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은 아무나 하나
이은상 목사/ 수원노회
‘네 이름을 부르면 금방 울먹인다. 네 손을 잡을 때마다 저려온다. 때론 네
가 나에게서 멀어졌으면 좋겠어. 그래도 너를 끝까지 사랑해, 개척교회야!’
개척목회자의 심정일겁니다.
처음 만들어진 어린 개척교회가 자유 경쟁적 시장논리가 팽배해 있는 세계에
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은 현실입니다. 개척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명이
라지만 교회 수는 증가하고 성도 수는 감소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볼 때 교
회개척의 기술과 실제적 방법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개척 준비생들은 개척에 대한 실질적 정보와 모델교회의 사례들에 귀
를 기울이며 또한 이론과 실제간의 괴리를 좁히기 위하여 신학교육까지 개선
방향을(실천신학을 늘려달라) 요구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러한 요구는 일리
가 있다고 봅니다. 마치 결혼식과 신혼여행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하여 선배
들의 경험을 듣는 것과 같은 이치라 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경험적
가르침에는 일관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남자
들의 병영담과 같이 실제보다 과장하는 것도 있고 각자 주장하는 바도 다릅니
다. 그러므로 성경 외의 선경험적 가르침의 배후에는 인간의 우쭐대는 죄성
과 각자 상황과 능력이 다른데서 오는 다양성의 한계가 있음을 배제할 수 없
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이런 개연성을 전제에 두고 개척준비에 대한 필자의
주장을 펼치고자 합니다.
첫째로 ‘남의 밭에 왜 풀을 뽑냐’ 는 식으로 전임 사역지를 벗어나지 맙시
다. 야망이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기는 하지만 단지 주목받고자 하는 욕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담임사역자라는 야망이 개척의 동기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은사를 충분히 점검해야 합니다. 때로는 부교역자의 역할이 한층 더
빛나는 담임사역자도 있습니다. 호텔에서 심부름하는 것이나 포장마차 주인하
는 것이나 모두가 다 손님에게 귀한 역할입니다(고전3:5-8).
둘째로 재주가(은사) 많기 때문에 한다고 하지 맙시다. 현대교회의 특징은 목
회자 한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하여 개척준비
자들이 많은 프로그램들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사실 교회가 사람들에게 주어
야할 것은 나사렛 예수입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자꾸 은과 금을 준비하려 합
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복음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고 은과 금의 능력만 나
타납니다. 복음은 영원이지만 은과 금은 일시적입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
이 오히려 복음을 가리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행3:1-10).
셋째로 수를 많이 모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하지 맙시다. 수가 목표가 되면
경쟁심이나 시기심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근심하게 되고 그 수
를 채우기 위하여 비복음적 비성경적인 곁길로 빠지기도 합니다. 개척교회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경쟁에 뛰어들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언제나 교회의 수가 늘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
습니다. 오히려 줄어들기도 합니다(요일2:18-19).
넷째로 교회성장형 설교로 준비하지 맙시다. 회중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설교도 문제이지만 회중들이 너무 좋아하는 설교도 문제입니다. 참된 설교의
결과는 회중들에게 반항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세례요한이나 예수님
의 설교
의 특징은 죄인들에게 환영을 받는 설교가 아니라 정곡을 찌르는 부담을 주
는 설교였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설교주제는 숫자와 상관없는 그루터기가
목표였습니다(사6:9-13).
다섯째로 신학적 준비를 무시하지 맙시다. 개척멤버, 지역선정, 재정확보 등
은 다 준비가 되었는데 신학준비가 없는 것은 마치 월드컵 경기 이전 기초체
력이 부족한 한국축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척은 장기전입니다.
잔재주로 얼마 버틸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골든볼을 향하여 달려나가야
합니다.
현재 문제시되고 있는 한국교회의 부정적 모습은 사실 한 목회자의 목회철학
들이 빚어낸 결과들입니다. 결국 신학적 성찰이 실천적 목회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대는 목회기술에만 매료되지 않도록 더욱 교리와 신학
을 강화해야 할 때입니다. 실천신학을 강조하면 할수록 목회는 기술로만 발달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요즈음 개척은 아무나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아무렇게나 되어 가는 것입니
다. 제발 맨땅에 헤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맨땅이란 신학적 성찰이
없이 재정이나 지역확보 등만을 추
구하는 실천적 지식을 의미하며 헤딩은 그
것을 추구하는 머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개척교회야, 너는 잠시 피었다지는 들꽃이 아니라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꼭
꼭 너를 사랑해’