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인간의 정보와 하나님의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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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보와 하나님의 섭리

김영규 목사
·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란 우리 밖에 객관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과 우리 자신 사이의 정보들이 오가는 폐쇄회로 상에 흐르는 정보들의 
상호 교환하는 흐름 방식이 어디로 어떻게 회로를 갖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행, 불행은 정보 역학 관계의 결과

여기에서는 마치 대상과 자아 사이의 정보들의 상호 교환의 방식이라고 표현
하였지만, 좀더 거시적인 면에서는 상호 교환이 아니라 보상 체계에 있어서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비-상호교환(non-
commutative) 방식이 그 특징이다. 
우리가 보는 관점에서 대부분 시간의 운동들은 폐쇄되어 있어도 그 방식에 
따라 시간은 항상 한쪽으로 흐른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일상 언어상
의 표현들인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들이나 거기에 뒤따를 수 있는 모든 표
상들을 괄호 안에 넣고 없애버린다면 우리들의 지각
들의 연속성만 겨우 남는
데 그것도 그런 방식이다. 우주로부터 오는 정보들의 흐름들이 우리들의 지
각들의 연속성 안에 번역될 때도 그런 방식이다. 
고정된 질서를 가진 저 엔트로피의 우리 자신이 다른 저 엔트로피인 태양과 
지구의 자원으로부터 생명이 유지되는 방향인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이 
시간의 방향이라면, 그 역으로 질서로부터 무질서로 소급해 가는 더 작은 입
자 세계들로 분해되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이 곧 바로 의식과 상관이 
없는 순수한 시간의 역의 방향이라고 말하기 쉽다. 그러나 그런 역 방향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은 계속 변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물리학자들이 가정하는 대로 태양보
다 아주 큰 질량(약 3배 이상)을 가진 별이 몰락하면서 중력만을 가진 물체
로 변하여 그 중력이 끄는 힘이 절대속도인 광속보다 커서 빛이나 정보들이 
그로부터 탈출하지 못하는 경우, 그 내부의 경우 시간이 없을 것인가이다. 
다시 말하면, 시공간 특이점이 그 중심에 있는 블랙홀 안에는 시간이 소실
될 수 있는 것인가이다.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중력파로 몰락될 수 없을 만큼 충분한 중력입자들만이 있는 세
계(은하계의 
중심부 혹은 최초 소립자의 세계)는 외부에 대해서나 내부에 대해서나 엔트
로피가 제로이거나 무한대로 표현될 수 있을지 모른다. 경우에 따라서 그런 
세계로 가는 물질들은 더 이상 탈출하지 못하는 지평선까지 빨려 들어가면
서 거의 파괴되어 빛날 것이다. 그래서 검은 세계는 더욱 더 관찰될 수 없지
만 외부를 향하여 중력파들을 내면서 다양한 기능들을 수행하고 있다. 
그 기능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간이다. 다만 우주의 모든 물질들
을 고정시키는 못과 같은 기능을 하는 그런 블랙홀이 스스로 돌면서 충분히 
혹은 영원히 길어질지, 아니면 다른 블랙홀과 만나는 미래가 있을지 하나님
의 자유성 안에 있을 것이다. 아직 우주팽창에 영향을 끼치는 검은 에너지
의 3차원 형상들은 그런 자유성을 증명하기에 충분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
런 하나님의 자유성 아래 하나님의 역사에 따라 우리 인간들은 처음 첫 정보
로서 존재하였다고 믿는다. 
즉 우리와 함께 손과 그 기능들에 대한 정보들을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께서 자신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우리를 지으셨을 때, 마치 자신의 손에 의
해서 흙으로 빚으시
는 것처럼 시간에 따라 지으셨지만, 그 세세한 실제적인 
방식은 명령으로 정보들을 창조하셨다고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런 최초의 우리 자신의 기원에 대한 신비가 우리에게 계시되었
을 때, 그런 계시가 얼마나 실제적으로 그리고 항존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계
시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의문으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받은 정보들은 더 이상 가감이 있을 
수 없는 정보일지라도, 그 정보는 우리의 이해에 따라 우리가 받은 정보이
고 우리가 남에게 주거나 책임을 질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다고 생각하면 쉽
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보들이 우리가 줄 수 없는 오직 주는 자에 의해서 주어진 정보요, 
그렇게 주시는 같은 자가 최종적으로 계속 주는 자로 남아 있다면 모순이나 
차이 혹은 오류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의 
폐쇄된 형식에 따라 정보들을 받고 주는 자로서 있지만, 근원적으로 우리라
는 정보 자체나 우리 주변의 정보들의 덩어리들은 주고받는 형식(자유의지)
에 따라 오직 받을 뿐일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주고받을 수 있는 형식이 
r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증명하고 있는 증거라고 믿
는다. 
우리가 울고 웃는 일이나 그 정보들도 뇌 세포들의 그물망이 자라면서 촘촘
히 형성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고, 늙어서 같은 그물망이 조금씩 엉성해질 
때도 변형되어 찌그러지다가 사라질 정보들에 불과하다. 싸우고 분한 마음
을 가지며 참는 일도 하나님께서 그런 정보들을 우리 안에 주실 때만 유용하
다.

정보 역시 하나님의 의지 안에 있어

우리가 달라고 큰 소리를 칠 때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받고 있는지
를 모를 때의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들을 모르고 있는 동안에
도 하나님은 모든 것으로 선이 되도록 우리에게 주시는 자로 계심을 믿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