웃음
을 견디며 인내할 수 있는 또 다른 재주와 용기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다.
무릎으로 하는 목회라는 말이 바로 이 뜻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분주
한 일들에 싸여서 앞을 향해 정신없이 나가다 보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에 속도가 빨라지면서 뛰고 있고 서서히 솟아오르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사악한 영이 이런 기회를 가만히 두고 있을 리가 만무하다. 어느 듯 목소리
가 커지고 어깨는 힘이 들어가게 되면서 순식간에 섬기는 자이기보다는 대접
받는 자의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잠시 멈추어 선다. 그리고
크게 숨을 돌리며 두 손을 모은다. “기어가는 재
주를 회복시켜 주옵소서. 뛰고 나는 자들을 부러워하기보다는 기는 자를 긍
휼히 여기시며 높여주신 그 손길을 기다리며 묵묵히 그리고 조용하게 계속해
서 기어갈 수 있는 아름답고 소중한 재주를 잃어버리지 않는 종이 되게 하옵
소서!”
기어갈 수 있는 종이 되기를
다른 재주는 없어도 열심히 기는 재주만은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