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설(春雪)이 내린 날들…
변세권 목사·온유한교회
유난히도 포근했던 겨울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맹위를
떨쳤다. 그대로 봄을 맞이하기엔 겨울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나보다. 그래서
그런지 흩날리는 눈발은 아직도 끝을 맺지 못하고 봄의 문턱을 서성거리고
있다.
대단했던 꽃샘추위 위력
문득 사람이 사는 것도 이와 같으리라 생각했다. 어찌 겨울이 포근할 수 있
으랴! 어찌 인생이 평탄할 수 있으랴! 얼마 전 주변을 한 번 돌아보니 젊은
크리스천 가수, 배우들의 반갑지 않은 우울한 소식들이 들려왔었다. 20대에
젊은 생애를 스스로 짧게 마감했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소식들인가?
교회를 다니면서도 그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기 목숨을 끊었으니 그들에게
복음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 정도의 인기에 조금만 더 겸손하게
자기 마음과 생활을 잘 관리만 했더라도 자기 인생을 그렇게 우울하게, 안일
하게 마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례를 집례
하는 목사님들
도 참 민망했을 것이다.
사회학자 에밀뒤르겡은 그의 자살론에서 자살의 윤리성 중에서 이런 경우는
개인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 죽는 이기적인 자살로 보았다. 이것은 또한
사회학자 필립스의 말대로 ‘베르테르 효과’라는 모방 심리도 작용하고 있
음을 지적했다. 이렇듯 우리는 스피드 시대를 살아가면서 모든 일이 자기 욕
심대로만 빠르게 진행되어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지 않
으시지만 절대 늦는 법도 없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을 때까지 예수님은 오지 않으셨다. 지루한 기다림이 계
속되고 불안이 가중되었으나 예수님은 오지 않으셨다. 우리는 말한다. “주
님이 여기 계셨다면…”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늦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목
적을 이루기에 적당한 시간에 오셔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다. 하나님
의 시간표는 우리의 생각과 요구와 같지가 않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33
년을 머무셨지만 사역하신 기간은 3년에 불과하다.
예수님께서 만일에 10년이나 20년을 사역하셨다면 더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
고 더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으셨을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
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해명하지 않으셨다.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 전개에
대해 미리 설명해 주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은 우리와 전혀 다르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주님! 어
디 가셨다 이제야 오신 거예요? 너무 늦으셨어요, 벌써 우리를 잊으셨나요?
우리 오빠가 죽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셨나요?” 그렇게 묻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늦지 않으셨다. 정확한 시간에 오셨다.
곤경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으로 F. B Meyer는 “인생의 많은 시간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것을 견디거나 행하는 것에 자기를 복종시킬 때,
이땅의 혹독한 상황들이 달콤하게 느껴지고 어려운 일들이 쉽게 변한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현재의 상황에 놓아두신 것은 그분의 약속대로 그
분의 보호하심 아래 그분의 시간을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계획
을 가지고 계신다.
언제나 정확한 하나님 시계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보호와 배려를 거부하고 모든 것을 자기 스
스로 처리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무지와 자가당착을 멀리해야 한다. 우리는
성도들의 신앙고백을 늘 점검하고
또한 놀라운 방법으로 역사하심을 바라보
는 기쁨을 배우며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에
는 춘설(春雪)의 날들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